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덮친 ‘불통’ 한·중 외교
  • 박승준│인천대 국제정치학 초빙교수 ()
  • 승인 2010.12.0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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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모두 비전문가들로 라인업돼 교감 불완전…천영우 수석 발언 공개로 더 곤경에 빠질 듯

“중국은 김정일 사후 북한의 붕괴를 막지 못할 것이다.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는 붕괴했으며, 정치적으로는 김정일이 죽은 뒤 2~3년 내에 붕괴할 것이다. 베이징은 평양에 변화를 강요하기 위해 경제적인 지렛대를 사용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북한은 중국에서 가장 무능한 관리가 중국의 6자회담 단장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는 세대 차이가 있다. ○○○는 한반도가 한국의 통제 아래에 통일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지난 2월17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와 천영우 당시 외교부 차관(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만났을 때 천차관이 한 말이다. 스티븐스 대사는 천차관과 점심을 같이하면서 들었던 말들을 5일 뒤인 2월22일 ‘비밀(secret)’로 분류해서 워싱턴으로 보고했다. 천차관은 이런 말도 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11월28일 청와대에서 방한한 다이빙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접견하고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에 따른 대책과 한반도 긴장 완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외교부는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최근 방북 결과를 주중 한국 대사관에 브리핑해주었는데, 그 내용은 신화통신의 보도를 그대로 읽는 형식이었다. 브리핑을 해준 사람은 ‘왕 부장이 기차를 타고 함흥으로 가서 김정일을 만났느냐’는 간단한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않으려 했다. (중략) 중국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많이 갖고 있지 못하다. 베이징은 평양의 변화를 강요하기 위해 경제적인 지렛대를 사용하려는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 북한 지도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중국이 바라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이지만, 현 상황을 유지하는 데에도 만족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서 무너뜨리려 하지 않는 이상,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2034년 2월22일까지 비밀로 분류되어 보존될 예정이던 스티븐스 대사의 보고는 무려 23년 이상 앞당겨져 ‘위키리크스’에 의해 공개되었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그 밖에도 우다웨이 중국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가 외교부에서 정년 퇴직했으면서도 6자회담 중국 대표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 것은 ‘좋지 않은 일’이며, 그 이유는 “우다웨이가 거만하고, 마르크스주의에 물든 홍위병 출신인 데다가 북한에 대해, 비핵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다웨이는 영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하기가 어려운 데다가, 강경한 민족주의자이고,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라고 깎아내렸다.

천수석은 “중국 관리들 가운데는 우다웨이와는 달리 ○○○라는 똑똑한 관리도 있으며, 이 관리는 한반도가 한국 중심으로 통일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는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에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중국은 한국이 중심이 되는 통일에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스티븐스 대사에게 전했다.

중국, 천안함 당시 류우익 대사 행보에도 불만

▲ 지난 10월3일 베이징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류우익 주중 대사. ⓒ연합뉴스

천영우 수석이 8개월 전에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에게 한 말 가운데에서 밝혀진 새삼스러운 사실은 놀랍게도 6자회담 중국측 단장과 한국측 단장이 서로 통하는 언어가 없어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되지 않는 가운데 적대감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천수석은 중국어를 모르고, 우다웨이는 한국어도, 영어도 구사할 줄 모르니 한국과 중국의 6자회담 대표는 통역이 없이 속 깊은 말을 나누거나 감정 교류와 친밀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던 셈이다.

한국과 중국은 1992년 8월에 수교한 이후 18년 만에 서로를 잘 아는 외교관 인력 자원이 바닥났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중국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교관 출신인 것은 물론이고, 오스트리아 대사 출신인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대사 출신인 신각수 제1차관, 영국과 미국 대사관에서 일한 민동석 제2차관 등 중국어 구사는 물론, 중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외교관들로 우리의 외교 사령탑이 짜여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접근해서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인물이 우리의 외교 사령탑에 없다. 중국 대사관 근무 경험이 있는 고위 외교관으로는 이준규 외교안보연구원 원장(2001~2004년 주중 한국 대사관 베이징 총영사), 신봉길 본부대사(1996~1999년 주중한국대사관 베이징총영사, 2004~2007년 주중 한국 대사관 경제공사), 장원삼 외교통상부 동북아시아 국장 정도만 있을 뿐이다.

과거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한·중·일 3개국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유교가 한 역할’을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딴 황병태 전 주중 한국 대사, 예일 대학에서 중국을 공부한 정종욱 전 대사, 한·중 수교 교섭 과정에서 실무 책임자를 맡았던 권병현 전 대사, 서울대 중문과 출신으로 주중 한국 대사를 6년이나 역임한 김하중 전 대사 등 국내의 ‘지중파(知中派)’ 외교관들이 활약하던 시절은 가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중국을 아는 고위 외교관이 없는 ‘중국 문외한’ 외교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출신인 류우익 현 주중 대사는 지난 3월 말 천안함 폭침 사건이라는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중국 외교부와 긴밀하게 협의를 해야 마땅하던 4월 말에 어이없게도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지리학회 총회에 참석해서 중국 외교부를 놀라게 했다. 당시 류대사는 주중 한국 대사관 관계관이 자신의 지리학총회 참석을 만류하고 나서자, “이런 때에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라며 미국으로 떠났고, 귀국길에 서울대에 들러 특강까지 해서 외교통상부를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 류대사의 미국행에 대해 중국 외교부 외교관들은 “한국 정부의 안이한 태도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상황은 중국이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 천안함 피격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적시하는 것을 반대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문제는 중국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베이징 대학 조선어과 출신으로 마오쩌둥의 한국어 통역이었던 초대 주한 중국 대사 장팅옌, 역시 베이징 대학 조선어과 출신인 리빈 대사, 평양 김일성대학 출신의 닝푸쿠이 대사가 엮어내던 ‘지한파(知韓派)’ 대사의 시대는 가고, 일본통인 청융화 전 대사에 이어, 장신썬 현 주한 중국 대사까지 2대째 한국을 잘 모르는 대사가 서울에 주재하는 가운데, 사리원농업대학 출신의 공사급 참사관 싱하이밍이 ‘부(副)대사’를 자처하며, 한국과의 외교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중국 외교의 총사령탑으로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팀장이고, 오는 2013년부터 중국을 이끌어갈 최고 지도자로 내정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부조장인 중앙외교공작영도소조에는 차오중후이 전 주 평양 중국 대사가 포진해 있어 북한의 입장을 잘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대중 외교와 중국의 대한 외교는 전례 없는 ‘난맥상’을 연출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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