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와 언론, 또 ‘밀월’에 들까
  • 최정민│파리 통신원 ()
  • 승인 2011.05.10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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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 국면 접어들자 방송가 ‘들썩’…벌써부터 가을 개편 이야기 ‘솔솔’

 

▲ 지난 2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한 TV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반 시민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AP 연합 ⓒAP연합

프랑스는 9월에 한 해를 시작한다. 모든 관공서나 학교, 기업의 일정은 여름휴가가 끝난 9월에 시작한다. 따라서 방송가 또한 9월 가을 개편이 새로운 시작점이 된다. 이제 막 여름으로 접어들려는 지금, 프랑스 방송가와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가을 개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프랑스 우파 주간지 ‘르 푸앙’은 ‘공영방송의 블랙 리스트’라고까지 표현했다. 방송사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공영방송의 세대교체’ 그리고 ‘문화 프로그램 육성’이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왜냐하면 프랑스가 1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때문에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길들이기’ 비판도 많아

지난 4월28일 르 푸앙은 공영방송 프랑스 2의 간판 진행자인 프랑수아 올리비에 지스베르와 기욤 뒤랑의 프로그램이 오는 9월 사라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시청률이 낮다는 것이지만, 이 두 사람이 그동안 사르코지와 현 정부에 대해 줄기차게 날을 세워왔던 진행자라는 점에서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프랑스 무가 일간지 메트로는 ‘채널의 정책에 따른 희생자’라고 조심스럽게 분석했다. 뿐만 아니다. 다른 공영방송인 프랑스 3의 장수 프로그램인 <라비 프리베 라비 퓌블릭>의 폐지설도 거론되었다. 프랑스 3의 편집 책임자는 방송 전문 인터넷 매체인 <프르미에>를 통해 “진행자인 미레일 뒤마와 새로운 프로그램을 논의 중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궁색한 변명’이라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 미디어에 관해 정통한 한 매체에 따르면 미레일 뒤마의 후임으로 이미 선정된 인물은 시릴 비귀에이며, 그는 케이블 채널인 ‘쌩뀌엠’의 설립자이자 사르코지와 프랑수아 피용 총리의 측근이다. 그가 세운 채널의 동업자 또한 프랑스 국민 가수이자 사르코지의 지인인 쟈니 할리데이의 아들 다비드 할리데이이다.

프랑스인들은 유난히 수다를 좋아한다. 이러한 국민성 때문인지 방송 황금 시간대에 포진한 프로그램은 모두 시사 토론 프로그램이다. 모든 방송사가 간판 토론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진행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작자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사르코지 정부 출범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진행했던 공영방송 광고 폐지와 공영방송사 사장 선임을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는 것에 대해 사르코지가 공영방송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프랑스 공영방송에서는 저녁 8시 이후에는 광고가 없다.

사르코지는 지난 대선 과정과 당선 이후 화려한 언론 행보로 주목을 받아왔다. 영부인 브루니와의 로맨스에서 시작해 ‘NYPD’라는 로고가 새겨진 셔츠를 입고 땀을 흘리며 조깅을 하는 모습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언론을 장식했다. 언론과 미디어를 가장 잘 이용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또 그러한 이유에서 사르코지와 미디어의 알력 관계는 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 국민 앵커였던 파트릭 푸아브로 다보르의 은퇴이다. 이니셜 ‘PPDA’로 더 유명한 그는 30년 넘게 저녁 뉴스를 진행한 간판 앵커였다. 그는 사르코지 취임 직후 가진 방송사 대표 아나운서들과의 생방송 대담에서 “국제 무대에서 당신을 작은 꼬마로 보지 않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사르코지는 손사레를 치며 무시하듯 넘겼지만 방송 후 대노했다는 이야기가 엘리제 궁 주변에 파다했다. 두 달 후 PPDA는 프랑스 최대 민영 TF1의 저녁 뉴스 진행자 자리에서 떠났다. 그는 사르코지가 압력을 넣었다는 소문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하며 공영방송과 예술 채널 ARTE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언론 플레이가 지지율 추락 원인 되기도

신랄한 정치 풍자를 해 코너가  폐지된 사례도 있다. 바로 프랑스 라디오의 간판 만평가였던 스테판 기욤의 경우이다.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텔레비전보다 라디오가 더 많은 신뢰를 받고 있다. 그것은 라디오가 운전이나 다른 업무 중에도 청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출근 시간대인 오전 7~9시의 정치 토론과 풍자 코너의 경쟁은 텔레비전 방송보다 훨씬 치열하다. 스테판 기욤은 최고의 청취율을 자랑하던 간판 만평가였다. 그러나 프랑스 라디오 방송 사장이 사르코지에 의해 교체된 후 프로그램에서 그의 코너가 사라졌다. 이유는 ‘저속한 표현과 흠집 내기를 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신임 사장인 쟝 뤽케스는 르몽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치적 압력이 없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그동안 스테판 기욤이 전직 법무부장관의 외유 스캔들에서 사르코지 대선 자금과 관련된 부분 등을 가장 집요하게 공격했던 만평가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눈엣가시였을 것임은 분명했다. 라디오에서 퇴출된 그는 현재 텔레비전 주간 만평 코너는 계속 유지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퇴출 이후 그의 원맨쇼 공연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시청률로 자리가 날아가는 방송계에서 사르코지와의 친분으로 자리를 이어간 사례도 있다. 프랑스 5의 정치 대담 프로 사회자였던 세르주 모아티가 그런 경우이다. 2009년 그가 진행하던 <리포스트>는 방송 개편에 의해 폐지되었다. 그리고 후속으로 <시네마>라는 영화 토론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회자는 다시 세르주 모아티였다. 출연 패널도 계속 정치인들과 영화배우가 섞여 나오며 영화가 곁들여진 정치 이야기로 이어간다. 간판만 바꾸어 단 셈이다. 세르주 모아티는 사르코지와 절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프랑스는 대선을 1년 남겨두고 있다. 프랑스 민영 카날플뤼스의 정치 평론가인 쟝 미셀 아파티는 “역대 어떤 대통령도 재임 도전 직전에 이렇게 낮은 지지율을 기록한 적은 없다”라고 지적하며, 사르코지와 우파 집권당이 심각한 상황에 있다고 경고했다. 이제 대선을 앞두고 20%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사르코지로서는 어쩌면 지난 대선에서 보여준 화려한 언론 플레이가 가장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르코지에게 언론은 ‘양날의 칼’이다. 다시 말해 누구보다 토론과 화술에 강하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그의 지지율을 추락시킨 대표적인 원인이 바로 그러한 그의 언론 플레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현재로서 사르코지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호재는 영부인 브루니의 임신설 정도이리라는 것이 프랑스 정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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