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예방, ‘머리 쓰기’에 달렸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0.12.1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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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부터 두뇌 활동 활발하게 해야 발병률 낮춰…기억력 감퇴 증상 생기면 전문의 찾아야

 

 

수명이 80년으로 같은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수명이 같아도 한 사람은 75세에, 또 다른 한 사람은 85세에 치매에 걸릴 수 있다. 전자는 5년 동안 치매로 고생하지만, 후자는 치매에 걸리지 않고 천수를 누리는 셈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가에 그 답이 있다. 평생 머리를 많이 쓴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치매에 잘 걸리지 않는다. 치매가 오더라도 늦게 올 뿐만 아니라 증세도 심하지 않다. 바꾸어 말하면, 머리를 쓰지 않으면 뇌신경세포가 줄어들어 치매에 걸리기 쉬운 상태가 된다.

김어수 연세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운동, 일, 독서, 대화 등으로 두뇌 활동이 활발할수록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로 증명되었다. 머리를 많이 쓸수록 신경세포 가지가 나뭇가지처럼 풍성해지고, 시냅스(신경세포 간 연결 부위) 거리가 짧아져 신경 전달이 왕성해진다. 이런 사람은 치매에 잘 걸리지 않는다. 치매가 오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늦은 시기에 걸린다. 따라서 치매 발병률을 낮추려면 노인보다 중년, 심지어 고등학생 때부터 두뇌 활동을 늘려야 한다. 두뇌 활동은 독서, 게임, 오락, 대화, 운동, 글쓰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질환들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 ‘치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치매는 병명이 아니다. 다른 질환들에 의해 나타나는 여러 증상을 통틀어 치매라고 한다. ‘치매 병’ 대신 ‘치매 증상’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치매 증상은 질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 기억 장애, 언어 장애, 방향 감각 상실, 계산력 저하, 성격 및 감정의 변화가 치매의 5대 증상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이 기억력 감퇴이다. 또 하고 싶은 언어 표현이 즉각적으로 나오지 않는 증상도 흔하다. 방향 감각이 떨어지고 계산 실수, 성격 변화가 나타나면 초기를 넘어섰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기억력 감퇴 증상이 생기면 치매 초기인지를 의심하고 전문의와 상담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순 기억장애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치매는 5대 증상 가운데 3개 이상에 해당되어야 한다. 정밀 검사를 한 결과 기억 장애만 있을 뿐, 다른 사고력은 정상이라면 단순 기억 장애이다. 단순 기억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귀띔이나 힌트를 주면 대부분 기억해낸다.

치매는 지적 능력과 사회 활동 능력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떨어진 상태이다. 과거에는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노망이나 정신병으로 치부했다. 지금은 단순한 퇴행성 증상이 아니라 여러 질환에 의해 나타나는 병적 증상으로 정의되어 있다. 따라서 치매를 일으키는 질환을 치료하면 치매를 극복할 수 있다.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전체 치매 중 치료 가능한 치매가 10~20%를 차지한다. 신경 매독, 수두증, 뇌종양, 경막하 출혈, 비타민 결핍증, 갑상선 질환 등도 치매를 일으키는데, 이 질환을 치료하면 치매를 이겨낼 수 있다. 이런 질환은 혈액검사나 뇌 촬영으로 손쉽게 진단할 수 있고,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 효과도 좋다. 치매를 불치병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나머지 80~9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이다. 이 병들이 뇌신경세포를 죽이는데, 우리 몸의 다른 세포와 달리 뇌신경세포는 일단 손상되면 재생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약이 있어도 한 번 죽은 뇌신경세포를 살릴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아직까지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에는 묘약이 없다. 알츠하이머병은 가벼운 건망증으로 시작한다. 병이 진행하면서 언어 구사력, 이해력, 읽고 쓰는 능력에 장애가 생긴다. 더 심해지면 불안하고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여성일수록, 직계 가족 중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람이 있을수록 발병률이 높다. 학력이 높거나 지적 능력을 많이 요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이 병에 덜 걸리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혈관성 치매는 한마디로 뇌혈관질환이 누적되면서 나타나는 치매를 말한다. 뇌로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면 뇌세포가 죽는다. 큰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 반신불수, 언어 장애 등 눈에 띄는 장애가 나타난다. 하지만 작은 혈관이 손상되면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뇌신경세포가 조금씩 죽어간다. 이런 상황이 잦으면 인지 능력이 나빠졌다, 좋아졌다를 반복하면서 결국 치매에 이른다. 혈관성 치매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질증, 심장병, 흡연, 비만이 있는 사람이 잘 걸린다. 그중에서도 고혈압이 가장 무서운 위험 요소이다. 혈관성 치매를 예방하려면 위험 요소를 없애야 한다. 즉, 평소에 혈압, 혈당, 체중, 콜레스테롤을 조절하고 금연해야 한다.

숙제는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 치료제 개발이다. 많은 연구자가 치매 치료제 개발에 시간, 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뇌신경세포가 왜 죽어가는지조차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아 치료제 개발이 말처럼 녹록하지 않다. 다만, 몇 가지 실마리를 찾았는데, 그중 하나가 아세틸콜린이라는 일종의 신경전달물질이다. 뇌신경세포들은 신경 신호를 주고받는데 아세틸콜린이 그 신호를 전달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치매에 걸린 뇌에는 이 물질의 양이 현저히 줄어든다. 당연히 신경 신호 전달이 원활하지 않으므로 인지 능력, 기억력 등이 감퇴하는 치매 증상이 나타난다. 아세틸콜린의 감소를 억제하는 도네피질, 리바스티그민, 갈란타민 등의 약을 개발해서 사용했다. 치매 증상이 악화되는 정도를 약 2년 늦추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아세틸콜린의 작용이 강해지면서 근육 경련, 피로감, 불면증, 어지럼증, 오심, 구토 등의 부작용이 생긴다. 무엇보다 이런 치료제는 질환 자체를 치료하기보다 증상을 완화하는 수준이라는 점이 지적거리이다.

최근에는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방향으로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그 실마리를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에서 찾았다. 아밀로이드는 치매를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화이자, 일라이 릴리, 로슈와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 물질이 뇌에 쌓이지 않도록 하거나 쌓인 물질을 없애는 약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약 100개의 치료제가 개발 중이다. 동물실험과 일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효과를 보였다. 그럼에도, 실제로 사용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세 단계나 거쳐야 치료제로서 인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약이 세 번째 단계를 넘지 못하고 실패했다. 치료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거나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뾰족한 치료제 없어 예방만이 최선의 치료법

▲ 치매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한 환자가 치매신경심리검사를 받고 있다. 단순 기억 장애인지 치매 증상인지 확인해야 적절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치매를 일으키는 질환에 대한 치료제 개발이 매번 수포로 돌아가자 앞으로는 증상에 대한 치료제 개발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가 우울증에 잘 걸리므로 이 우울증을 호전시키는 약을 개발한다. 이후 그 약의 추가적인 효능을 밝혀내 약 품질을 개선하는 편이 투자 대비 결과가 좋다는 것이다. 아스피린의 새로운 효능이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밝혀지는 이치이다. 또 다른 치료제 개발은 세포를 이용한 시도이다. 죽은 뇌신경세포를 줄기세포로 회복시키는 방법이다. 줄기세포가 뇌신경세포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더라도 건강한 줄기세포가 좋은 신호와 물질을 분비하므로 뇌기능에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또 최근까지 줄기세포가 뇌신경세포로 분화시키는 방법이 묘연했지만, 지난 11월에 국내 연구진에 의해 그 실마리가 풀렸다. 백은주 아주대 의대 생리학과교실 교수는 줄기세포 내의 JAK3라는 단백질을 억제함으로써 신경세포로 분화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처럼 수많은 노력에도 치매 증상을 처음 확인한 지 100년이 지나도록 뾰족한 치료제가 없다. 두뇌의 특성상 치매는 치료가 쉽지 않은 증상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와중에 치매 전문가들은 세계 치매 환자 수가 현재 3천만명에서 2050년에는 1억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현재 48만명인 치매 환자가 2030년 100만명, 2050년에는 2백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치매 진료를 받은 사람이 매년 25%씩 증가한다. 몇십 년 후에는 치매 치료제가 나오겠지만 현재로서는 치매에 잘 걸리지 않도록 두뇌 활동을 늘려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법이다.  

 ‘음주·흡연’ 줄이고, ‘독서’ 늘리고, ‘상식’ 실천하기
치매 예방을 위한 ‘인지 건강’ 수칙

▶ 규칙적 운동│
운동은 뇌신경세포를 보호하고 신경세포 간의 연결을 원활히 해주는 데에 효과가 있다. 이 효과를 보려면 숨이 차고 땀이 나는 운동을 1주일에 3회 이상 꾸준히 해야 한다. 자전거 타기, 등산, 수영, 에어로빅, 헬스, 요가, 스트레칭, 볼링, 골프, 댄스 등 칼로리가 많이 소모되는 운동일수록 효과가 좋다. 3천5백kcal를 소모하는 사람은 3백kcal를 소모하는 사람보다 인지 기능이 저하될 가능성은 26% 낮다. 물론 운동량이 적은 걷기도 규칙적으로 하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1주일에 3회 이상 12km를 걷는 사람은 1km를 걷는 사람에 비해 인지 기능이 떨어질 가능성이 30% 줄어든다.

▶ 금연│25~30년 흡연한 사람은 알츠하이머병 위험도가 비흡연자에 비해 2백50% 증가한다. 중년부터 흡연하면 노년에 기억력 장애를 보일 확률이 37%가량 높다. 과거에 담배를 피웠더라도 금연하고 6년이 지나면 인지 기능 장애 확률이 41%나 감소한다.

▶ 사회 활동│사회 활동은 뇌손상이나 기능 저하에 대한 저항력을 키운다.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지연시켜 치매에 걸릴 위험을 낮춘다. 한두 명의 친구를 더 사귀어도 인지 기능이 저하될 위험성이 30% 줄어든다. 가족, 친구와 한 달에 한 번 이상 만나는 사람은 치매에 걸릴 위험이 15%, 매일 만나면 43% 정도 낮아진다. 친목 단체·스포츠클럽·자원봉사·종교 활동으로 15%, 영화·연극·전시회 관람, 여행, 외식으로 40%나 낮출 수 있다. 정원 가꾸기, 뜨개질, 집 청소, 요리만 해도 인지 기능 저하 가능성을 42% 줄일 수 있다. 사회 활동을 두 가지 이상 하면 59%, 세 가지 이상 하면 80%의 인지 기능 장애 위험도를 떨어뜨린다.

▶ 두뇌 활동│독서, 퍼즐 맞추기, 새로운 것 배우고 경험하기, 오락, 게임, 글쓰기, 창작 활동과 같이 머리를 쓰는 두뇌 활동은 뇌를 자극해서 뇌 구조와 기능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기억력과 정보 처리 능력이 향상된다. 신문, 잡지, 책을 가까이하면 인지 기능 장애 위험을 20% 낮출 수 있다. 생각,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하면 인지 기능 장애 위험을 30% 낮출 수 있다.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은 독서를 하는 사람에 비해 치매에 걸릴 확률이 4배 높다. TV 시청처럼 수동적인 두뇌 활동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지 기능 장애 위험을 10% 증가시킨다.

▶ 과음·폭음 금지│소량의 알코올은 아세틸콜린 분비를 촉진해서 치매 억제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 2잔 미만의 음주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 위험을 45%, 혈관성 치매 위험을 70% 낮춘다. 그러나 과음과 폭음은 인지 기능 장애를 유발한다. 중년부터 술을 마신 사람은 노년에 인지 기능 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2.6배 높다. 한 번의 술자리에서 1~2잔, 1주일에 3회 이하가 적당하다.

▶ 뇌 건강 식습관│뇌 건강의 첫걸음은 제때에, 골고루, 적당히 먹는 ‘상식’을 실천하는 일이다. 생선, 채소, 과일, 우유, 물은 충분히 섭취하면 좋다. 정어리, 참치, 고등어, 꽁치, 삼치, 연어에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은 치매에 걸릴 확률을 60% 낮춘다. 채소와 과일을 매일 섭취하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30% 낮아진다. 우유를 매일 마시면 칼슘 성분이 신경 기능을 조절하므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65% 줄어든다. 물은 식사 중과 식후에 충분히 마시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녹차도 좋은데, 하루 5~6잔을 마시면 인지 기능 저하 확률이 55%까지 낮아진다. 커피, 과일 주스, 야채 주스를 1주일에 3회 이상 마시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70% 정도 낮아진다. 대신 육류는 적게 먹어야 한다. 육류를 즐기는 사람은 채식을 선호하는 사람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이 3배 높다. 비만인 사람은 3년 후 치매 발병 확률이 정상 체중인 사람에 비해 1.8배 높다. 또 중년에 비만인 사람은 30년 후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2배, 혈관성 치매에 걸릴 확률은 5배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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