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 세금 피하기 ‘샛길’ 곳곳에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04.1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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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감세·면세 규정 교묘히 이용해 회피…선물이나 옵션 같은 파생상품까지 동원

 

 

권혁 회장 사건을 계기로 부자들이 어떤 식으로 세금을 줄이려 하는지가 관심을 끈다. 마침 미국 경제 주간지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가 최근호에서 ‘미국 부자의 세금 내지 않는 방법’이라는 커버스토리를 실었다.

4백50억 달러 재산을 가진 워렌 버핏과 청소부 가운데 누가 높은 세율의 세금을 낼까? 상식적으로는 소득이 많은 버핏이 청소부보다 높은 세율을 부담해야 한다. 미국 세법에서도 누진세 조항이 있어 소득이 늘어날수록 세금 부담액이 늘어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버핏이 내는 세율이 낮다. 버핏은 “내 소득 대부분이 배당 소득이다 보니 내가 부담하는 세율이 내 사무실을 청소하는 이가 내는 세율보다 낮다”라고 자랑한다. 미국에서 배당 소득은 몇 가지 요건만 갖추면 근로 소득보다 훨씬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다.

미국, 세금 제대로 내는 부자는 바보 취급

▲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EPA

지금 미국 부자들 사이에서는 세금을 제대로 내면 바보 취급을 받는다. 지난 2006년 32조원을 기부한 버핏마저 세금 납부액은 줄이려 애쓴다. 자본이득세, 양도소득세, 상속·증여세를 줄이기 위해 온갖 신출귀몰한 방안이 동원된다. 그렇다고 불법을 자행하지는 않는다. 합법과 불법 사이에 숨겨져 있는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따라가며 절세 방안을 찾는다. 이중 과세 방지나 투자 장려 차원에서 만들어진 감세 내지 면세 규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선물이나 옵션 같은 파생상품을 동원하기도 한다. 회계사와 변호사까지 고용한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가 소개한, 미국 억만장자가 즐겨 쓰는 ‘절세 내지 면세 방법 8가지’를 소개한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은 세계 3대 부자이다. 지난해 보유 자산 규모가 2백50억 달러를 넘었다. 엘리슨 회장은 지난해 연봉으로 25만1달러를 받았으나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으로 6천2백만 달러를 챙겼다. 엘리슨 회장은 스톡옵션으로 벌어들인 소득에 과세되는 세금을 낼지 말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내더라도 언제 낼지까지 정할 수 있다. 회사가 대표이사 연봉을 높이면 원천 징수 되는 소득세가 크게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미국 기업의 대표이사는 현금보다 스톡옵션을 선호한다.

억만장자 필립 앤슈츠는 상상력이 지나친 절세 방법을 동원해 미국 국세청을 당혹케 했다. 팔지 않고 빌리는 방법으로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보유 주식을 현금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가 2억 달러나 되는 회사 지분을 갖고 있는 사장이 현금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팔자니 양도소득세 3천만 달러를 납부해야 한다. 사장은 우선 투자은행에게 주식을 담보로 2억 달러를 빌린다. 이와 동시에 주식을 현재 가격으로 매매할 수 있는 선물이나 옵션 계약을 체결한다. 주가가 떨어져 2억 달러를 갚지 못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빌린 돈은 갚을 수도 있고 그냥 가질 수도 있다. 돈을 그냥 갖고자 하면 담보로 맡긴 주식을 투자은행에게 넘기면 된다. 세금은 한참 후에나 나온다. 그동안 사장은 현금을 재투자하거나 굴려 자본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미국 조세법원은 지난해 이 방법을 탈법으로 규정하고 앤슈츠에게 세금 9천4백만 달러를 납부하라고 판결했다. 앤슈츠는 바로 항소했다.

미국 보스턴 부동산 개발업자 아더 윈은 자회사를 만드는 방법으로 양도소득세 납부를 늦췄다. 또 상속세 한 푼 내지 않고 거액의 자산을 자녀에게 상속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윈은 동업자와 회사 지분 절반씩을 가진 합명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 회사가 1억 달러짜리 상업용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상업용 건물을 팔면 5천만 달러의 양도 차익이 생겨 양도소득세 7백50만 달러를 내야 한다. 윈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기가 막힌 방법을 동원했다. 우선 회사가 5천만 달러를 빌린다. 이어 자회사를 세우고 자본금으로 5천만 달러를 납입한다. 자회사는 5천만 달러를 3년 만기 채권증서를 받고 금융기관에 빌려준다. 회사는 윈이 보유한 회사 지분 50%를 받는 대신 자회사 지분 100%를 윈에게 넘긴다. 이로써 윈은 5천만 달러 3년 만기 채권증서를 가진 회사를 온전히 소유하게 된다.

▲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 ⓒAP연합

필립 나이트 나이키 회장,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 제임스 골만 모건스탠리 회장은 상속·증여세를 피하면서 자녀에게 돈을 증여하고 있다. 세 아버지는 수혜자가 자녀로 지정된 ‘수여자보유연금신탁(GRAT)’을 만들었다. 그리고 신탁에 거액을 맡겼다. 신탁이 신탁 자산을 굴려 수익을 거둔다. 이 회사는 미국 국세청이 정한 금리 3%를 넘는 수익금은 상속·증여세 없이 자녀에게 넘길 수 있다.   

파트너십(합자회사)이라는 독특한 법인 형태를 이용해 양도소득세를 피하는 방법도 있다. 미국 미디어그룹 트리뷴은 지난 2008~09년 수억 달러나 되는 수익형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해당 부동산 가치가 1억 달러이고 해당 부동산은 전액 감가 상각되어 장부 가치가 없다고 가정하자. 이 부동산을 팔면 매각 대금 전액이 과세 대상 소득이 되어 자본이득세 1천5백만 달러를 내야 한다. 회사는 해당 부동산을 바로 팔기보다 매입 희망자와 파트너십을 만들었다. 트리뷴은 해당 부동산을, 매입 희망자는 현금이나 다른 자산을 파트너십에 출자했다. 파트너십은 부동산을 담보로 1억 달러를 빌린다. 파트너십은 현금 1억 달러를 트리뷴에게 지급한다. 이 현금은 매각 대금이 아니라 트리뷴이 출자한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금으로 인식된다. 매각이 기술적으로 매각으로 취급되지 않아 양도소득세 납부도 늦춰진다.

한국도 특례 조항 활용하면 세금 회피 가능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이중 과세 방지, 투자 장려 차원에서 마련된 갖가지 특례 조항을 활용하면 자본소득에 과세되는 갖가지 세금을 피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조세법 전문가나 세무사는 거액 자산가에게 상속 내지 증여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자문하고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윤석민 딜로이트안진 회계사는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절세 방법은 한국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기본 조항이 다르다 보니까 미국에서는 늦출 수 있는 세금을 바로 납부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럴 경우에도 국내 조세법 체계에 있는 갖가지 특례 조항을 활용하면 비슷한 절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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