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품은 거대 시한폭탄 ‘전관예우’
  • 한순구 ()
  • 승인 2011.05.07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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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구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박사한국경제학회 사무차장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몇 년 전에 자료를 모아서 고교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을 분석해본 적이 있다. 해외의 학술지에 발표된 그 논문의 결론은,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학력이 평준화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이를 확대 해석하면 평준화 이후에 고등학교를 다닌 내 세대의 학력이 경기고와 같은 명문고가 존재했던 내 선배들 세대나 여러 특목고가 존재하는 요즘 세대들에 비해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사람들은 이런 연구를 한 내가 비평준화를 옹호하는 학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평준화와 비평준화 중 어느 것이 바람직한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 이유는 비평준화의 경우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평준화가 시행되고 아직 특목고가 세워지지 않은 시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40대인 내 또래의 교수들을 보면 대학 전체에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후배가 많아야 한두 명이고 내 경우에는 신설 고등학교를 나온 탓에 아직 같은 고등학교 동문 교수가 교내에 한 명도 없다. 하지만 비평준화 시기에 이른바 명문 고등학교를 나온 세대의 교수님들 사이에서는 고등학교별로 몇십 명의 동문들이 같은 대학에 재직하면서 밀어주고 끌어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캠퍼스 밖의 우리 사회에서도 해당 세대 분들의 고등학교 동문회는 분명 사회 지도층에 많은 동문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동문들의 친교는 여러 가지 비리와 부정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잘 아는 친구가 부탁을 하면 아무래도 거절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동업자들은 오락이나 기분 전환을 위해 만나는 경우에도, 그들의 대화는 공중(公衆)에 반대되는 음모나 가격 인상을 위한 모종의 책략으로 끝나지 않을 때가 거의 없다.” 이는 지금부터 2백25년 전에 출판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는 말이다.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잘 알고 친하게 지내면 이는 결코 단순한 친목 도모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 협력해서 나쁜 일을 꾸미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 퇴직자들의 역할에 대해 온 사회가 충격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미 아담 스미스가 경고했듯이 이는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다. 관련 업종도 아니고 감독 기관과 피감독 기관에 친한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었으니 공공의 이익에 반할 음모를 꾸밀 것임은 이미 예견된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결코 금감원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심심치 않게 전관예우라는 단어를 듣고 있는데, 이런 단어가 언급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창피한 일이다. 이웃 일본에도 고위 공무원들이 퇴직하면 관련 기업의 고위직으로 가는 ‘아마쿠다리(天下り)’라는 낙하산 인사 제도가 있다. 이번 일본 원전 사태의 배후에도 도쿄전력의 노후된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문제를 로비를 통해 숨긴 아마쿠다리들의 활동이 존재한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퇴직 이후 도쿄전력에 취직한 공무원들이, 현직에 있는 후배 공무원들이 도쿄전력의 원전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이다.

전관예우, 지나치게 강조되는 동문 결속 등은 저축은행 문제 정도가 아닌 훨씬 큰 문제를 일으킬 우리나라의 시한폭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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