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예능 PD들을 사수하라”
  • 채은하│프레시안 기자 ()
  • 승인 2011.05.15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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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 종편·케이블TV들의 스카웃 경쟁에 비상경계령 내려…최대 20명 이동할 듯

▲ 이명한 PD.

“같이 일하던 동료가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받고 나간다. 그러면 누구나 ‘나는?’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조직 문화는 경직되고 제작 여건은 열악해진다면? 당연히 위기의식이 커질 수밖에 없다.”

요즘 지상파 방송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한 PD는 이른바 ‘스타급 PD’들의 연이은 종편(종합편성 채널)행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최근 KBS에서는 10여 명의 PD가, MBC에서는 4~5명의 PD가 CJ E&M나 중앙일보가 대주주로 있는 jTBC로 옮기거나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큰 것은 이들이 각 방송사에서 대표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해왔기 때문이다. KBS에서는 <1박2일>의 이명한 PD, <개그콘서트>를 오래 연출해 온 김석현 PD가 CJ E&M으로 옮겼고, <해피선데이> 출범 당시 기획을 맡았던 김시규 PD는 jTBC로 이적했다. <야행성> 등을 제작했던 조승욱 PD도 사표를 제출했으며 그 역시 jTBC행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도 현장 경험이 많은 7~10년차 PD 등도 상당수 영입 대상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최대 20명까지 이동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한다.

집중 타깃이 된 KBS는 초토화 분위기

▲ 여운혁 PD.
KBS 관계자는 “거의 ‘대부분’이라고 표현할 만큼의 예능 PD들이 종편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초에 다른 회사에 비해 예능 PD의 수 자체가 많기도 하지만 근무 여건이나 제작 자율성 등이 여타 방송사에 비해 크게 떨어져 더욱 이동하려는 인력이 많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월25일 KBS 예능PD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경영진에 △장기적 비전에 따른 인력 채용 △관제 특집 전면 폐기 △제작비 인상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MBC의 경우 KBS보다 수는 적으나 ‘이름값’이 만만찮다. <강호동의 천생연분> <황금어장-무릎 팍 도사> 등을 기획·연출한 여운혁 PD가 jTBC로 옮겼으며, <우리 결혼했어요> 시즌 1을 만들고 현재 <위대한 탄생>을 연출하고 있는 임정아 PD, <스친소> <일밤-단비> <추억이 빛나는 밤에>를 연출한 성치경 PD도 사의를 나타냈다. 이들 역시 jTBC로 이적할 것으로 알려졌다. 성치경 PD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MBC에서 새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한곳에 있다 보니 쳇바퀴가 도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KBS와 MBC를 불문하고 예능 PD들이 대거 이적하는 막후에는 날이 갈수록 경직되는 사내 분위기가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MBC 관계자는 “예전에는 새로 프로그램을 내면 경영진에서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요즘은 프로그램 자체가 단기적인 시청률에 좌우되거나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윗선과 잘 소통되지 않는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KBS의 경우, 기자·PD 중심인 새 노조에서는 “잇단 관제성 특집과 불합리한 인사가 미래를 불투명하게 한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더 이상 확산되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스타급 PD들의 계약료는 10억~15억원, 일선 PD들의 계약료는 3억~4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 종편사로부터 거액의 영입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MBC <무한도전> 김태호 PD의 경우 하하에게 보낸 축하 화환에 ‘30억원이 얼마나 큰지 몰랐던 TEO’라는 글귀를 적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PD들의 이적을 두고 여러 가지 분석과 비판이 나오지만 결국 이들의 선택은 ‘개인적’인 것이고 그 중심에는 높은 연봉과 새로운 제작 여건이라는 조건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스타 PD 영입 경쟁이 예능 분야에서 먼저 나타나는 것은 드라마의 경우 상당수 외주화가 진행된 반면 예능 제작 역량은 대부분 지상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tvN, Mnet을 가지고 있는 CJ E&M이 지상파 방송과 견주는 케이블 방송으로 인식된 것도 <슈퍼스타K> <롤러코스터> 등의 예능·오락 프로그램의 성공에 힘입은 바 크다. jTBC 역시 드라마는 KBS <공부의 신>, SBS <신데렐라 언니> 등을 제작한 자회사 드라마하우스나 여타 외주 제작사에서 공급받을 수 있으나 예능은 자체적으로 제작해야 한다는 현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jTBC가 종편 가운데 유일하게 스타 PD 영입에 성공하고 있는 것은 납입 자본금이 4백40억원으로 사업자 가운데 가장 많은 수준인 데다 역시 MBC 예능 PD 출신인 주철환 중앙일보 방송제작본부장이 영입 작전을 주도하는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이다.

지상파 방송가에서는 “앞으로 종편의 영입 경쟁이 좀 더 확대되면 예능 PD들의 유출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라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과연 조선일보의 CSTV나 동아일보의 채널A, 매일경제의 MBN 등이 과연 이같은 영입 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비교적 자본금의 여유가 있는 jTBC이지만 지금까지의 영입만 해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니 jTBC보다 자본력이 약한 여타 종편들이 이미 몸값이 높아진 PD들을 영입하는 경쟁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렇지 않아도 예능 프로그램이 점차 대형화되면서 비용이 높아지고 있는 마당에 종편과 케이블에 흩어진 예능 PD들이 스타 연예인들을 상대로 출연료 경쟁을 벌일 경우 각 방송사가 짊어져야 하는 재정 부담은 더욱 커진다. 이 때문에 방송계 관계자는 “앞으로 예능은 ‘고위험·고수익’ 사업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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