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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률 수사, 누가 김 뺐나

권력형 비리 못 밝히고 서둘러 마무리…수사팀은 ‘수사 의견’ 제시했으나 지검장이 제동

김정우│한국일보 법조팀 기자 ㅣ 승인 2011.04.18(Mon) 19: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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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11일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긴급 고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깃털’만 뽑는 선에서 끝났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철저히 개인 비리 차원에서, 그것도 최소한의 정도만 밝혀내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최윤수)는 4월15일 한 전 청장을 뇌물 공여 및 뇌물 수수 공범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07년 국세청 차장 시절 전군표 당시 청장에게 차기 청장 경쟁자인 김 아무개 전 지방국세청장을 밀어내달라는 청탁과 함께 고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건네고, 미국 체류 시절 주정업체 3~4곳에서 수천만 원을 받았다는 것이 검찰이 밝힌 한 전 청장의 혐의이다.

정작 관심을 모았던 ‘권력형 비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여기에 없다.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의 주변 인물들과 골프 모임을 갖고 유임 로비를 했다거나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를 했다는 의혹 등은 무혐의 처리되었다.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이 폭로한 각종 비리 의혹들도 모두 ‘클리어’되었다. 그를 두고 ‘판도라의 상자’ ‘시한폭탄’이라는 비유가 끊이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허무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수사 결과이다.

‘애초 검찰의 수사 의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냐’라는 의혹 어린 시선은 한층 더 강렬해졌다. 2009년 1월 ‘그림 로비’와 ‘골프 로비’ 파문이 잇따라 터지자, 당시 국세청장 유임이 유력시되었던 한상률 전 청장은 불명예 사퇴를 했다. 한 전 청장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으나, 검찰은 “수사 의뢰가 들어오면 하겠다”라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국민적 의혹이 컸던 만큼 검찰이 자체 인지 형식으로 수사에 나설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적극적인 수사 의지가 없었다는 얘기이다.

이러한 검찰의 태도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한 전 청장은 퇴임 후 두 달 만인 3월15일, 갑작스레 미국으로 떠났다. ‘대학에서의 연구’가 목적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도피성 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박연차 게이트’ 사건이나 안원구 전 국장의 폭로 등을 계기로 한 전 청장의 또 다른 비리 의혹이 불거지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검찰은 “범죄인 인도 청구까지 할 만한 사안이 아니어서 강제 귀국시킬 방안은 없다”라며 자진 귀국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러다 지난 2월24일, 한 전 청장이 출국 2년 만에 돌연 귀국했다. 다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한상률 게이트’가 드디어 터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검찰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당시 출입기자들과 가진 비공식 브리핑에서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상률이 무슨 비리 덩어리냐? 그래서 탈탈 털어야 하느냐”라고 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검찰 지휘부의 시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문제는 검찰 내부의 목소리는 달랐다는 점이다. 한 전 청장 귀국과 함께 수사가 본격화하던 당시, 한 검찰 간부는 기자에게 “한상률 사건은 이미 정치적 사건이 되었다. 물론 검찰 수사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팩트만 꾸준히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설득력 있는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향후 검찰에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치명타가 될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검찰이 한 방에 갈 수 있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다른 검찰 인사도 “한 전 청장을 (검찰이) 결국 봐주지 않겠느냐는 시선이 있는가 본데, 수사팀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안다. 고발된 3대 혐의뿐 아니라, 다른 의혹들도 모두 살펴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라고 전했다. 일선 수사 검사들의 분위기는 달랐다는 뜻이다.

한지검장-김준규 검찰총장 갈등도 불거져

   
▲ 민주당으로부터 뇌물 수수 및 직권 남용 혐의로 고발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지난 2월28일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은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통상 피의자 조사는 다른 주변 조사를 어느 정도 끝마친 뒤, 마지막 단계에서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검찰은 한상률 전 청장을 귀국 3일 만에 먼저 소환 조사했다. 검찰의 수사 방향이나 전략이 한 전 청장에게 먼저 노출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한 전 청장 자택과 <학동마을>의 원래 소장처로 지목된 서미갤러리에 대한 압수수색은 그 이후에 이루어졌다. 뇌물 사건 수사의 기본 중 기본인 계좌 추적은 심지어 한 전 청장이 귀국한 지 2주가 지난 다음에야 이루어졌다. 수사 절차가 거꾸로 진행된 측면이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검찰은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이나 계좌 추적 영장을 발부받으려면 혐의 소명이 필요한데, 필요한 단계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라는 입장이지만 설득력은 작아 보인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일선 검사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로 ‘윗선’의 수사 의지를 꼽는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수사는 수사팀에서 하는 것이다. 다만, 수사팀을 적극 지원해주고 ‘외풍’을 막아주는 지휘부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 수사와 관련해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의 ‘역할’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법연수원 23기 출신으로 현재 유력한 차기 총장 후보로 부각되고 있는 한 지검장은 지난 2월1일 서울중앙지검장에 오르기 전까지 수사를 ‘책임지는’ 일선 지검장 경력이 전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중도 낙마 등을 거치며 연수원 10~12기 선배들이 한꺼번에 옷을 벗으면서 법무부 검찰국장에서 곧바로 서울고검장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고검장이 산하 기관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간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한지검장의 경우는 대단히 파격적인 것으로 비쳤다. 당시 검찰 안팎에서 “한지검장에게 총장 후보로서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라는 해석이 나왔던 이유이다.

때문에 ‘한상률 사건’의 처리는 한상대 지검장 앞에 놓인 첫 번째이면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험대일 가능성이 크다. 한 전 청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 가운데 정권 실세가 연루된 것이 많은 데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정치적 후폭풍이 거세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 지검장으로서는 이 사건에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검찰총장의 꿈을 갖고 있는 한 지검장이 현 정권과 밀접한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 한상률 사건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겠느냐”라고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친 대검의 한 관계자 말은 의미심장하다. 

문제는 이번 수사 결과를 놓고 검찰 내부에서조차 ‘개운치 않은’ 뒷맛이 있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유명 주류업체인 ㄷ사가 수입 면허 취소 8개월 만에 이례적인 재발급을 받은 것과 관련해 한 전 청장이 거액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검찰이 이번에 살펴보지 않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사팀은 ‘수사 의견’을 제시했으나 한지검장이 제동을 걸었고, 이 부분에서 다시 한지검장과 김준규 검찰총장이 의견 대립을 빚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에서는 벌써부터 국정 조사나 특검 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상률 게이트’는 어쩌면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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