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운동으로 뻗은‘언니와의 약속’ 실천 기록
  • 조 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1.01.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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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유방암 퇴치 재단 ‘수잔 G. 코멘’ 설립자의 감동 실화

 

▲ 핑크리본/낸시 G. 브링커/조니 로저스 지음/서울문화사/496쪽│1만4천8백원

사랑하는 사람을 병으로 떠나보내는 일은 슬프다. 그런데 자신이 겪은 그 슬픔을 알기에 다른 환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을 덜어주려 평생을 바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이야기를 들으니 울컥하고 목이 메는 것을 어찌 할 수 없다. 전세계 유방암 환자들에게 용기를 가지고 암과 싸워 ‘승리’하는 데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는 유방암 퇴치 재단 ‘수잔 G. 코멘 유방암치료재단’(이하 ‘코멘’)의 설립자 낸시 G. 브링커 이야기 때문이다.  

낸시는 세계 여성들에게 유방암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적극 나서라고 촉구해왔다. 그는 자신의 언니인 수지 코멘이 유방암에 걸려 투병하다가 사망하기까지 겪은 일들을 되살려 <핑크리본>에 담았다. 책의 원제는 ‘Promise me’로, 생전 언니와 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미이다.

낸시는 범세계적인 유방암 퇴치 시민운동의 선구자라고 불린다. 그의 긴 여정은 여성에게 수치와 무기력함, 고통을 안겨주는 유방암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퇴치해버리고 싶어했던 언니와 한 약속에서 시작되었다. 소울메이트였던 언니 수지 코멘이 세상을 떠난 후 언니의 이름을 넣은 유방암 치료 재단 ‘코멘’을 설립하고, 교육과 기금 모금을 위해 펼친 치유 레이스를 세계 최대의 행사로 발전시켰다. 오늘날 유방암에 관한 최신 연구는 대부분 이 재단으로부터 지원받은 막대한 자금으로 진행된다.

수지와 낸시 자매는 서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1977년 언니 수지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3년 후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매의 꿈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낸시는 언니의 투병을 도와주면서 함께 아파하고 슬퍼했다. 그러는 동안 수지는 낸시에게  ‘유방암의 침묵’을 깨주라고 부탁한다. 연구 기금을 모아 언젠가 유방암을 완전히 퇴치해달라고 말한다. 낸시는 가까워온 이별을 감지하며 언니에게 대답한다. “약속할게, 언니. 평생이 걸린다고 해도….”

그 약속으로 ‘코멘’이 탄생했다. 낸시는 천부적인 모금 능력을 발휘하며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냈다. 외식 업계에서 크게 성공을 거둔 남편 노먼 브링커 또한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낸시는 남편이 보여준 기업가 정신을 본받아 재단을 키워나갔다.

1984년 낸시 또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낸시는 언니보다 운이 좋았다. 그녀는 살아남아 ‘코멘’을 막강한 재단으로 성장시켰고, 온 세상을 희망의 핑크빛으로 물들였다. 언니에 대한 사랑 덕분에 오늘날 유방암은 더 이상 사형 선고가 아니게 된 것이다.

낸시는 시민에서 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 구성원을 유방암 퇴치 운동으로 이끌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에게 미국 시민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자유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유엔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세계보건기구의 암 관리 임무를 맡았으며, 헝가리 주재 미국 대사관의 대사로도 활동했고, 탁월한 업적으로 수많은 상을 받았다.

지난 1992년 시작된 ‘핑크리본’ 운동은 수잔 G. 코멘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코멘’ 재단을 통해 연구와 기부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유방건강재단이 핑크리본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환자와 그 가족에게 건투를 빌며, 더 이상 슬픔이 없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낸시의 맺음말은 또 한 번 울컥하게 한다.

“우리의 소망은 지금껏 해 온 이 일을 빨리 끝내는 것이다. 유방암을 영원히 퇴치하는 것, 재단의 문을 닫는 것이다. 나는 우리 재단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날을 꿈꾼다. 살아 있는 동안 꼭 그날을 보기를 소원한다. 그날, 드디어 언니와의 약속을 지켰음을 축하하리라.” 

 

ⓒ김영사 제공

“나는 눈앞에 닥친 수많은 문제 중에서 우선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있는 것부터 골라 그것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살다 보니 내 뿌리에서 샘솟아난 생각이 다른 지식과 행동의 샘물들과 합류하여 어느덧 내가 상상했던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크게 자라나 거대한 강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부패한 독재 정권의 무차별적인 난개발에 맞서 그린벨트 운동을 창시하고 이를 통해 빈민들의 자립을 위한 새로운 시민운동의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케냐를 넘어 아프리카 전체의 평화를 앞당긴 위대한 작은 거인, 왕가리 마타이. 그가 자서전 <위대한 희망>(김영사 펴냄)에서, 험한 땅에서 승리의 삶을 일궈낸 인생 역정을 풀어놓았다. 

왕가리 마타이는 케냐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동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나이로비 대학 해부학 교수를 거쳐 학장까지 역임했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인 성공을 뒤로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케냐의 환경을 지켜내는 데 쏟아부었다. 그가 펼친 환경 운동은 단순한 환경 보전 운동이 아닌, 좀 더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도전이었다. 케냐의 자연환경을 지켜나가면서 빈곤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한 여성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위대한 희망의 증거이다. 그가 영웅이 된 것은 ‘나쁜 환경 탓’이 아니라 시대적 환경을 현실로 받아들인 ‘도전 정신 덕분’이었다.

“나는 언제나 실패를, 나를 성장시키고 계속 전진하게 만드는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좌절은 긴긴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하나의 고비일 뿐이며, 거기에만 머무르다가는 우리의 여정이 지연될 뿐이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성공한 사람은 모두 여러 번씩 넘어져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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