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자력 산업 사양길 접어들다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1.04.1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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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상황에 일본발 악재까지 겹쳐

 

▲ 1979년 3월 원전 사고가 발생했던 미국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 섬 원전의 냉각탑 위로 성조기가 나부끼고 있다. ⓒ로이터

일본의 원전 공포가 수그러들지 않자 미국에서도 원자력발전소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재 31개 주에서 1백4곳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 주로 동부와 중부 지역에 몰려 있다. 일리노이 주에는 11곳이나 있고 펜실베니아 주에는 아홉 곳의 원전이 있다. 미국에서는 1979년 3월28일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 아일랜드에 있던 두 곳의 원전 가운데 두 번째 발전소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그 후 30년 동안 원전 건설이 중단되었다가 최근 들어 재개되어 20여 곳에 대한 원전 건설 허가 신청서들이 심사되고 있다.

그러나 원전 건설에 드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상황에서 일본 원전 공포가 엄습해 미국에서 원전 사업은 사양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30년 동안 신규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서 미국 내 원전들은 대부분 오래되고 낡은 발전소들로 나타났다. 전체 1백4곳의 원전들 가운데 20년 이상이 48곳, 30년 이상이 46곳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40년 이상 된 원전들도 일곱 군데에 달하고 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분류한 미국 내 원자력발전소 가동 연수를 보면 10년이 안 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10년에서 19년 사이의 발전소들도 고작 세 곳에 불과하다.

가장 많은 가동 연수는 20년에서 29년 사이로 전체의 절반인 48곳에 달한다. 일리노이에 일곱 곳, 펜실베이니아에 다섯 곳, 캘리포니아에 네 곳의 원자력발전소들은 이 범주에 속하고 있다. 그와 비슷한 46곳은 가동한 지 30년에서 39년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에 있는 각 네 군데씩의 원전들이 이 범주에 포함되어 있다. 40년 이상 된 원자력발전소들도 일곱 군데나 있는데 뉴욕에 두 곳, 일리노이 등 다섯 개주에 한 곳씩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백4곳 중 35곳에 일본과 같은 위험 상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 따르면 1백4곳의 미국 내 원자력발전소 가운데 35곳이 폭발 사고를 일으킨 일본 후쿠시마 원자로와 같은 형식인 비등형 경수로(Boiling Water Reactor)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등형 경수로는 원자로 자체에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림으로써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인데 일본의 경우와 같이 천재지변으로 전기 공급이 끊겨 냉각수 펌프가 작동하지 않으면 원자로 핵 연료봉 노심이 가열되어 녹아내리고 수소가 발생한 후 폭발할 위험에 빠지게 된다. 반면 가압 경수로(Pressurized Water Reactor)는 냉각수 공급 장치가 따로 있고 백업 장치들을 보강해 노심 과열과 용해 위험을 낮추고 수소 제거 장치가 있어 폭발 가능성도 줄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미국 내 원자력발전소들의 대부분은 가압 경수로인 데다가 전력 백업 장치들을 대거 보강했기 때문에 상당한 강도의 지진이나 쓰나미, 토네이도와 허리케인 등 천재지변에도 견딜 수 있어 안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내 원자력발전소 가운데 지진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서 가동 중인 곳은 캘리포니아 산 루이스 오피스포 인근에 있는 디아블로 캐논 발전소와 롱비치 부근의 산 오노프레 발전소 등 두 곳이며, 원자로는 각 2기씩을 보유하고 있다.

이 두 곳의 원자로는 모두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는 다른 가압형 경수로이고 백업 장치들을 완비해놓고 있으며 진도 7.5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설계되어 있어 일본과 같은 위험성은 거의 없다고 원자력규제위원회는 밝혔다. 하지만 이번 일본과 같이 7.5도 이상의 이른바 빅원(초강진)에 강타당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새로운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은 전역에서 핵폭탄을 안고 있는 형국임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 내 원자력발전소들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 곳이라도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다면 대재앙을 겪게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정부는 1982년부터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를 추산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놓고 있다. 미국 정부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핵발전소가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들과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지에 따라 인명 및 재산 피해 규모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리머릭 원전이 최악의 재앙을 겪을 수 있는 곳으로 경고되어 있다. 이 원전은 필라델피아에서 21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다면 최악의 핵 재앙을 겪을 것이라고 미국 정부는 추산해놓고 있다. 만약 이곳에서 핵 사고가 발생한다면 인명 피해 규모는 무려 71만8천명에 달할 것이라고 미국 정부는 추정했다. 이곳의 원전은 두 유닛으로 나뉘어 있는데, 재산 피해도 한 곳은 2천1백30억 달러, 다른 한 곳은 1천9백7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큰 재앙을 겪을 위험이 있는 원전들은 뉴올리언스와 가까운 곳에 있는 루이지애나 워터포드 원전과 미시건 주의 디트로이트와 톨레도에 인접해 있는 엔리코 페르미 원전이다. 이 두 곳에서는 30만명 규모의 인명 피해를 볼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와 함께 뉴저지의 살렘 원전, 최대의 도시 뉴욕 시에서 불과 24마일 떨어져 있는 뉴욕 주의 인디언 포인트 원전,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11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비버 밸리 원전 등이 20만명대의 인명 피해를 낼 것으로 미국 정부는 추산했다.

 

 

오바마는 원자력 에너지 확대 정책 고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원자력규제위원회에 미국 전역에 있는 원자력발전소들의 안전 상태를 전면 재점검하라고 지시해 현재 광범위한 점검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백4곳에 달하는 원자력발전소들이 지진과 쓰나미, 허리케인과 토네이도 등 천재지변에도 견딜 수 있는 상태인지, 냉각수 공급 장치 등에서 백업 체계는 잘 갖추고 있는지 등을 종합 점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의 방사능 공포에도 미국은 원자력 에너지 확대 정책을 고수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내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하다고 평가하고 원전 증설을 비롯한 원자력 에너지 확대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스티븐 추 에너지부장관과 그레고리 야스코 원자력규제위원회 위원장은 의회 청문회와 백악관 브리핑 등을 통해 미국 내 1백4곳의 원자력발전소들이 모두 안전하다고 밝히고 핵에너지 정책을 고수할 것임을 밝혔다. 스티븐 추 에너지장관은 이날 상원 에너지자원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민들은 미국 내 원전들이 가장 강력한 규정에 의해 안전하게 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확신해도 좋다”라고 밝혔다. 스티븐 추 에너지장관은 따라서 원자력 발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확대해 나가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추 장관은 이어 30여 년 만에 재개하기로 한 원자력발전소 신규 건설을 위한 정부 허가서 심사는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적 이유에다 일본 원전 공포까지 겹치는 바람에 미국의 핵에너지 정책에 큰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30년 이상 새로운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해오다가 이를 재개키로 하고 현재 12개사의 원전 20곳 신설 신청서를 심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테네시 주에 세워질 새 원전은 수년 전부터 공사가 진행되어왔으나 극심한 지역 내 논란으로 완공하지 못했다. 2013년 가동을 새로운 목표로 잡았으나 이 또한 불투명한 상태이다.

이어 조지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새 원전은 부지를 결정하고 2016년 가동할 예정이며 다른 여덟 곳의 원자력발전소는 2020년에 완공될 계획인데 거센 찬반 논란에 휩싸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 워싱턴 정가에서는 원자력 에너지 확대 정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일본의 방사능 누출 사태가 재앙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미국 내 원전도 신규 건설 동결 또는 금지 쪽으로 급선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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