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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꾸라질 듯했는데 ‘뒷심’이 살려냈다

<블랙 스완> <그대를 사랑합니다>, 예상 뒤엎고 흥행 성공…장기 상영의 중요성 새롭게 일깨워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ㅣ 승인 2011.03.14(Mon) 10: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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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스완>
ⓒ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처음에는 금세 고꾸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예상을 비웃듯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며 흥행 가도를 내달리고 있다. <블랙 스완>과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극적인 역전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쭉정이인 줄 알았던 관객들이 알곡으로 인식하면서 이들 영화는 뒤늦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들 영화의 뒷바람은 장기 상영의 중요성까지 새삼 일깨우고 있다.

두 편 모두 완성도 면에서 호평받아

<블랙 스완>은 개봉 첫 주말(2월25~27일) 27만1천6백64명(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모으며 흥행 2위에 올랐다. 언론의 호평과 여우주연상 등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다섯 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후광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개봉 프리미엄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1주일 먼저 개봉한 <아이들…> (34만2백43명)에게 밀렸다.

역전은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열린 28일 시작되었다. 7만3천8백25명이 관람하며 첫 1위에 올랐다. 그 다음부터는 파죽지세였다. 3월9일까지 1일 관객 동원 1위를 지키며 장기 흥행하고 있다. 광기에 휩싸인 발레리나를 온몸으로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이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시상대에 오른 그가 눈물의 수상 소감을 밝힌 점, <레옹>의 어린 마틸다가 하버드 대학을 거쳐 걸출한 성인 배우로 자란 것에 대한 대중의 관심 등이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블랙 스완>이 9일까지 모은 관객은 1백1만5천46명으로 수입배급사 20세기폭스코리아의 흥행 목표를 달성했다. 예매율과 좌석 점유율이 여전히 높아 더 많은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20세기폭스코리아 관계자는“영화가 잘 만들어져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오스카 효과가 흥행 역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분석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역전극은 <블랙 스완>보다 덜 화려하지만 더 드라마틱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첫 주말(2월18~20일) 개봉 성적은 6위(13만9천6백41명)에 불과했다. 두 번째 주말(2월25~27일)은 더 참담했다. 9만6백18명이 보아 10위에 올랐다. 그런데 세 번째 주말(3월4~6일) 4위(12만8천6백64명)에 오르며 흥행 성적이 뒤집어졌다. 7~9일에는 <블랙 스완>에 이어 1일 흥행 2위에 올랐다. 주요 타깃인 중ㆍ장년층이 늦게 극장에 몰리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간결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낸 황혼의 사랑이 뒤늦게 인정받은 것이다. 이 영화의 홍보 마케팅 대행사 하이컨셉의 이주연 실장은 “뒷심을 기대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뒤늦게 바람을 탈 줄은 몰랐다”라고 밝혔다.

속전속결형 구조의 국내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

<블랙 스완>과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역전극을 뒷받침한 것은 장기 상영이다. 설 연휴가 끝난 뒤 시작된 전통적 비수기에 개봉해 장기 상영으로 역전의 기회를 노릴 수 있었다.

국내 영화계는 개봉 초반 흥행에 사활을 거는 속전속결형 구조이다. 패자를 위한 시장이라 할 비디오·DVD 등 부가 판권 시장이 붕괴되어 극장 수입에만 의존해야 하는 영화계 현실이 반영되었다. 해가 갈수록 개봉 초반 극장에 몰리는 20대 젊은 관객층에 초점을 맞춘 영화만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영화의 성격이 강한 <블랙 스완>과 노년의 쓸쓸한 로맨스를 그려낸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국내 극장가 환경에서는 초반 흥행에서 고전하기 마련이고, 일찌감치 극장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두 영화의 장기 상영과 흥행 역전기는 뒤틀린 국내 영화 상영 체제에 강한 시사점을 던진다.

   

 

 전통 한지 기술 보존하려는 메시지, 조금 얇아 보이는 까닭은 
이 주일의 리뷰 <달빛 길어올리기>

 
▲ <달빛 길어올리기>
ⓒ재단법인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달빛 길어올리기>는 임권택 감독의 1백1번째 영화이자, 첫 번째 디지털 영화이다. 한 감독이 1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든 것도 놀랍거니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는 정신은 더욱 존경스럽다.   

영화는 <조선왕조실록> 복본 사업에 관여한 공무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최고의 내구성과 보존성을 지닌 ‘한지’의 가치를 알리고, 사라져가는 전통 한지 기술을 보존하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는 극영화이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과 완성된 다큐멘터리가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는 데다가,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송하진 전주시장 등의 카메오 출연으로 다큐멘터리보다 더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난다. 

영화 속 주인공(박중훈)은 의욕이 앞선 나머지 공무원의 본분을 넘어서는 행위로 징계를 받는다. 영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 메시지 전달의 사명으로 인해, 극영화로서의 본분이 망각된다. 인물의 과거사는 한두 번의 폭풍 대사를 통해 통째로 파악되고, 정서는 모두 휘발된다. 인물은 종잇장처럼 얇고, 만듦새는 조악하다. 때문에 박중훈·강수연·예지원 등 좋은 배우가 연기함에도 아무런 공감이 일어나지 않는다. 

<서편제> <축제> <춘향뎐> <취화선> 등 한국 전통문화와 미(美)에 대한 임권택 감독의 애착은 익히 알려져 있으며, 높이 평가되어왔다. 그러나 <달빛 길어올리기>에는 위 작품들에서 보았던 미학적 완성도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키루>가 보여주었던, 주인공의 신념과 현실 관료 사회가 빚는 갈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모든 갈등은 “여기 모인 사람들,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라는 묘한 나르시시즘으로 수렴되고 만다. 임권택 감독은 ‘새롭게 데뷔하는 신인 감독의 첫 번째 작품으로 봐달라’라고 말씀하셨다. 외람되게도 그 말씀이 만듦새에 관한 자평이었는지, 조심스럽게 되물어지는 유감스런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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