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물 자주 접하면 더 공격적으로 변할까
  •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2.2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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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원동 묻지 마 살인 사건’을 둘러싼 두 가지 설명

칼로 격투를 하는 게임인 ‘블레이블루(BLAZBLUE)’를 밤새워 하던 20대 남성이 오전 6시쯤 자신의 집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게임을 하던 도중에 “제일 처음 본 사람을 죽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집밖으로 나선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띈 사람은 바로 K씨였고, 그는 실제로 K씨의 등과 허벅지를 자신의 칼로 찔렀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칼에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찔린 K씨는 2백m가량을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이 남성은 도망치는 K씨를 뒤쫓아가면서 계속 칼을 휘둘러댔다. K씨는 한 성당 앞 인도에서 피범벅이 된 채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K씨는 과다 출혈로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honeypapa@naver.com


이 사건은 악마적 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심부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진 사건이다. 2010년 12월5일 오전 6시30분쯤 서울 잠원동에서 벌어진 이 사건의 용의자는 미국의 명문 대학에 유학했다가 1년 전에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했다는 P씨이다. 그는 귀국 이후에는 외출도 하지 않고 집에서 하루에 5~6시간씩 게임에만 몰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법원의 판결이 나지 않은 사건이지만, 이 사건이 던져 준 충격의 정도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오락 가운데 하나인 폭력물이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게임, 영화, 텔레비전을 통해 우리가 소비하고 경험하는 폭력은 과연 사람들을 더 공격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프로이트의 ‘수조 모형’이 들려주는 공격성 폭발 원인과 해법

이러한 질문에 대한 가장 오래된,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설명 가운데 하나는 프로이트의 수조 모형이다. 공격성을 타인에게 표출하는 것은, 전쟁 같은 특정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억제하고 금기시하는 행동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격적인 충동을 억압하게 된다. 하지만 억압된 공격적 욕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무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문제는 억압된 공격성을 무제한으로 쌓아둘 만큼 폭력적 충동을 담아두는 공간이 충분히 크지 못하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수조에 비유했다. 수조에 물을 부으면 한동안 수조에 물이 차오르다가 어느 순간 물이 꽉 차고, 결국에는 물이 넘쳐흐르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무의식에는 공격적인 충동을 담아두는 수조가 있는데, 공격성을 계속 억압하게 되면 어느 순간 수조가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정도로 충동이 쌓이게 되고, 결국 감당할 수 없는 공격성이 폭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억압된 공격성이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프로이트는, 수조가 완전히 차오르기 전에 수조에서 물을 조금씩 빼주면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막을 수 있듯이, 억압된 공격성이 폭발해서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공격성을 조금씩 표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된다고 가정한다. 스포츠 활동처럼 사회적으로 허용된 방식으로 억압된 공격성을 표출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공격성이 폭발해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폭력적인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폭력물의 주인공을 통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억압된 공격성을 표출하면, 억눌렀던 공격성이 폭발해서 옆 사람에게 칼을 휘두를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공격적인 충동을 폭력적인 게임의 주인공을 이용해서 게임 속에서 적의 역할을 맡은 캐릭터에게 표출하는 것은 사실 그 누구에게도 실제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모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스포츠 활동이 프로이트 수조 모형의 가정을 지지하는 사례인 반면, 폭력물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폭력물에 대한 노출 빈도와 공격적 행동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연구가 수행되었다. 이런 연구들은 다양한 결과를 보고했지만, 대다수 연구자가 동의하는 하나의 결론은 폭력물에 노출되는 빈도가 증가하면 할수록 공격적인 행동을 표출할 가능성은,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감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증가한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쉽게 폭력이 허용된다고 여기게 돼

폭력물이 공격 행동을 증가시키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작 효과에서 찾을 수 있다. 폭력물에 노출되는 빈도가 상승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폭력을 사용하는 행동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생각을 키워나갈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주위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폭력적인 행동이 쉽게 허용된다는 잘못된 생각 또는 착각의 씨앗이 마음속에서 자라게 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현실 세계에서 허용되는 공격성의 수준과 게임이나 영화에서 허용되는 공격성의 수준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할 수도 있다. 대다수 사람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범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상호 작용을 통해서 사회적 규범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과의 사회적 상호 작용이 중단되어 현실 규범을 재확인할 기회가 사라지면, 현실 규범이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급격히 약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폭력물에 노출되면, 폭력물에서 제시한 폭력 사용의 규범이 현실의 규범을 대체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즉,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상호 작용을 통해서 폭력물의 규범과 현실 규범의 차이를 변별할 기회를 갖지 못하면, 폭력물에서 본 폭력 사용의 규범이 현실에서도 적용된다고 착각하는 환상을 경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폭력물과 범죄 간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논란의 핵심을 차지하는 주제는 과연 폭력물과 범죄 간에 인과 관계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지면 사정상 짧게 정리하면, 어떤 개인이 특정 폭력물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특정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길은 아직은 없다.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에 폭력적이고 잔인한 영화를 봤다고 해서 해당 영화를 본 것이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었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영화를 본 모든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다른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서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고, 마지막으로 범죄자의 다른 특성(예, 좌절에 의한 분노)이 폭력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들고 동시에 범죄를 저지르게 만든 제3의 원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원동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P씨가 블레이블루라는 게임을 했기 때문에 K씨를 칼로 찔렀다는 인과 관계를 입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특정 폭력물과 특정 범죄 간의 인과 관계를 입증하지 못한다는 것이, 폭력물에 노출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수많은 연구는 폭력적인 게임, 영화, 그리고 드라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폭력성을 드러낼 기회가 주어지면 폭력적으로 행동하고 심지어 범죄를 저지를 확률도 높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단지 특정한 사례에서 특정 폭력물과 특정 범죄 간의 인과 관계를 아직까지 입증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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