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사태‘종결자’는 박근혜
  • 조진범│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1.04.0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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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추진’ 표명으로 논란 정리… ‘제2 세종시 파문’은 없을 듯

 

▲ 지난 3월31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방문 중 신공항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한마디’로 그동안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신공항 문제가 사실상 정리되었다. 지난 3월31일 대구 달성군에서 열린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취임식에 참석한 박 전 대표는 “동남권 신공항을 계속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 유감스럽다”라며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기도 했다. 언뜻 이명박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에 강하게 반발하는 모양새로 비친다. 그래서 지난해 ‘8·21 청와대 회동’ 이후 유지된 이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의 화해와 협력의 ‘데당트’가 사라지고 다시 불편한 관계로 돌아서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르다. ‘친박계’는 극도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청와대의 심사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당장 이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려는 의도가 아니다”라는 것이 ‘친박계’ 의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친박계 초선인 조원진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발언은) 원론적인 언급으로 보인다. 신공항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뿐이다. 대선 공약 파기에 대한 비판도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 하지만 세종시와는 다르다. 박 전 대표도 그 점은 분명히 했다”라고 말했다. 실제 박 전 대표는 세종시 사태와의 연관성에 대해 “세종시는 법으로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고, 이번 공항 문제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라며 ‘제2의 세종시’로 확대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 역할을 맡고 있는 이학재 의원의 해석도 비슷했다. 그는 “정책적인 발언으로 보아야 한다. 언론에서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정치적 파장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결코 이대통령과 싸우려는 의도는 없다. 오히려 들끓고 있는 영남권 민심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누군가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영남권에서 터질 시위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대구시당위원장인 재선의 친박계 유승민 의원도 “영남권 민심을 좀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반기고 기대하는 분위기는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신공항 백지화’가 ‘박근혜 흔들기’라는 시각이 존재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의 지지층을 영남권과 충청권에 고립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 친박계 일각의 인식이었다. 지난해 세종시 사태가 터지고 수도권 여론이 악화되면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진 ‘학습 효과’ 때문이다.

세종시 사태 당시 박 전 대표는 충청권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반대 급부로 수도권에서는 비판을 받았다. 신공항 백지화가 ‘제2의 세종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친박계는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영남권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층이 분열할 가능성도 걱정되었다. 박 전 대표가 대구·경북과 부산 가운데 어느 한 쪽 손을 들 경우, 탈락한 지역의 지지층 이탈은 불가피하다. 대구·경북은 밀양, 부산은 가덕도를 신공항 입지로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 박 전 대표가 수도권과 영남권의 여론을 감안해 정부의 결정을 수용할 것으로 잘못 해석하는 일도 벌어졌다. ‘친이계’ 주류측도 박 전 대표가 강하게 치고 나가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았었다. 박 전 대표의 입장 발표가 있기 하루 전인 3월30일 한 친이계 주류측 인사는 기자에게 “박 전 대표도 이제 5백만명에 불과한 대구·경북이 아니라 2천3백만명의 수도권을 바라보고 정치를 해야 한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대해) 온건하게 말하지 않겠느냐”라고 예상했다.

박 전 대표의 ‘동남권 신공항 발언’은 친이계 주류측의 예상을 넘은 강도였지만, 제2의 세종시 사태로 비화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박 전 대표의 신공항 재추진 의견을 따라 이명박 정부가 신공항을 다시 검토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여론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도 친박계에서 감지된다. 이학재 의원은 “수도권에 당장 악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아니지 않느냐. 동남권 신공항이 생긴다고 수도권 주민들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도 볼 수 없다. 그리고 10년 후의 문제이다”라고 설명했다.

‘거리 두기’도 ‘독자 행보’도 아닌 것으로 보여

▲ 지난 3월30일 동남권 신공항 입지 평가단 박창호 위원장이 정부과천청사에서 입지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하지만 친박계의 바람과는 달리, 어느 정도의 정치적 파장과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는 의견이 많다. 박 전 대표가 ‘신뢰 정치’ 카드로 이대통령과 차별화를 선언하면서 친이계 주류측의 반격이 예상된다. 수도권의 한 친이계 의원은 아예 “박 전 대표가 직격탄을 날렸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한때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린 김무성 원내대표도 박 전 대표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김원내대표는 “공약이 잘못된 것이라면 바로잡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자 용기이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공약을 내걸었다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잘못된 것임을 알고 수정한 바 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신공항 재추진 발언이 향후 대선 가도에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대구·경북과 부산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재연되면서 박 전 대표가 곤란을 겪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친박계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차기 정부에서 (신공항을) 책임질 위치에 있다면 공정하게 하면 된다. 지금처럼 음흉한 절차를 밟지 않고 투명하게 진행한다면 승복할 것으로 본다”라고 애써 낙관론을 폈다.

이번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계기로 박 전 대표의 ‘정책 행보’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권의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로서 이명박 정부와 ‘거리’가 있는 정책적 목소리를 결코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히는 까닭이다. 이대통령과의 정치적 관계는 별개의 문제이다.

유승민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신공항 발언은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평소의 소신이고, 국가 운영의 철학으로 보아야 한다. 대통령과의 관계를 적절히 해나가면서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정책적 목소리는 꾸준히 낼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정치적으로 ‘독자 행보’에 나선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이대통령과의 ‘거리 두기’도 아직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영남권의 또 다른 친박계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신공항 발언을 잘 살펴보라. 대통령을 향해 칼을 빼든 것이 결코 아니다. ‘지금 당장은 경제성이 없더라도 미래에는 신공항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맹목적인 반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전면적인 대결 구도가 형성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동남권 신공항 사태는 청와대와 박 전 대표 간 양측의 갈등 재연보다는, 오히려 양측 간 ‘화해와 협력의 데탕트’가 생각보다 상당히 견고한 수준임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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