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융·복합’ 시대 신개념 공동체, ‘제2의 가족’이 늘어난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1.02.0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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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공동체에 빨간불이 켜졌다.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가족은 서로를 지키는 최초의 둥지이자 최후의 보루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족 해체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속도를 더해 이제는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시사저널>은 가족 해체 현상과 신(新)가족의 탄생, 사회 문제로 떠오른 고독사 현장과 이런 가족의 분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국가적으로 어떠한 체계를 갖추어야 하는지를 심층 취재했다.


혼자서 생활하는 1인 가구 수는 해마다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1990년 전체 가구 중 9%에 불과하던 것이 2005년에는 20%를 넘어섰다. 2010년에는 23.3%에 이르러, 네 가구 가운데 하나는 ‘나 홀로 가족’으로 지내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1월24일 주목되는 가족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자녀를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10대와 20대에서 강하게 나타났다. 사회적 지원책이 있어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비율도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다. 여성가족부는 “한국의 보편적인 가족은 현실과 인식, 여성과 남성, 의식과 실태 간 불일치 문제로 인해 갈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점잖은 표현이지만 ‘가족’이 격랑 속에 놓여 있다는 판단이다. 가족 내에서 아버지의 소외 현상도 심각해졌다. 자녀의 경우 아버지와 대화가 부족한 편이라는 응답이 35.4%를 차지해 어머니 11.9%보다 세 배 가까이 많았다. 고민을 의논할 상담 대상으로 절반이 친구를 선호했고, 다음이 어머니 29%였으며, 아버지는 미미했다.

▲ 조손 가정인 강선자 할머니와 손자들이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처럼 비록 가족으로서 함께 살고 있더라도 서로 대화가 단절된,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모래성 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고선주 중앙건강가정지원센터장은 “가족 해체보다 무서운 것은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가족 간에 분노와 적의가 쌓여 서로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가족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이 사회의 미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젊은 세대일수록 신가족에 거부감 작아

여러 가지 원인이 제기된다. 산업화와 고도 성장 시기를 거치면서 대가족 체제가 무너졌고, 이후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맞물리면서 가족 해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결혼은 늦어진 반면 이혼은 증가하고, 저출산에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그 정도가 심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조사 결과에서도 가족의 범위를 점차 좁게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미혼자들이 생각하는 ‘결혼 적정 연령’도 30세 이상이 70%를 웃돈다.

한편에서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 또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분위기이다. 어느 한 곳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이를 극복해나가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새로운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줄어들고 있다. 고선주 센터장은 “가족이 해체되어 형태가 달라졌다 해도 새로이 형성되는 가족 형태를 통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 건강한 가족 관계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통해서 얻어진다”라고 강조했다.


정기 모임 갖는 한 부모 가족들 증가

할머니가 손주와 함께 생활하는 조손 가정이 대표적이다. 1995년 3만5천여 가구였던 조손 가정은 2010년 6만9천여 가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가 어린 손주를 키우는 일은 분명 쉽지 않다. 그런 만큼 조손 가정을 청소년 범죄와 연관 짓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가족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이다. 부모 모두가 자녀를 떠난 경우 대안으로 수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족의 형태가 바로 조손 가정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여주에 살고 있는 강선자 할머니(68)는 손자 세 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두 명은 첫째아들, 한 명은 막내아들이 이혼을 한 후 남겨놓은 손자들이다. 15년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지하 방을 전전하며 살아왔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여느 가족과 다르지 않다. 강할머니는 “부모 없이 자랐다고 손가락질받을까 봐 엄하게 키웠다. 다들 착하게 잘 커주어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큰손자 성진군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는 “할머니께서 우리를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셔서 몸이 좋지 않다. 경제적으로 가난해서 힘들 뿐이지 가족끼리는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방학을 맞아 카센터에서 세차 아르바이트를 하는 성진군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취업할 계획이다. 그는 “동생이 중학교 3학년인데 대학에 가고 싶어 하면 밀어줄 생각이다. 그때를 위해 직장에 다니면서 차근차근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물론 조손 가정이 겪는 어려움은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또 있다. 바로 교육이다. 세대 차이가 크다 보니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가 쉽지 않다.

한 부모 가족도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 들어 아버지가 아들을 키우는 부자(父子) 가족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과거 어머니가 자녀를 도맡아 키우던 때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임홍근씨(43)는 올해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는 아들과 함께 전남 광주에서 살고 있다. 아내는 11년 전 결혼한 지 3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기는 쉽지 않았다. 보험 영업을 나갈 때에는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서 차에 태우고 다녀야 했다. 무엇보다 먹을거리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하지만 밝고 씩씩하게 자란 아들을 보면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 그는 “한 번씩 엄마를 찾을 때는 속이 상하지만, 그런 것 말고는 별 어려움이 없다. 지금은 친구같이 지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임씨 부자는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인근의 다른 가족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외롭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자는 의미에서 모임 이름을 ‘둥지’라고 지었다. 회원은 20여 명이며, 자녀 교육 등에 대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함께 야유회도 가고, 야구도 보러 간다. 지역 축제 때 무료로 행사 도우미를 같이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것이 기쁘다고 한다. 그는 “친척 간에도 전화를 잘 안 하는데, 아이들이 서로 연락하면서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보기 좋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 부모 가족인 미혼모 가정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변의 시선이 따갑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미혼모 가정의 경우도 차츰 하나의 가족 형태로 자리를 잡으면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있다.

30대 초반의 최지영씨(여·가명)는 생후 24개월 된 아들과 생활하고 있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지만 이후 삶은 막막하기만 했다. 지낼 곳부터 찾아야 했다. 미혼모 지원 시설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집을 구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아둔 것도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는 다행히 최근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한시름을 놓았다.

최씨 역시 미혼모 가족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언니·동생으로 친하게 지내며 마음을 주고받은 것이 어느덧 1년째 되었다. 같은 지역 미혼모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5~6명이 서로를 의지하며 찾는다. 그녀는 “미혼모의 경우 곧바로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 서로에 대해 차츰 공감하게 되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이제는 서로 아이들 옷도 챙겨주고 우리보다 더 어려운 엄마들에게 도움도 주며 지낸다”라고 말했다.

혈연관계 없이 모여 사는 ‘후천성 기족’도

혈연관계를 떠나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는 가족도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에 있는 ‘작은 평화의 집’은 식구 수가 무려 16명에 이르는 대가족이다. 장은경 원장(49)이 1990년 시집을 간다는 심정으로 꾸린 가정이다. 소아마비로 장애를 안고 있는 그녀는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며 대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장원장은 “어렸을 때 재활원에서 생활하면서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 적이 많았다. 그래서 함께 모여 살면 서로 의지할 수 있지 않을까, 말벗이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현재 그녀를 돕고 있는 삼촌 최병규씨와 4년 전 아내와 사별한 후 아들과 함께 들어온 부자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은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다.

가정을 꾸린 지 20년 넘은 세월이 지나다 보니 아이들도 장성해 스무 살 청년에서 마흔 살 장년까지 나이가 들었다. 가장 힘든 시기는 아이들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였다. 장원장은 “끈끈한 인연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가족이 되었는데,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다 보니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기도 했다. 가족에게 가장 큰 아픔은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상황을 맞을 때가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형태가 어떻게 다르든 이별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야말로 가족 구성원들이 갖는 공통된 마음이다. 




▲ 1월20일 경기도 이천 장호원에 있는 작은 평화의 집에서 가족들이 윷놀이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까.’ 가족 해체는 더 이상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문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가족 붕괴는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아버지는 큰 불화가 생기기 전까지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전문가들은 평상시에 가족 구성원들이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학교 교사인 임병기씨(40)는 지난해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흔히 ‘아버지 교육’이라고 불리는 가족 친화 교육을 받았다. 지역의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으로 한 달에 한 번, 두 시간 정도 시간을 투자했다. 난타 공연도 하고, 목공예 작품도 만드는 등 가족들과 다양한 활동을 함께했다. 대화하는 방법, 자녀 교육에 관한 강연 등도 들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참여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임씨는 “대부분 가족 간에 서로를 어떻게 대할지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는다. 그런 훈련을 받지도 않는다. 그런데 교육을 받아보니까 그동안 대화를 하면서 습관적으로 잘못했던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또 서로 어려운 점을 이해하는 계기도 되었다. 가족 관계를 좀 더 원활하게 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가족일수록 대화를 자주 하는 훈련이 필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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