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전에는 ‘빈틈’ 없는가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1.03.2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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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상대적으로 안전”…원자로 수명 연장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듯

▲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신고리 원전 1, 2호기. ⓒ연합뉴스

예상하지 못한 진도 9.0의 강진이 동반한 강력한 쓰나미는 일본 원자력발전소를 허무하게 무너뜨렸다. 후쿠시마 원전은 1호기를 시작으로 하나씩 차례로 허물어져 갔다. 이제는 전세계가 우려 섞인 눈으로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며 지진대에 위치해 있음에도 안전을 장담하던 일본의 자신감은 이제 자만심과 오만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위기 대응 매뉴얼도 소용없었다. 일본 정부는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내놓는 대응마다 한 발짝 늦은 조치라는 것이 밝혀졌을 뿐이다. 계속되는 말 바꾸기로 국민과 다른 나라에게 신뢰도 잃어버렸다. 민간 기업인 도쿄전력은 정부에게조차도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이기주의로 사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몬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후 결사대가 목숨을 담보로 사태 안정을 위해 뛰어들고 있지만 국면을 완전히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격납용기도 후쿠시마 것보다 훨씬 커”

일본 사태를 계기로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국내 원전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원전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가장 많이 제기된 것이 가열 방식의 차이이다. 국내 원전은 월성 1~4호기가 가압수형 중수로를, 다른 원전은 가압수형 경수로를 사용하는 등 모두 가압형 발전 방식(PWR)을 도입했다. 이에 비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비등형 발전 방식(BWR)을 사용한다. 일본은 비등형과 가압형을 모두 활용하고 있다. 비등형은 핵반응이 일어나면 고온 상태에서 물을 끓이고 이때 발생한 수증기가 바로 발전기 터빈을 돌린다. 반면 가압형은 고온·고압 상태를 유지해 물을 바로 끓이지 않고 증기 발생기를 한 번 더 거쳐 터빈을 돌린다. 비등형이 열효율이 높지만, 상대적으로 안전에는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무환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는 “가압형 경수로는 1차 계통과 2차 계통으로 나뉘는데 1차 계통이 폐회로이기 때문에 1차 계통 면에서는 안전하다. 또한 격납용기가 후쿠시마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에 이번 같은 사고가 나더라도 대처 능력에 조금 더 여유가 있다”라고 말했다. 격납용기가 크다는 것은 압력이 올라가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의미가 된다. 수소 농도도 격납용기가 작은 곳에 비해 낮아져서 그만큼 폭발의 위험도 줄어든다. 후쿠시마 원전은 초기 모델인 마크-1 방식으로 격납용기가 작아 더욱 취약했다.

그 밖에도 가압형 방식은 수소 제어 장치가 달렸다는 것과 제어봉의 위치도 좀 더 안전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제무성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가압형은 상대적으로 수소가 적게 발생하는 데다 라이터처럼 수소가 발생할 때마다 소각시켜주는 수소 제어기가 달려 있어 수소 폭발을 대비하는 데 강점이 있다. 또한 핵반응을 중지시키는 역할을 하는 제어봉이 원자로 위쪽에 설치되어 있어 핵연료가 흘러내려도 원자로가 손상될 가능성이 작다. 반면 비등형은 구조상 아래쪽에 위치할 수밖에 없어 위험 요소가 된다”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안전성 과신 마라”

▲ 사고가 나기 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전경. ⓒ연합뉴스

그렇다면 가압형 방식을 채택하는 국내 원전은 절대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대다수 전문가는 “단지 원자로가 가압형이라는 것만으로 안전성이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대처할 시간을 조금 더 벌어줄 뿐이라는 것이다. 그때까지도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하면 결국 같은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은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자로형의 차이가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언젠가 열이 계속 나오고 냉각이 충분치 않다면 잔열 처리가 안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비등형보다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정도가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 발생 후 비상 전원이 1시간 정도 정상 가동되었다. 하지만 쓰나미가 비상 전원을 모두 망가뜨렸고 전원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악몽이 시작되었다. 이은철 교수는 “우리는 비상 전원이 망가졌을 때 수동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는 대체 교류 전원을 가지고 있다. 후쿠시마와 유사한 사고가 벌어졌을 때는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는지는 앞으로 더 점검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국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너무 과신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증기 발생기가 강점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증기 발생기 세관은 가느다란 관이다. 직경 3cm 이하에 높이가 20~30m이다. 이런 것이 8천개 있다. 1백50기압, 3백℃를 넘는 고온·고압을 견뎌야 한다. 최첨단 합금이지만 냉각수가 새는 사고들은 계속 있어왔다. 심지어는 잘려나간 경우도 있다. 지진이 발생하면 건물은 끄떡없더라도 내부 배관 세관들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예상치 못하는 문제가 연이어 발생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원전이 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내 원전은 고리, 월성, 울진, 영광에 21기가 가동 중이다. 추가로 건설 또는 계획 중인 11기도 이 네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적절한 부지 확보가 어려운 것이 큰 이유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보듯이 원전의 집적은 한 기의 이상이 연쇄 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원전을 계기로 위험 요소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 사용 후 핵연료 보관 문제이다. 사용 후 핵연료는 우라늄 농축량이 적어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작다고 인식되어왔다. 물이 담긴 커다란 수조 안에 넣어두어 냉각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안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냉각수가 말라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안전 논란이 일어났다. 국내 원전도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방식은 일본 원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관계자는 “사용 후 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 시설 안에 있는 별도의 건물에 보관되어 있다. 전세계적으로 처분장을 외부에 만든 곳은 없다. 물이 들어 있는 수조 안에 잘 보관만 한다면 큰 문제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은철 교수는 “국내 원전은 10m 이상의 수조에 담겨져 원자로에 근접한 보조 건물에 들어가 있다. 그쪽은 걱정할 만큼 위험한 정도까지 가지 않을 것이다. 요즘 예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많아 100% 장담은 못하지만, 99%까지는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수명 연장 문제 재검토 필요”

후쿠시마 원전에서 가장 먼저 문제가 생긴 제1호기는 1971년 건설되어 40년간의 설계 수명을 마친 것이다. 폐기 처분되어야 했지만, 10년간 수명을 연장해 재가동 중이었다. 국내에서는 고리 1호기가 30년의 설계 수명을 넘기고 10년간 수명 연장에 들어갔다. 월성 1호기도 수명 연장이 결정되어 곧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원전의 안전성에서 사용 연도는 중요한 요소이다. 제무성 교수는 “원전은 1, 2, 3, 4세대로 나뉜다. 가장 오래된 고리 1호기는 2세대이다. 안전 시스템들은 자꾸 좋아지고 있다. 자연히 최신 노형일수록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전 원자로에 최신 안전 시스템을 장착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수명 연장에 대한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고리 1호기에 대한 수명 연장 논란이 처음 일어났을 당시 정부측에서 성공 사례로 든 것이 후쿠시마 1호기였기 때문이다. 양이원영 국장은 “고리 1호기는 증기 발생기만 바꾸고 월성 1호기는 원자로 내 압력관을 바꾼 것이다. 원자로는 수백만 개 부품으로 만든 것이고 각자의 설계 수명이 그 정도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고에너지인 방사선에 의해 노후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메인 부품을 바꿨다고 안전성이 보장된다고 쉽게 얘기할 수 없다. 안전성 문제는 최대한 공개하는 것이 실수를 줄이는 것인데 관련 보고서와 평가서를 공개하지 않은 채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신뢰성이 떨어진다”라고 지적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대부분 수명 연장을 결정한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가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도 앞으로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제무성 교수는 “이번에 오래된 원전이 사고가 났기 때문에 아마도 깊이 있게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안전성 평가를 정밀하게 해야 한다. 고리 1호기는 안전성 평가를 충분히 하고 10년을 연장한 것으로 객관적 기준을 통과했기 때문에 안전 관리만 잘하면 별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비상 계획 있지만 실전 훈련은 ‘낙제점’
국내 원전 사고 발생 시 위기 대응 매뉴얼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천재에서 비롯되었지만 인재로 인해 상황이 악화된 측면이 강하다. 도쿄전력은 사고 원전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를 정부에게조차 정확히 전달하지 않았으며 정부 역시 사건 발생 초기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무사안일과 이기주의가 사태를 키운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 같은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정부의 방사능 대책을 다시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내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국가방사능방재대책 조직이 구성된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중앙방사능방재대책본부가 세워지고 국무총리는 보고받는 역할을 한다. 사실상 중앙방사능방재대책본부의 본부장인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총책임자 역할을 담당한다. 방재대책본부 산하에는 원전비상대책본부(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지역방사능방재대책본부(지자체장), 방사능방호기술지원본부(원자력안전기술원장), 방사선비상진료센터(원자력병원장) 등이 설치된다.

비상 대책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지만 실제 사고가 터졌을 경우 시스템이 정상적이고 원활하게 작동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일본식 관료주의와 자기 허물을 감추려는 이기주의가 발현되어 빚어진 커뮤니케이션 혼선이 국내에서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우리는 일본에서 안전 규제를 가져왔다. 일본이 우리보다 안전 규제가 강하면 강했지 절대 약하지 않다. 내진 설계도 훨씬 좋고, 대비용 설계, 비상 장치 등도 일본이 더 강하게 해놓았다. 그럼에도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라고 지적했다. 제무성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위기 발생 때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민간 조직과 자문 교수가 투입되는 조직이 구성되어 있다. 계획 수립은 해놓았지만 실제 훈련은 조금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는 좀 더 실질적으로 변화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최악 상황에도 “피해 미미”
일본 방사능 물질, 한국 공습 가능성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악화 일로로 치달으면서 여기서 나온 방사능 물질이 국내에까지 퍼지지나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대다수 전문가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대기 하층의 바람은 마찰력이 커 장거리 확산이 어렵고, 대기 상층의 바람은 서풍이 불어 국내로는 퍼지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방사능 물질이 한 번 노출되면 장기간에 걸친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다.

국민들의 우려가 확산되자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했다. 후쿠시마 원전 2호기의 노심이 완전히 녹고, 격납용기 밖으로 설계 누설률(0.5%/일)의 30배가 누출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실시되었다. 이에 따르면 일본과 가장 가까운 울릉도에 거주하는 국민에게 노출되는 방사선량은 0.3mSv(밀리시버트)로, 일반인의 연간 선량 한도인 1mSv의 30%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은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최악의 경우는 핵연료에서 방사성 물질이 다 녹고 모든 방사성 물질이 빠져나오는 것이다.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따질 때는 보수적으로 계산한다. 바람의 방향을 따지지 않고 직접적으로 온다고 가정한 값인데 그럼에도 인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정도로 나타났다”라고 설명했다. 제무성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역시 “방사능 피해는 유출되는 양이 얼마인지가 중요하다. 4호기에서 나온 방사능 물질량이 많은 것이 걱정이다. 그래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유출된 것은 최악의 사고인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비하면 상당히 미미한 양이다. 지금 상황으로 진정기에 든다면 국내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며 이번 사고로 인한 국내 피해 가능성을 작게 보았다.

반면 양이원영 환경연합에너지기후국장은 “체르노빌 원전은 위도 30˚~60˚ 사이의 편서풍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났을 당시 서쪽에 위치한 영국, 스위스, 독일 등도 피해를 보았다. 지상의 바람이 바뀌는 것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후쿠시마 원전이 체르노빌처럼 흑연으로 덮여 있지는 않지만 형식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폭발이 일어났고 방사선 물질이 나온 것은 똑같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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