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하던 그들, 어쩌다 ‘전투’하게 됐나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1.05.1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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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삼성증권, 자산 관리 시장에서 선두 다툼 치열…랩 상품 돌풍과 함께 윈윈 관계 깨져

 

▲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왼쪽 사진),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오른쪽 사진) ⓒ뉴시스(왼쪽 사진) / ⓒ 뉴스뱅크 (오른쪽 사진)

펀드로 주도권을 쥐며 치고 나갔던 미래에셋과 지난해 랩 상품으로 홈런을 날린 삼성증권이 패권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요즘 증권업계 판도는 자산 관리 시장에서 어떤 성적을 보이느냐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 과거 위탁 매매 수수료 규모가 증권사 판도를 결정했던 시기와 1백80˚도 달라진 것이다. 물론 아직도 위탁 매매 수수료가 증권사 수입의 가장 큰 부분이지만 비중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대신 펀드 판매 수수료나 랩 판매 수수료 같은 전형적인 자산 관리 부문의 수익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1998년에 출범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짧은 시간에 국내 증권업계 주류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산 관리 시장 덕택이다. 직접 투자를 하는 대신 돈을 맡기면 알아서 굴려주는 펀드 시대를 미래에셋이 대중화시키면서 증권 투자의 패러다임이 직접 투자 시대에서 간접 투자 시대로 바뀐 것이다. 미래에셋은 디스커버리 펀드 하나로 기존의 강자이던 대우증권, 현대증권, 우리투자증권 등을 간단하게 물리치고 주식시장의 주도권을 쥐었다.  

미래에셋 디스커버리, 미래에셋 차이나 솔로몬 펀드 시리즈로 불패의 신화를 쓰던 미래에셋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07년 10월 인사이트 펀드가 출시되면서부터다. 중국에 집중했던 인사이트 펀드는 중국 시장이 큰 조정을 받은 데다 이어지는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수익률 불패, 자산 관리의 강자’라는 미래에셋의 명성에 오점을 남겼고 지금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위축되는 미래에셋을 대신해 등장한 것이 삼성증권이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랩 시장에서 홈런을 날렸다. 고객을 모으고 관리하는 것은 삼성증권, 실제 운용은 브레인투자자문이나 케이원투자자문이 맡아서 하는 협업 플레이를 하면서 펀드 판매 위주였던 미래에셋 모델보다 한층 더 진화된 자산 관리 모델을 선보인 것이다. 삼성증권은 1992년 국제증권을 삼성그룹이 인수한 회사로 증권업계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하던 회사였다.

두 회사 모두 업계 패러다임 바꾸면서 ‘두각’

미래에셋이나 삼성증권이나 모두 증권업계 후발 주자로 증권업 패러다임을 바꿔놓으면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때 두 회사는 공생 관계였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상품을 삼성증권이 적극적으로 팔아주면서 미래에셋도 크고 삼성증권도 크는 윈윈 관계였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증권이 브레인투자자문과 케이원투자자문 등의 랩 상품으로 돌풍을 일으키면서 두 회사의 관계는 긴장 관계로 변했다. 그러다 지난 2월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의 돌출 발언이 나오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회장은 “자문형 랩 수수료가 지나치게 비싸다. 자문형 랩의 서비스는 형편없는데 수수료만 비싸게 받는다”라는 말을 쏟아냈다. 박회장의 발언 이후 미래에셋은 자문형 랩 수수료를 3% 안팎에서 1.9% 정도로 내렸다. 하지만 다른 증권사의 반응은 싸늘했다. 미래에셋의 주력인 펀드 부문의 수수료는 건드리지 않고 애꿎게 자문형 랩 수수료를 물고 늘어지느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그것이다.

지난 5월 초 삼성증권 장효선 애널리스트가 발표한 증권업 리포트에 따르면 삼성증권의 지난해 랩 판매 수수료는 9백60억원이고 미래에셋은 3백40억원(추정치)이다. 이는 2009년에 비해 여섯 배나 불어난 금액이다. 반면 미래에셋은 2009년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어났을 뿐이다.

재미있는 점은 펀드 판매 수수료이다. 이 부분에서 미래에셋은 2009년 1천4백억원에서 2010년 1천3백40억원(추정치)으로 줄어들었다. 미래에셋의 펀드 판매 수수료는 2007년 2천5백40억원을 정점으로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미래에셋의 주 수입원이 펀드 판매라는 점에서 자산 관리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2007년을 기점으로 계속 축소되고 있다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른 증권사들이 미래에셋의 자문형 랩 수수료 인하를 냉소적으로 보는 것이다. 정말 투자자를 생각해서 수수료를 내릴 생각이라면 펀드 수수료를 내려야지, 시장 점유율도 미미한 자문형 랩은 왜 걸고 넘어지느냐는 것이다. 

반면 펀드 붐의 조연에 이어, 랩 상품 시장의 주연으로 자산 관리 시장의 주도권을 탈환하는 데 성공한 삼성증권은 자산 관리 시장의 대장주로 떠오르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의 최고 투자책임자(CIO)는 삼성증권의 초청으로 VIP 고객의 1 대 1 면담에 나갔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는 “삼성증권에 VIP 고객이 많다는 이야기를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면담 자리에 나갔더니 다른 그룹의 회장이 나와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늘 좋은 프라이빗 뱅커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것이다. 자산 관리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삼성증권에서는 SNI라는 특별한 지점이 있다. SNI는 30억원 이상을 맡기고 있는 초고액 자산가를 위한 특별한 창구로 신라호텔과 인터컨티넨탈호텔 등 네 곳에 지점이 있다. 삼성증권은 네 개의 SNI 지점을 통해 5백여 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고, 이들이 맡긴 자산 총액이 5조원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웬만한 중소 규모 증권사의 자산 규모와 맞먹는 엄청난 금액이다. 게다가 이런 거액 자산가들의 행태는 시장에 엄청난 추종자(워너비)를 양산해낸다.

현대증권의 공현무 전무는 최근 증권업계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2007년도에 펀드 붐으로 간접 투자 시장이 활짝 피었다. 그것을 선점한 것은 미래에셋이고 미래에셋의 성공도 사실은 자산 관리가 핵심이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고 2010년 회복 과정에서 펀드보다 압축된 형태의 랩이 더 낫다는 결과가 나오니까 삼성의 랩 상품에 돈이 몰렸다.

지금은 간접 투자가 더 좋다는 생각이 시장에 확산되고 있다. 미래에셋이나 삼성증권은 후발 주자여서 자산 관리 업무 쪽으로 전환이 빨랐지만, 대형 증권사는 기존에 오프라인에 깔아놓은 브로커리지 위주의 영업 조직을 전환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

삼성증권이 자산 관리 쪽으로 방향 전환을 선언한 것은 2000년부터이고, 구체적인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삼성생명 출신의 박준현 사장이 부임하면서부터다. 

자산 관리 시장의 선두 주자인 미래에셋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PB 조직도 건재하다. 하지만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 수익률이 신통치 않은 까닭에 백약이 무효인 상태이다. 펀드 환매로 빠져나간 돈은 모두 미래에셋에서 나간 돈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이다.

최근 1년간 미래에셋의 펀드 운용 수익률 순위가 45개 자산운용사 중 42위를 기록하고 있다. 디스커버리 펀드의 전성기를 이끌던 매니저들이 대거 미래에셋을 빠져나갔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현주 회장이 직접 전투의 각론까지 입에 담을 정도로 미래에셋의 고민이 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느새 수성의 입장에 놓인 박현주 회장이 삼성증권의 전방위 압박을 뚫고 부활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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