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동시다발 전쟁’ 뇌관 터지나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1.2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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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향력 감소 틈탄 이스라엘·헤즈볼라 등 충돌 가능성 커져…전문가들 “지금은 폭풍 전야”

중동의 국제적 중요성은 그곳에 세계 원유의 상당량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이 중동에 쏟는 관심은 실제 필요 이상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분석이다. 중동에 이스라엘이 없었다면, 9·11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미국은 지금처럼 이집트 나일 강에서부터 인도의 인더스 강에 이르는 지역에 관심을 쏟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세계 모든 지역에서 주춤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가운데서도 중동에 대한 영향력 감소는 다른 지역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전망이다. 20년 전 1차 걸프전 당시 미국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몰아내는 데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고, 이후 그 지역에서 도전받지 않는 맹주로서의 자리를 굳혀왔다. 중동의 왕들과 종신 대통령들은 대부분 미국 편에 섰으며 미국 편에 서지 않은 이란과 소말리아 같은 국가들은 고립당하게 되었다.

▲ 지난 1월20일 밤 베이루트 시내를 순찰하고 있는 레바논군의 장갑차들. ⓒAP연합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2003년 이라크 침공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입지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선포한 ‘테러와의 전쟁’은 알카에다를 궁지에 몰아넣고 많은 테러 공격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존의 친미 세력들이 소외되었고, 적들은 더 맹렬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난 10년간 미국으로부터 2백70억 달러에 이르는 군사 원조를 받은 가장 가까운 우방인 이스라엘조차도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에 세운 유대인들의 불법 정착촌 건설을 만류하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고 나섰다. 또 다른 미국의 우방인 이집트도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는 미국의 요청을 등한시하고 있다. 이집트 총선을 국제 기구에서 참관하도록 하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도 거부했다.

과거 안보를 미국에 크게 의지하고 있던 이스라엘과 터키가 지금은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독립된 노선을 택할 수 있다고 믿고 때때로 미국에 맞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동 지역의 새로운 변화이다. 미국의 우방인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그동안 미국을 지지해왔으나, 이제 친미 왕실은 노년기에 접어들었고, 내부의 왕권 계승 다툼으로 인해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한편, 미국 스스로의 전략적 또는 전술적 실수도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쇠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라크 침공의 명분이었던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한 점과 관타나모와 아부그라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고문을 한 사실은 미국의 도덕적 권위에 치명타를 입혔다. 결과적으로 이란과 이란의 동맹국 시리아를 포함한 하마스, 헤즈볼라, 레바논 시아파 민병대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혼쭐난 미국이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양상으로 군사력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 다시 참전하기 힘들 것”  판단도

▲ 2006년 8월 레바논과 전쟁을 벌이던 이스라엘 군인들이 레바논 남부에서 진격하고 있다. ⓒEPA

이러한 판단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6천명의 전사자, 전쟁 비용 1경1천조 달러라는 천문학적 숫자가 미국으로 하여금 추가 전투를 벌이려는 의지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추측에서 비롯된다. 펜타곤(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미군 병사 한 명을 전투 지역에 투입하는 데 1년에 50만 달러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이 사실은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이 이 지역에서 주둔 병력을 줄일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된다.

또 한편으로, 미국 내 친(親)이스라엘 로비는 그 기세가 수그러들 줄 모른다. 미국 의회 잡지인 <콩크레셔날 쿼털리(Congress-ional Quarterly)>의 외교 부문 편집장인 조나단 브로더는 공화당 의원들이 유대인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모습은, 미국 행정부보다 이스라엘을 우선시하는 듯하다고 비꼬았다.

실례로 미국 상원의장인 에릭 칸토는 국방부에 할당될 외국 원조 예산에서 30억 달러를 이스라엘 군사 원조로 돌리자는 제안을 하기까지 했다. 이를 두고 브로더 편집장은 “이러한 제안은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압력을 행사할 수단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미국을 불법적인 유대인 정착촌 건립에 무언의 공범자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힐난했다.

카타르의 미국 공군기지는 전세계 미국 공군기지 가운데 가장 분주한 곳이고, 두바이의 제벨 알리 항구는 미국 해군이 가장 빈번히 정박하는 곳이다. 물론 미군이 이 지역에서 주둔하는 주된 목적은 오일 수송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걸프 만이 미국 원유 총 소비량의 10% 미만을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과연 많은 비용이 드는 군사력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향후 25년 내에 걸프 지역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미군 주둔 규모를 감축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편 걸프 지역에 대한 원유 보급선 확보 측면에서는 경제적으로 미국의 라이벌로 떠오르는 중국과 인도가 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가 걸프 지역의 경찰 역할을 맡아야 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 간에는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늘 잠복해 있다. 2006년 헤즈볼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제한적인 공세 이후, 그리고 가자 지구 하마스에 대한 공격 이후 잠시 가라앉아 있던 중동의 불씨가 다시 지펴지면서 올해 이 지역이 다시 화약고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06년 레바논 남부 지역의 헤즈볼라와 격전을 치른 후, 그리고 2008년 가자 지역의 하마스를 공격한 이후, 이스라엘은 평온을 되찾은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중동 전문가들은 이 평온은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라고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군 정보국장인 아모스 야들린 장군은 다음 전투는 어느 한 곳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두세 군데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경고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헤즈볼라의 재무장이 그동안 괄목할 만하게 증강했다는 것이다. 2006년 5주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쏜 로켓 포탄은 4천발이었다. 하지만 현재 헤즈볼라가 보유한 포탄 수는 10배가 넘는 4만~5만개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이 사정거리가 짧아서 유엔 평화유지군 뒤에서 발포하면 이스라엘 국경에 도달하기 힘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땅굴을 통해서 전진 배치되었다는 첩보가 있다. 더욱이 시리아와 이란이 헤즈볼라에 제공한 젤잘 2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2백km여서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까지 타격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재무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2006년 이래로 미국의 군사 원조에 힘입어 이스라엘은 신형 공격용 헬기와 개량된 유도탄을 획득했다. 더불어 대전차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방어 시스템도 구축했고, 4천5백만 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추가 지원금으로 3단계 방공망을 구축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그리고 다른 아랍 국가 간의 동시다발적 충돌 시점은 올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중동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경우에 미국은 또다시 이스라엘을 지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될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실제로 단독 작전권을 행사하는 이스라엘에 전쟁 종결 같은 주문을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듣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중동 평화에 또다시 커다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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