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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눈높이에 맞춰 변한 방송, 변한 아나운서

최근 각종 프로그램에서 ‘권위’는 벗고 ‘끼’ 더욱 발산해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ㅣ | 승인 2011.04.25(Mon) 12: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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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전현무 아나운서
ⓒKBS 제공

10년 전만 해도 아나운서는 조신한 존재였다. 허리를 똑바로 펴고 앉거나 서서 손에 마이크 하나를 들고 오로지 입으로만 드러나는 존재, 심지어 뉴스 도중 누군가 난입해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다!”라고 소리를 쳐도 짐짓 당황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보도를 하는 그런 존재. 지금도 아나운서에 대한 이런 덕목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과거에도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는 있었다. <명랑운동회>의 변웅전 아나운서가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때 예능 프로그램의 한복판에서도 늘 단정하게 서서 말 그대로 진행만 했던 변웅전 아나운서와, 이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한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나운서는 확실히 다르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아나운서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한때 아나운서이지만 특유의 끼를 보여주었던 김성주 아나운서나 강수정 아나운서 같은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가 속속 등장했지만 이제 이 말조차 식상해져버렸다. 지금은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을 쇼 프로그램화하는 시대이고, 그 쇼 무대 위에서 개그맨 뺨치는 만담으로 빵빵 터뜨린 지원자가 주목받는 시대이다. <신입사원>에서 아나운서계의 방시혁으로 불리는 방현주 아나운서는 특유의 독설을 날려 주목받고, 아나운서계의 유재석으로 불리는 전현무 아나운서는 특유의 ‘깝’으로 개그맨마저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뉴스 보도, 사회, 실황 중계의 방송을 맡아 하는 사람. 또는 그런 직책’을 지칭하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의 정의는 이제 변해야 될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해피투게더>에 출연해 이른바 7단 고음을 선보이며 ‘개그맨을 웃기는 아나운서’로 등극한 전현무 아나운서(사진). 신입 시절부터 특유의 끼를 주체할 수 없어 벌어진 해프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아 듣는 이를 빵 터뜨린 그는 골반을 흔들어대며 샤이니 댄스를 추고, 어딘지 성역처럼 보이는 KBS 아나운서실의 뒷얘기를 마구 풀어놓는다. 이런 모습으로 전현무는 대중의 호감을 얻기 시작하면서 KBS의 보배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약 다섯 개 정도의 고정 프로그램을 하고 있고 게스트로도 섭외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전현무를 모시기 위해서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진행도 깔끔하게 하면서 특유의 예능감과 끼가 넘치니 예능의 블루칩이 될 만하다.

이런 ‘전현무 현상’이 다른 동료 아나운서에게까지 전이되고 있다. <해피투게더>에 전현무와 함께 출연한 박은영 아나운서는 평소 모습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웃음을 주려고 노력하며 마치 ‘여자 전현무’ 같은 인상을 주었다. 자신이 박명수와 닮았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마치 전현무가 툭하면 동료 아나운서를 폭로(?)하는 것처럼 오정연 아나운서가 짝짝이 하이힐을 신고 제주도까지 왔던 사연을 폭로하기도 했다. 심지어 코를 후비다가 들킨 사연을 들려주기도 하고, 콧구멍이 크다며 50원짜리 동전을 넣어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전현무가 일찍이 깔아놓은 멍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아나운서라도 예능에 나와서는 웃음을 주기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낮추는 자세로 호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전현무를 통해 이미 알게 된 것이다.

뉴스에까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 스며들어

   
ⓒMBC 제공

이른바 ‘전현무 효과’를 통해 보여지듯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재정의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방송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방향적 소통 시대에 방송사가 가진 입은 권위 그 자체였다. 그러니 방송사의 얼굴은 단연 아나운서였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의심할 여지 없는 정보였고,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매체 시대로 접어들고, 쌍방향 미디어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나르는 시대에 방송의 권위는 무너져내렸다. 대중 스스로가 미디어라 믿어지는 시대에 방송의 정보는 때로는 대중과 시각차를 보이고 부딪치기도 하며, 때로는 오보에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심지어 이제는 대중이 포착한 뉴스를 받아서 방송하는 시대가 아닌가. 방송의 가장 큰 힘인 권위가 해체되면서 이제 방송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연성화의 길이다. 여기에는 대중의 눈높이로 좀 더 낮춰진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 전반에 깔리게 되고, 이제는 주말 MBC <뉴스데스크>를 이끄는 최일구 앵커로 대변되는 것처럼 뉴스에도 스며들었다.

예전의 틀을 고수하려는 아나운서도 있지만, 이미 상황은 바뀌었다. 정형돈과 게임을 하며 종이를 놓고 얼굴을 맞대는 민망한 장면을 문지애 아나운서가 연출하고, 그 장면을 <신입사원>의 오디션 후보가 패러디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물론 그 후에 문지애 아나운서가 뉴스나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브리핑을 하는 것에 대해 대중은 그다지 이물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대중이 뉴스나 시사 정보 프로그램과 연예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그다지 다르게 여기지 않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바로 <생생정보통>이다. 이 정보의 종합 선물 세트 같은 프로그램에는 저녁 시간대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전국 먹을거리 이야기에서부터 연예 정보, 때로는 미니 다큐가 들어가고 심지어 생뚱맞아 보일 수 있는 뉴스가 배치되지만 그것에 어떤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의 얼굴로서 전현무 아나운서가 서 있다는 것은 현재 달라져 있는 아나운서라는 존재를 가늠하게 한다.

이렇게 달라진 시대에 아나운서가 프리 선언을 하는 상황은 당연할 것이다. 과거 아나운서들이 방송의 얼굴이었을 때는 방송사가 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 아나운서는 방송 전부를 대표하는 얼굴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인이 되어 있고, 또 그래야 살아남는다. 


 타 방송사에까지 ‘전염’되는 전현무 효과

이른바 ‘전현무 효과’는 다른 방송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MBC에서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신입사원>의 지망생들 중에는 전현무 아나운서를 롤 모델로 삼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자 MBC 최재혁 국장이 “전현무 같은 스타일은 뽑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의식이 된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이 <신입사원>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전현무처럼 친근한 이미지의 아나운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즉, 아나운서 지망생이 만담을 해서 웃음을 주는데, 그것을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자질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나운서는 여전히 ‘방송사의 자존심’이라고 불리지만 그 자존심은 대중의 공감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달라진 시대에 달라진 자질을 요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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