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국세청 커넥션’ 진실 밝혀라
  • 박명호|동국대 정치학과 교수 ()
  • 승인 2011.03.2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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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로비 의혹 폭로 직후 제재 안 받고 출국…국내 기업들로부터 ‘수억 원대 자문료’까지 받아

 

▲ 지난 2월28일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 2월 하순 두 사람이 ‘전격 귀국’해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재미교포 에리카 김씨이다. 김씨는 2007년 대선 때 동생 김경준씨와 함께 이른바 ‘BBK 의혹’을 폭로했던 인물이다. 그녀는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BBK의 실질적 소유주이고 주가 조작에도 관여했다”라고 주장해 대선 과정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김씨는 또한 동생과 짜고 회사 자금 3백19억원을 횡령하기도 했는데, 이 가운데 50억원 정도는 그녀가 횡령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었다.

한 전 청장도 김씨 못지않다. 오히려 더하다. 그가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그림 로비 의혹’이었다.

2009년 1월 초 그의 전임자였던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부인이 “2007년 초 당시 국세청 차장이었던 한씨에게서 인사 청탁 명목으로 그림을 받았다”라고 주장한 것이 그림 로비 사건의 시작이다. 한 전 청장은 그림 로비 의혹 말고도 국세청장 연임을 위해 현 정권의 실세들에게 골프 접대를 하고 현금을 상납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전 정권 이어 현 정권과 관련해서도 ‘의혹’

한 전 청장 관련 의혹은 전·현 정권을 넘나든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결말지어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가 전 정권과 관련된 사안이다. 박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 7월 박회장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시작으로 노무현 정권 인사에 대한 대대적 사정이라는 대검 중수부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시작되었다. 한 전 청장은 현 정권과도 관련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그가 ‘도곡동 땅 실소유주는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자료를 확인’하고도 은폐했다는 의혹이다.

이렇게 보면 에리카 김씨와 한상률 전 청장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도덕성을 둘러싼 공방의 대상이었던 ‘BBK와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다. 2007년 대선 때 주요 쟁점 중 하나였던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과 관련해 진실 여부를 가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으며 왜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있었는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돌아왔다. 그것도 약속이나 한 듯 하루 간격으로. 에리카 김씨는 2007년 수사 당시 미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해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검찰은 그녀가 미국에서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3년의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귀국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어쨌든 검찰은 2007년 당시 미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지 않았다.

이러니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야당에서는 “BBK 의혹에 면죄부를 주려 하는 기획 수사설(說)이 결국 사실로 판명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의 비판은 당연하다. 2007년 당시 수사하려면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일조차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공소시효 만료’와 ‘가담 정도 경미’ 등의 사유로 김씨를 불기소 처분했기 때문이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경우도 ‘기획 입국설’ 대상이다. 한 전 청장은 2009년 1월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부인이 그림 로비 의혹을 폭로한 직후 국세청장직을 사퇴했는데 두 달 후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당시 이미 그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가진 세력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제기되었다. 각종 의혹이 난무하는데도 아무런 제재 없이 한국을 떠날 수 있었다.

한 전 청장은 귀국하면서 한 가지 의혹을 더 가지고 돌아왔다. ‘억대 자문료’이다. 2009년 3월 출국해 지난달 귀국할 때까지 한 전 청장은 미국의 한 주립대학에서 방문연구원 신분으로 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체류하는 23개월 동안 그는 국내의 10여 개 기업으로부터 ‘자문료’ 등의 명목으로 수억 원대의 돈을 받은 것으로 검찰이 확인했다. 한 전 청장은 이 돈을 “기업에 연구 보고서를 제출하고 정상적으로 받은 전형적인 자문료이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기업이 사실상 해외 도피 중인 사람에게 거액의 자문료를 지급해가면서까지 연구 보고서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렇다면 한 전 청장만이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는, 기업이 알고 싶은 사안이 따로 있는 것일까? 이 또한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얘기이다. 만약 한 전 청장만이 자문해줄 수 있는 현안이라면 의문은 더 커진다. 결국 이런저런 의문과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누가 어떤 얘기를 해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자문료 전달에 국세청 직원 관여한 정황도

이번 ‘자문료’ 사건은 그가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아직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권력의 힘이 ‘거액 자문료 수수’의 배경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어떤 개인이나 세력이 그만이 가진 비밀을 부담스러워 한다면 이 또한 충분히 가능한 얘기가 아닐까? 물론 아직은 추정에 불과하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으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더 큰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수억 원대의 자문료가 한 전 청장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국세청 직원들이 관여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미 검찰이 해당 기업 관련자들과 국세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실 관계까지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되면 한 전 청장에게 돈을 전달하는 과정에 국세청이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 제기도 가능하다. 이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2011년 ‘국세청-한상률 커넥션’은 1997년 대선 때 있었던 ‘세풍 사건’의 재판(再版)이다. 이 사건은 당시 이석희 국세청 차장이 기업에서 1백60억여 원의 정치 자금을 직접 모금한 일로, 국세청의 위상을 땅에 떨어뜨린 일이었다. 한 전 청장이 도피 중에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자문료를 받은 것도 논란의 대상이지만, 이 과정에서 국세청이 직·간접으로 관여했다면 이것은 더 심각한 문제이다. 국세청의 조직적 개입이 사실이라면 국민들은 더 이상 국세청을 믿을 수 없다.

조직으로서의 국세청의 위상과 신뢰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불행하게도 ‘국세청-한상률 커넥션’은 국세청 감찰 부서에서 해결할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무언가를 또 감추려 한다는 국민적 의문만 증폭될 뿐 국민적 불만을 해소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검찰이 나서야 할까? 순서는 그러한데 에리카 김씨 수사 사례를 보면 여기도 그렇게 미덥지 않다. 한마디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이명박 정부가 힘 있을 때 문제 사건들을 처리하려는, 정권 마무리 차원이 아닌가 생각된다”라는 지적이 뼈아프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록히드 스캔들을 수사하면서 일본 검찰은 다나까 전 총리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이때 한 수사 검사는 “나는 오로지 증거를 찾아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세청과 검찰이 진작 이런 자세를 보여주었다면 ‘기획 입국’이니, ‘기획 수사’니 하는 각종 ‘기획설’은 애당초 없었을 것이다. 국민들도 당연히 국세청과 검찰을 믿을 수 있다. 그리스 속담에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러니 로베스피에르가 “백성은 선하고 관리들은 부패하기 쉽다고 전제하지 않는 제도는 모두 나쁘다”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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