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오만에 대한 참혹한 경고
  • 김재태 편집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1.03.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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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지병이 있어 계속 치료를 받아왔던 사람들, 복용하던 약이 있던 사람들, 고령자, 장애인들의 체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피해 지역에 의료진이 지원되고 있으나 절대적으로 인원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정부의 강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일본 동북부 지방에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고 1주일이 지난 3월18일 오후 일본 NHK 방송에서는 이런 멘트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동안 그 혹독한 사태 앞에서도 현장 상황을 냉정하리만치 차분하게 보도해 오던 NHK가 ‘정부의 리더십’에 대해 한마디 하고 나선 것이 새삼 눈길을 끌었습니다. 열악하기 그지없는 대피소 상황에 비추어보면, 침착하던 NHK가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나선 것은 당연한 귀결로 보였습니다.

재앙의 터널에 갇힌 일본의 상황은 날이 지나도 여전히 암울하기만 합니다. 주머니 속에 감추어져 있던 송곳이 삐져나오듯 날마다 불길한 소식들이 잇따라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합니다. 방사능 오염 공포는 우유, 채소, 생선을 넘어 급기야 인구가 밀집한 도쿄의 수돗물에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지진이나 쓰나미는 피해 정도가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방사성 물질의 위험은 다릅니다. 이동 경로도 눈에 보이지 않고 상황이 언제 종료될지도 알 수 없기에 불안이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진과 쓰나미는 인간의 기술과 노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연재해인 탓에 말 그대로 불가항력적입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원인은 지진과 쓰나미가 제공했으나, 초기에 민첩하게 대처했더라면 그처럼 사태가 악화되는 것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이없는 욕망과 자만이 일을 키운 것입니다. 냉각에 필요한 바닷물을 늦게 투입한 것도, 미국의 지원을 거부한 것도 모두 그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번 원전 사고를 계기로 국내외에서 원전 건설의 안전성을 묻는 질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찬반은 뚜렷하게 갈립니다. 화력 발전에만 의존해서는 환경 오염 문제를 풀 수 없다는 현실적인 제약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무턱대고 원전에만 기대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번 일본의 참사는 우리에게 자연의 위력에 대한 경각심도 함께 일깨웠습니다. 제어되지 않은 욕망과 자만은 자연 앞에서 늘 천둥벌거숭이처럼 위태롭습니다. 나무 하나를 베더라도 그 나무에게 다가가 벨 것을 허락해달라고 간청하는 북아메리카 인디언처럼 겸손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연 앞에서 최소한 우쭐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자연과 동화하는 삶과 기술이 절실합니다.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 발전 같은 대체 에너지원 개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번듯한 의식주를 갖춰주는 것보다 궁극적으로 훨씬 더 살기 좋은 미래를 열어줄 것임은 분명합니다. 전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세워진 원전이 자기가 쓸 전력을 구하지 못해 사고를 낸 그 우울한 아이러니가 지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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