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카터 효과’ 또다시 통할까
  • 김동현│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교수 ()
  • 승인 2011.04.04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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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94년 6월15일 판문점을 통해 방북하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 ⓒ연합뉴스
최근 북·미 간 민간 차원의 접촉이 활발해졌다. 이른바 ‘트랙 투 외교(Track Two Diplomacy)’를 풀가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엄밀히 따지면, 트랙 투 외교는 민간 대 민간 사이의 외교를 지칭하지만, 북한의 체제 성격상 북한과의 트랙 투는 북한의 관리들과 미국의 민간인들 또는 민간 기구와의 접촉을 말한다. 북한은 미국과 정부 대 정부 간의 대화의 길이 막혀 있을 때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중량급의 미국 민간인 인사나, 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을 평양으로 초청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미국 정부를 상대로 메시지를 보내는 전략을 펼쳐왔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있어왔던 북·미 간 민간 접촉 중에서 가장 실효를 발휘한 것은 1994년 1차 북핵 위기 해소의 돌파구를 마련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이었다. 그런 카터 전 대통령이 4월 중에 다시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미 관계에 뭔가 변화가 모색되는 것이 아니냐는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사실 오바마 정부 들어서도 미국의 중량급 인사가 평양을 방문한 사례가 몇 번 있었다. 우선 지난해 12월에는 뉴멕시코의 리처드슨 주지사가 방북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북·미 관계 담당 관리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그는 북한이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것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요원을 다시 받아들이며, 재처리 이전의 폐연료를 제3국으로 수출하겠다는 입장을 알아냈다. 리처드슨 주지사는 워싱턴에 돌아와 오바마 행정부에 북한과 대화를 재개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으나, 미국 행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북한은 급해지면, 리처드슨 주지사에게 자문과 도움을 청하곤 했다.

지난해 7월에는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때 그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채 김영남 상임위원장만 만나고 돌아왔다. 그 성과 또한 최소한의 방북 목표인, 억류된 미국인 굼스의 석방만 달성하는 데 그쳤다. 카터 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미 간의 직접 대화를 촉구해왔다. 그리고 그가 북한으로부터 들은 주장을 가감 없이 옮기면서, “미국이 양자 대화에 응하지 않으면, 북한은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조치를 다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2010년 11월24일자 <워싱턴 포스트> 투고 내용). 하지만 이러한 카터 전 대통령의 권고나 경고도 오바마 행정부에게는 별로 통하지 못했다. 

2009년 여름에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 여기자 두 명의 석방을 위해 김정일 위원장과 3시간 동안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클린턴 전 대통령의 초중량급 민간 외교도 특별한 효과를 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를 가지고 간 것이 아니었다. 평양에서도 그는 개인적인 견해로 “북한이 보즈워스 대북 특사(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초청해보라”라고 권고했고, 그해 12월에 보즈워스가 실제로 평양을 방문했다. 물론 그때도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과 대화를 원한다”라는 입장을 밝혔고,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 말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역시 오바마 대통령은 별다른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보즈워스 특별대표를 평양에 보낸 것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김정일 위원장은 여전히 북한을 확실히 계속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판단 때문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병세와 관련된 북한의 급변 사태를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이다. 즉,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공식 방북은 클린턴의 방북 효과였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1994년과 상황 너무 달라…다른 ‘선물’ 기대

오바마 대통령의 북한 정책은 한국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핵화를 위한 협상에는 응하겠지만, 북한이 먼저 실질적인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일 때까지 기다리면서 제재 조치를 지속한다는, 압력과 조건부 대화의 양 궤도 전략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전략이 지금까지 북핵 문제 해결에 긍정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방관만 할 것이냐”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지난 3월1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민주당의 존 켈리 위원장은 북·미 대화를 촉구했고, 공화당 디크 루가 간사는 “오바마 행정부가 도대체 북핵 문제 해결책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지난 1월 오바마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하자”라고 합의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즉, 남북 관계 개선은 6자회담 재개의 조건으로 남아 있고, 남북 대화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가 조건으로 되어 있다. 최근 백두산 화산 폭발 연구를 위한 남북한 접촉이나 인도적인 문제를 다루는 적십자 회담 등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지만, 이것이 천안함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런 판국에 카터 전 대통령이 다시 나서서 3차 북핵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의 내외 문제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는 1994년 당시 자신이 했던 해결사 역할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때도 클린턴 정부의 메시지를 가지고 간 것은 아니었다. 카터 전 대통령이 당시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얻어낸 말은 “미국이 경수로를 제공해주면, 핵을 포기하겠다”라는 것이었다. 카터는 다시 한번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너무도 다르다.

최근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민주화 바람이 일고 있고, 리비아에 대한 다국적군의 군사 공격까지 가해지고 있는 마당에 미국의 관심 역시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북한은 리비아가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다국적군에 의해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라크 역시 핵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에 당했다고 하면서, 북한이 핵 억지력을 개발한 것은 백 번 천 번 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래저래 북핵 문제의 해결 전망은 더욱 어두워만 보이는 시점이다. 카터 전 대통령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

카터 전 대통령의 기대감은 다른 데에 있을 수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해 방북 때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데 대해 미안함을 갖고 있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은 의욕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김정일 위원장이 국제 핵사찰 요원들을 다시 받아들이고, 경수로 건설 사업장을 사찰케 하고, 현재까지 생산한 플루토늄과 핵 폭발 장치를 보여준다면, 북핵 협상은 일사천리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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