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의 반격에 갇힌 ‘국방 개혁’
  • 김종대│D&D포커스 편집장 ()
  • 승인 2011.04.04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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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들, “비전문가들 손에서 좌지우지되었다” 비판…정부측 초강경 발언에 감정싸움 비화 조짐

“원래 서해북부사령부는 군단급으로 해병대 사령관(중장) 지휘하에 육군 1개 사단, 해군 인천해역방어사령부, 공군 2개 비행대대를 예하에 두는 것으로 구상되었다. 그러나 육·해·공 3군의 이기주의와 저항 때문에 결국 축소되었다.”

이상우 전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이 지난 3월21일 보수 성향의 한 유력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육·해·공군의 장군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3월8일 발표된 국방부의 ‘국방 개혁 307계획’에 이상우 위원장이 주장한 서해북부사령부 창설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애초 비현실적이고 실효성도 없는 구상이었다는 것이 군 내부 대다수의 반응이었다. “해병대 사령관이 공군 비행대대를 지휘한다는 구상은 군사적 아마추어리즘에 다름 아니다”라는 반응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이위원장이 본인 탓을 하지 않고, 이를 각 군의 ‘자군 이기주의’ 탓으로 전가하는 데 대한 군의 냉소적 반응이 표출되고 있는 셈이다. 

▲ 지난해 12월21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전날 연평도 해상 사격 훈련을 지휘한 김관진 국방부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307 계획’ 개입한 대통령과 측근에 불만

이상우 위원장이 군을 자극한 발언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천안함 사건은 우리 군의 고질적인 내부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다. 군 간부들이 지난 60여 년간 공기업 임원처럼 대과(大過) 없이 (임기) 2년만 마칠 생각을 해왔다. 미군에 지나치게 의존해 무책임해진 측면도 있다”라고 군을 강하게 비판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겪고 사기가 저하될 대로 저하된 상황에서 현역 장교들은 이 말에 다시 한번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해군의 한 대령은 지난해 천안함 사건 직후 화병을 얻어 올해 사망했다. 그가 병을 얻은 이유는 천안함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감사원 감사와 각종 조사에서 해군의 ‘은폐·조작의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자 이에 깊이 좌절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우 위원장의 강도 높은 군 비난 발언 이후,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는 ‘국방 개혁 307계획’에 다른 의견이라도 나올라 치면 ‘자군 이기주의’라며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2월23일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재향군인회와 성우회 임원들을 초청해 국방 개혁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야유와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현역 장교단 내에서까지 국방 개혁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조성되자 “예비역들이 현역을 선동한다”라며 이를 차단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였다. 이런 흐름은 3월7일 대통령에게 국방 개혁안이 보고될 당시에도 나타났다. 이대통령이 “예비역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개혁을 추진하라”라고 김관진 장관에게 지시한 것이다.

급기야 3월29일에는 정부 고위 관계자가 “국방 개혁에 저항하는 현역들을 ‘항명’으로 간주하고 인사 조치한다”라는 초강경 발언까지 나왔다. 바야흐로 국방 개혁은 감정과 자존심의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청와대의 말처럼 지금 각 군이 밥그릇 싸움에만 매달려 있는 것일까? 자세히 살펴보면, 군 개혁에 대한 논란은 합참의장이 각 군 총장을 지휘하며 인사·군수와 같은 군정권까지 행사하는 군 상부 구조 개편안을 비판하는 데 모아져 있다. 여기에는 해군과 공군뿐만 아니라 육군 출신인 전직 국방부장관인 ㄱ씨, ㅈ씨도 가세했다. 다음은 해군 제독 출신의 한 예비역이 필자에게 밝힌 내용이다.

“천안함 사건이 벌어지고 며칠이 지난 후 백령도 근방으로 중국 어선에 섞여 북한 경비정이 남하하기 시작했다. 합참의장은 해군에 실탄으로 격파할 것을 지시했다. 해군은 ‘중국 어선 격파는 작전 예규에 맞지 않는다’라며 저항했다. 이에 합참의장은 재차 사격을 지시했으나, 때마침 이 사실을 안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황급히 ‘쏘지 마라’라고 진화해 사태는 진정되었다. 만일 그때 사격이 벌어졌다면 천안함 위기는 더 큰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바다에서는 오직 해군만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이처럼 부지기수이다.”

전문성 없는 육군 위주의 합참이 천안함 사건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해상 작전에서 부적절한 지시와 간섭을 해 우리의 전투원들을 위험에 빠뜨린 사례는 여럿 있었다고 그는 증언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작전지휘부에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현대 전쟁을 제대로 통찰할 수 있는 전문성 보강인데, 이런 내용은 개혁안에서 쏙 빠져 있고 오직 각 군에 대한 통제와 지배력을 강화하는 ‘조직의 논리’로만 접근한 것이 이번 국방 개혁 307계획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더불어 이런 항변조차 ‘자군 이기주의’로 매도되는 상황에 대해 “해·공군 장교들은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라고 덧붙였다.

“전문성 존중한다더니 역행하는 처사” 발끈

▲ 지난 3월30일 국방부에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간부 3백여 명을 대상으로 열린 ‘국방 개혁 307계획’ 설명회. ⓒ연합뉴스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 역시 이번 국방 개혁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필자에게 “우리가 2012년 전작권 전환을 2015년으로 미룬 이유가 안보의 전환기적 상황에서 군의 지휘 체계를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으로 안다. 군제 개편의 충격은 전작권 전환 문제 못지않다. 그런데 전작권은 미루면서 군 상부 구조 개혁안을 앞당겨 군을 혼란에 빠뜨리는 이유를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전 총장은 이번 국방 개혁의 시기·방법·내용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사실 이번 307계획에서 표방한 군의 ‘합동성 강화’는 각 군의 전문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각 군의 교육과 군수 기능을 통합해 새로운 기능사령부를 창설하고 참모총장이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도록 한 처사는 전문성 존중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주장이다.

지난 1990년 당시 노태우 정부가 통합군 제도를 지향한 국군조직법 개정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다. 이 교훈을 현 정부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더군다나 이번 307계획은 김관진 장관이 애초 구상했던 ‘합동군사령부 창설’ 안과도 거리가 있는, 청와대 구상에 더 가깝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이상우 위원장,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국방 개혁안 구상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군에 대해 비전문가인 이들 손에서 국방 개혁이 좌지우지되었다는 점은 현역들로부터 당혹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3월23일 설명회에서 일부 예비역들이 이상우 위원장과 김태효 비서관을 면전에 두고 직격탄을 날린 것도 이러한 심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청와대와 국방부가 현역 군인과 예비역들을 직접 설득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분위기로 볼 때 폭넓은 의견 수렴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홍보나 전달 정도로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국방 개혁은 20년, 30년을 내다보는 장기 계획이고 포괄적인 계획이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와 같이 공론화가 생략된 채로 밀어붙이는 식의 국방 개혁은 이미 절반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비판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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