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김선달도 울릴 ‘골목길 분쟁’
  • 이대성│부산일보 기자 ()
  • 승인 2011.01.1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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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부지 주인 나타나 주민들에게 ‘통행세’ 요구…일부 지역, 차량 통행 못하게 하는 경우도

▲ 땅 주인과 주민이 골목길 사용 문제로 분쟁 중인 부산 사하구 감천동 골목길을 주민이 가리키고 있다. ⓒ부산일보 제공

마을 골목길 땅 주인이 나타나 갑자기 사용료를 물린다면 어떻게 할까. 때아닌 골목길 사용료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수십 년간 주택가 골목길을 이용하던 주민들에 대해 골목길 땅 주인이 나타나 사용료를 청구하자 골목길을 이용하던 주민들이 근심에 빠졌다.

하지만 땅 주인과 주민들 간 입장 대립이 첨예한 데다 관할 구청 등도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골목길 사용료 분쟁이 발생한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지난해 11월21일 김 아무개씨(49)는 부산지방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김씨는 고소장에서 같은 해 2월25일 부산 사하구 감천동 634의 8번지 도로 부지 1천㎡를 경매를 통해 3천8백50만원에 낙찰받은 뒤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해당 도로에 인접한 지역 주민 33명을 상대로 토지 사용료를 청구했다.

주민들이 자신 소유의 골목길을 통행로 용도로 사용하고 있으니 이에 합당한 사용료를 내라는 것이다. 김씨가 요구한 사용료는 골목길의 공시지가인 1억8천8백만원을 기준으로 주민 1인당 매달 2만3천5백원이다. 김씨가 토지를 매입한 후 현재까지 20여 개월치를 세대별로 모두 합치면 1천4백만원 정도이다.이후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사용료 청구액을 지난해 2월부터 매달 약 5천원씩으로 축소했다.

‘수익권 포기한 도로’ 알고도 사용료 청구

해당 주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주민 대표 현경애씨(43·여)는 “해당 골목길 중 일부는 오래전부터 학생들의 통학로로 이용되고 있어 공용 도로나 마찬가지다. 골목길의 이전 주인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주인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용료를 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주민들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소송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지만 주민 대표를 중심으로 일부 주민들은 인근 학교의 학생과 교직원들의 탄원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했으며,전 골목길 주인으로부터 ‘30년 동안 무료로 다닌 도로’라는 내용의 확인서를 받아 함께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에 해당 지역 구의원도 주민들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

‘골목길 사용료 소송’으로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이번 소송은 법원이 지난해 12월22일 1심 판결에서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우선 갈무리되었다.

법원은 “원고는 이전 소유주가 1978년 인근에 주택단지를 건축하면서 ‘해당 토지를 인근 주민들에게 통행로로 제공해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 수익권을 포기한 도로’라는 사정을 알고 토지를 경매로 낙찰받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주장은 이유 없다”라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사건 부지가 특정한 물건을 사용하거나 그로부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인 ‘배타적 사용 수익권’을 이전 소유주가 이미 상실한 것이어서 원고인 김씨가 골목길과 접한 주민을 상대로 사용료 등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반면 김씨는 “사유재산권을 침해한 재판 결과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다”라며 항소할 뜻을 밝혀 골목길 사용료 청구 소송은 여전히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다.

골목길 사용료 분쟁은 부산 해운대구의 한 골목길에서도 이어졌다.지난해 12월7일 정 아무개씨(52)는 해운대구 중1동 오산마을 좌동순환로4 468번 다길 영림빌라 주변 골목길 3필지 중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지번 757-5(68m2)와 758-4(135m2) 도로 부지의 재산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이 지역 통장 및 주민들과 만나 밝혔다.

이에 해당 골목길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수십 년간 무상으로 사용했던 도로에 대해 재산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이 두 필지의 골목길을 이용하고 있는 주민들은 40여 세대 정도로 해운대구청은 파악하고 있다.주민들은 정씨가 도로 폐쇄나 사용료 청구 등 적극적인 요구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걱정이 태산이다.

이에 대해 정씨는 “개인의 재산권을 우선시하는 법원의 판례에 따라 사용료 청구가 가능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최근 부산 감천동 골목길 사용료 소송에서 골목길 소유자가 패소한 것과 관련해서는 “해당 도로를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해 공매로 매입했고, 매입 당시 그 전 소유자가 사용료를 받아왔는지, 아닌지는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감천동 골목길과 같은 사례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씨는 앞으로 주민들과 협의해 적정한 수준의 사용료를 청구하되, 주민들이 불응할 경우 민사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제2의 골목길 사용료 소송’으로 번질 조짐이다.


전국에 사유지인 골목길 많아 분쟁 속출

골목길 사용료 분쟁은 부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도로 주인이 시청이나 구청 등을 상대로 도로 점용료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있지만, 최근에는 주민들을 상대로 사용료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골목길 사용료 분쟁의 공통점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사유재산권의 가치’와 수십 년간 암묵적으로 유지된 ‘배타적인 사용 수익권 포기’ 사이의 갈등으로 귀결된다. 법원도 이 두 가치의 접점에서 경중을 저울질해 최종 판단을 내리고 있다.

또 이 문제는 수십 년 전 예전 땅 주인이 토지를 대거 매입한 뒤 주택 부지와 도로 부지를 별도로 매각하면서 발생한 문제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이번 해운대구의 사례도 유사하다. 한 건설업자가 해운대 일대 중1동의 토지를 대거 매입한 뒤 택지로 개발하면서 택지들은 팔았지만 공용 도로는 소유하고 있다 부도가 나는 바람에 국가 재산에 귀속이 되었고,정씨가 이를 공매받아 골목길 사용료 분쟁으로 이어졌다.아울러 과거 관할 구청에서도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공용 도로를 매입하려는 움직임도 없었던 탓에 주택 부지 사이에 개인이 소유한 공용 도로가 많이 있어 전국적으로 골목길 사용료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관할 구청에서는 골목길 사용료 분쟁의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법원 판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해운대구청 관계자는 “현재 사유지인 골목길이 전국적으로 많이 퍼져 있고, 최근 골목길 소유주가 주민들을 상대로 사용료를 청구하는 분쟁이 잇따르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태이다. 분쟁에 휘말린 주민들이 처한 상황은 안타깝지만 사유지인 골목길이 워낙 많아 예산난에 허덕이는 관할 구청이 직접 매입하기도 쉽지 않은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부산지방법원 관계자는 “사유지의 배타적 사용 수익권 포기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와 같아 판단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법원은 사용 수익권을 포기했다고 명백히 판단되는 소송에 대해서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공익적 판결을 내리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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