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 개헌론에 제 발등 찍히나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2.1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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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뚜렷이 갈리면서 내부 분열 조짐…친이재오계·MB 직계 대 소장파·범친이계 ‘대립각’

 

▲ 지난 2월9일 개헌 추진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홍준표 최고위원, 김무성 원내대표, 안상수 대표(왼쪽부터)가 의총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방송 토론과 신문 칼럼 등으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 정치학 교수는 설 연휴 직전 기자에게 “앞으로 2년간 정치 지형에 엄청난 지각 변동이 올 것이다. ‘한나라당이 깨질 수도 있다’는 데에 베팅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 원인으로 ‘개헌론’을 꼽았다. 그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에 총대를 메고, 이명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지원 사격을 하고 나선 것은 결국 ‘박근혜 전 대표로는 안 된다’는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는 박 전 대표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서 대선 당선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까지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다. 한때 박 전 대표와의 연대설이 나돌던 이상득 의원이 개헌 문제에는 완전히 뒷짐 지고 물러나 있는 것도 주목해서 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용철 부산대 정치학 교수 역시 비슷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현재 상황에서 지금의 대권 판도를 흔들 수 있는 카드는 개헌밖에 없다. 남북 정상회담이니, 과학벨트니, 무상 급식이니, 다 갖다 대도 개헌만큼의 파괴력을 갖기는 어렵다. 개헌은 친이계가 박 전 대표의 독주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 찬반 세력이 갈리면서 정치판이 새로 짜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지금의 개헌 논쟁을 지난해 세종시 논쟁과 비교하는 시각이 많다. 개헌론을 ‘제2의 세종시 논란’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세종시 논란은 정치권을 극명하게 양극으로 갈라놓았다. 여권의 친이계 대 ‘여권 친박계+야권’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다. 외형상으로는 지금의 개헌론 역시 이와 유사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여권에서 친박계가 반대하고 있다. 야권에서도 보수 야당인 자유선진당만 친이계의 개헌론에 동조하고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친이계 내부의 분열 가능성이다. 지난해 세종시 논란 때 똘똘 뭉쳤던 친이계의 결속력은 개헌론 앞에서는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김용철 교수는 “현재 개헌론의 동력이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친박계의 반대도, 야당의 반대도 아니다. 친이계 내부의 문제이다. 친이계의 단합된 의지 여부에 따라서 향후 폭발성의 강도가 좌우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 교수는 “친이계가 개헌론을 들고 나오는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국정 어젠다를 계속 주도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단기적으로는 여권 주류의 결속력을 더욱 공고히 하자는 것이다. 정권 말기로 갈수록 주류의 접착제 역할을 할 부분은 작아지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친이계는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우산 아래 모여 있지만, 그 성향에 따라 다시 여러 갈래로 세분된다. 가장 크게는 친이계 핵심과 ‘범친이계’로 나뉜다. 범친이계는 친이계 내부에서의 또 다른 비주류로 불린다. 중도 성향이 혼재되어 있다. 친이계 핵심 중에서도 ‘친이재오’ 성향, ‘친SD(이상득)’ 또는 ‘MB 직계’ 성향, ‘소장파’ 등으로 구분된다. 한나라당의 최고 의결 기구인 최고위원회 아홉 명의 구성은 이런 계파 간의 안배를 잘 보여준다. 친이계 가운데 안상수 대표와 심재철 정책위의장은 친이재오 성향, 정운천 최고위원은 MB 직계 성향이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소장파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홍준표·나경원 최고위원은 범친이계로 분류된다. 서병수·박성효 최고위원은 친박계이고, 김무성 원내대표는 중도계로 분류된다.

이들 가운데 개헌 찬성론자는 안상수 대표와 심재철 의장, 정운천 최고위원, 김무성 원내대표 등이다. 김원내대표는 원래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개헌론자였기 때문에 차치하고라도, 나머지는 모두 ‘친이재오계’이거나 ‘MB 직계’이다. 친박계는 당연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친이계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두언 최고위원과 범친이계의 홍준표·나경원 최고위원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표 참조). 특히 이들은 지난해 이전까지만 해도 개헌에 대해 찬성이거나 원칙적 찬성의 입장에 서 있었기에, 지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주목된다.


친박계는 “철저 무시 전략으로 간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2월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지금 시점에서의 개헌을 반대하는 것은 ‘안 될 것’이기 때문이 아니고, ‘안 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내가 그다지 머리가 나쁜 편도 아닌데, 당 지도부는 안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 괜히 내부 분란만 야기하는 개헌론을 왜 들고 나서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르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친이계의 ‘박근혜 흔들기’ 의도가 숨어 있다는 의견도 있다”라는 질문에 “그것은 이미 누구나 다 예상이 되는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흔들기가 되겠나”라고 덧붙였다. 홍최고위원과 나최고위원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개헌 문제 때문에 당내 계파 갈등만 야기한다” “지금 시기에 개헌하려는 시도는 다른 의도로 비칠 수 있다”라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들 세 최고위원의 반대 목소리는 당내 소장파와 범친이계의 분위기를 대변해주고 있는 양상이다.

수도권의 한 친박계 의원은 “개헌에 대해서 우리는 철저히 ‘무시’ 전략이다. 같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다. 내버려두면 자동 소멸될 것이다. 친이계 내부에서도 ‘어차피 안 되는 일’이라는 의견이 많더라”라고 말했다. 은근히 친이계 내부 분열을 즐기는 듯했다. 김용철 교수는 “친이계 내부에서도 ‘박근혜’라는 정치인에 대한 온도 차는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개헌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측은 박 전 대표에 대한 견제 심리가 강하다. 반면, 지금의 무리한 개헌에 반대하는 측은 상대적으로 박 전 대표에 대한 반감이 옅거나,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친이재오계’로 분류되는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이 한나라당 개헌 의총 이후인 2월10일 기자에게 솔직히 털어놓은 다음과 같은 말은 향후 개헌의 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해준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야 지난 총선 때 이재오 장관에 의해 공천을 받았고, 다음 공천을 생각하면 (개헌을 주장하는) 이장관 말을 무시하기 어렵다. 나 또한 개헌의 필요성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꼭 지금 개헌을 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아주 회의적이다. 지난해 세종시 문제 때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 그때는 가치 문제가 분명했다. ‘어떻게 수도를 분할할 수 있느냐’라는 의원 개개인의 확신에 찬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개헌은 다르다. ‘굳이 당내에서 또 싸움박질을 해가면서까지 추진해야 할 만큼 그렇게 절박한 문제인가’라는 점에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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