‘확전’ 개념 이해부터 잘못됐다
  • 김종대│D&D포커스 편집장 ()
  • 승인 2010.11.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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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참여=국면 확대’는 아마추어적 판단…전투는 군이, 협상은 정치권력이 해야 ‘확전 방지’

‘확전을 방지한다’라는 짧은 한 문장이 연평도 사건을 둘러싼 대응 방식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건 초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이러한 지시를 했다고 했다가, 또 안 했다고 번복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이 난데없는 소동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차근차근 살펴보자. 북한군이 11월23일 오후 2시34분 연평도에 포탄을 발사하기 직전에 미그 23기 5대가 인근을 비행하고 있었다. 우리 역시 포격이 시작되고 약 4분 후에 F-15K 4대와 KF-16 2대가 출격해 확전에 대비했다. 자칫하면 공중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미그기는 우리 전투기가 출격하자 이를 탐지하고 지상으로 철수함으로써 더 이상의 확전 위험은 사라졌다. 결국 연평도 교전 양상은 순수하게 포병과 포병의 ‘대칭적 교전’으로 제한되었다.

 

▲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15K, 지난 7월 동해상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시사저널자료

 국방장관·합참의장 직무 유기 논란 불가피

비록 포병전에 제한되었다고 하지만 전투기가 출격한 사실은 두 가지 수준에서 의미를 갖는다. 첫 번째는 여전히 교전 규칙상 비례성의 원칙에 입각해 이번에 포격을 가한 북한 해안포의 원점을 격파하는 수준의 대응이다. 사실 북한의 해안포와 그 너머 방사포에 대한 탐지는 지상의 ANTPQ-37 레이더보다는 공중의 전투기에 의해 더 정확하게 식별될 수 있고, 더 정확하게 격파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투기가 해안포와 방사포대 진지를 격파하는 수준의 대응이 있었더라면 오후 3시11분에 가해진 2차 포격은 예방될 수 있었다. 먼저 우리가 기습을 당한 상황에서의 정당한 대응이기 때문에 확전될 위험을 고려할 단계도 아니다. 이 점에서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의 직무 유기에 대한 논란은 불가피하다.

단지 고려해야 할 것은 만일 북한이 우리 전투기를 요격하기 위해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지대공 전력을 가동한다든지 하는 추가 대응이 나타났을 경우이다. 이럴 경우 제공권을 장악하면서 추가 도발을 예방하기 위해 F-15K 전투기의 정밀 타격 무기인 SLAM-ER(AGM-84H)을 비롯한 공대지 전력으로 4군단 지휘부, 미사일 기지, 레이더 기지 등을 타격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된다면 어떻게 될까? 북한은 한국의 육·해·공 합동 작전에 대응해 먼저 함대함(샘릿), 지대함(실크웜), 공대함(KN-01) 미사일을 가동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서해 일원의 군사적 열세를 분산시키기 위해 동해나 군사 분계선(MDL) 일대에서 또 다른 도발 징후를 노출시킴으로써 ‘전선의 광역화’를 도모할 것이다. 전방 갱도 진지에 은폐되어 있는 장사정포가 일제히 지상으로 노출되어 사격 준비 태세를 취함으로써 긴장 상태를 유발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확전으로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이것은 분명 남북이 모두 꺼리는 시나리오이다. 해주·남포의 북한군 서해사령부까지 폭격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된다면? 그러나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절대 선택할 수 없는 시나리오이다. 지금 남북 쌍방은 확전을 원하지 않고 있고, 북한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도 우리 전투기가 해안의 포격 원점만 격파하고 바로 철수함으로써 확전의 국면을 회피하는 여러 가지 방책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지혜롭게 대규모 교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제한적으로 군사력을 운용하는 절차와 방법이 현재 한국군에는 준비되어 있다. 합참이 운용하는 각종 지침, 예규, 매트릭스 등 수없이 많은 문서를 보자. 여러 위기 유형별로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군사력을 운용하는 기술이 없다면, 또 그런 작전의 판을 짜는 실력이 없다면 합참은 합참이 아니라 친목 단체에 불과하다. 천안함 사건 때가 바로 그러했다.

필자는 일말의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합참은 한 번도 그런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못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제기되는 시점이다. 그런데 그 궁금증은 곧 해소되었다. 청와대의 ‘확전 방지’라는 요구에 끌려다니며 군사 지도자들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그러더니 합참은 작전의 양상조차 설명하기를 꺼리는 궁색한 입장으로 전락했다. 북한이 갖고 놀기에 딱 알맞은 형국이다. 이런 상황이 방치되면 앞으로 서북 해역에서 우리의 전투원들은 대책 없이 계속 죽어갈 것이다.

F-15K 전투기가 교전에 참여한다고 해서 확전의 위험이 증폭되고, 아니면 그 반대라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은 아마추어적 사고방식의 극치이다. 문제는 어떤 수준까지, 어느 범위까지 참여하느냐가 전쟁과 평화의 분기점을 이루게 되는 것이고, 이 순간 대한민국의 전쟁 지도본부는 매우 신속하고 합리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여기에서 ‘확전 방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치권력의 막후 협상 능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군부에 협상을 맡기면 필경 파국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일단 군은 자기 역할을 다하도록 격려하되, 북한과의 협상에는 정치권력이 나서야 한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는 그런 협상까지도 군에만 맡기고 있다. 우리나라에 전쟁 지도본부가 무너지는 지금 상황이 오히려 확전의 위험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만일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 케네디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대응했더라면, 핵무기가 충돌하는 3차 대전이 발발했을 것이고 북미 대륙 수백만 명의 인구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연평도 사태와 교전 규칙이 무슨 상관 있나

▲ 지난해 1월 촬영된 북한의 포사격 훈련 ⓒ연합뉴스

이것도 할 줄 모르고, 저것도 할 줄 모르니까 돌연 교전 규칙 문제가 튀어나온다. 도대체 연평도 교전 사태가 교전 규칙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교전 규칙은 일선 현장 지휘관에게 미리 내려진 지침에 불과한 것이고, 연평도는 합참 차원에서 구성된 합동 전력으로 지원해야 한다. 해병 6여단장과 같은 현장 지휘관 영역이 아니다. 교전 규칙과 관계없이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이 합동 전력을 동원해 북한에 ‘단호한 조치’를 취하면 그만이다. 그런 권한을 행사하라고 국민들이 별 달아주고 좋은 공관을 제공해준 것이다. 그런데 돌연 대통령이 교전 규칙 문제를 들고 나왔다. 마치 교전 규칙 때문에 단호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식으로 사태를 호도하고 본질을 왜곡하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셈이다.

결국 ‘확전의 문제’를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국군 통수권자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북한과 소통이 마비된 것은 물론이고, 군대를 어떻게 운영할 줄 모르는 정치권력의 리더십이 소진된 것이다. 청와대가 ‘확전의 문제’를 거론하는 순간, 평양은 이미 승전을 경축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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