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한 발 정치로 다가서는 문재인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5.1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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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참여 여부 질문에 과거와 다른 대답 내놓아…민주·참여당 통합 분위기 촉매제 될 수도

 

▲ 지난 5월3일 문재인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이사장과 민주당 백원우 의원(오른쪽)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복지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싱크탱크 네트워크’ 창립대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던 ‘왕의 남자’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최근 행보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항상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던 그가 최근 들어 더없이 신중해졌다. 뭔가 결심한 듯 눈매에는 비장감이 서린다. 향후 정치권에 한바탕 휘몰아칠 폭풍의 진원지로 그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아지고 있다. ‘친노 그룹’의 구심점인 그가 야권의 잠재적 대권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는 2008년 2월25일 청와대를 나오자마자, 경남 양산의 시골 마을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는 “청와대 퇴임하면서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두려고 했다. 청와대 생활이 너무 힘들었고 애를 쓴 것에 비해 평가가 가혹했다. 정권 재창출도 실패하고 정신적으로 허탈했기 때문에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사에서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될까.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 조사를 받고, 급기야 서거하면서 그는 시골 생활을 접고 ‘세상 속으로’ 돌아와야 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그는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의연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이면서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각인시켰다. 이후 그의 주변 지인들과 정치권 인사들로부터 그에게 정치를 권유하는 목소리와 손길이 이어졌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는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현실 정치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라고 가멸찰 정도로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이사장인 그는 지난해 12월22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도 “실제로 정치 참여를 권유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에 대한 입장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정치 참여’ 의사가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지난 4월27일 치러진 김해 을 보궐선거에 출마하라는 권유도 강하게 받았으나, 그 역시 단칼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직접 중재자로 나섰다. 하지만 야권 단일 후보였던 이봉수 국민참여당 후보가 낙선하면서 문이사장도 큰 충격과 깊은 고뇌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충격’의 4·27 재·보선 직후부터 문이사장이 부쩍 ‘수상’해졌다. 현실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그가 광폭의 정치 행보와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도 현 정권에 대해 비판하면서, 간간이 정치 행사에 얼굴을 내밀기는 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눈에 ‘확’ 띌 정도는 아니었다. 5월1일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서거 2주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명박 정부가 너무 심하다. 위기감이 큰 만큼 이런저런 가능성을 찾고, 나도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현실 정치 참여 여부에 대해 단호하게 ‘No!’라고 거절했던 모습에서, 이제는 ‘NCND’(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음) 쪽으로 상당히 이동한 셈이다. 각종 토론회와 행사장 등에 얼굴을 내미는 횟수도 잦아졌다. 4월29일에는 2008년 청와대를 나온 뒤 처음으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김해시지부에서 외부 단체 강연을 했다.

문재인 부각되면 유시민은 직격탄 맞을 듯

▲ 문재인 이사장이 5월12일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모 전시회에서 그림 속 노 전 대통령에게 막걸리를 따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 발언의 농도도 짙어졌다. 5월11일 노 전 대통령 2주기 학술 심포지엄에서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을 그대로 둘 수 없다. 진보 개혁 진영은 국민이 믿을 수 있는 비전과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라며 현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과 야권을 향한 요구 사항을 동시에 쏟아냈다. 5월12일 열린 노 전 대통령 추모 전시회 개관식에서는 “참여정부 시절을 성찰하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5월 말이나 6월 초에 출판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자서전 성격인 책 <문재인의 운명>을 낸다는 것이다.

역대 대선 주자들은 출사표를 던지기 전에 관행처럼 자신의 생애와 비전을 담은 저서를 출간해왔다. 정치권에서 “문이사장이 드디어 현실 정치로 뛰어드는 것이냐”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이사장은 5월13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서전과 관련해 “개인적인 이야기도 있고, 노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부터 참여정부 시절 함께했던 인연이 중심이다. 하지만 현재도 원고를 쓰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저서에 대해 더 이상 말하기는 힘들다. 출간 시기도 더 늦추어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현실 정치 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이 정도만 하자”라며 더 이상 언급하기를 꺼려 했다. 하지만 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뉘앙스이다. “정치는 안 한다”에서 “이 정도만 하자”로 옮겨간 진폭의 공간이 현재 문이사장의 고민을 대변해준다.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정치 참여 쪽으로 기울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문이사장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가 차기 야권의 대선 구도에서 큰 변수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매력적인 여러 강점을 갖추고 있다. 경남 거제 출신으로 경남고를 졸업했다. 운동권 투사였던 그는 특전사 공수부대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민주당의 한 친노 인사는 “만약 대선에 출마할 경우, ‘병역 면제’ 정당인 한나라당에 비해 공수부대 출신 대통령이라는 상대적 우월감이 훨씬 더 돋보일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문이사장은 또한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한 엘리트임에도 ‘돈 못 버는’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는 청렴한 이미지도 큰 자산이다. 특히 영남권에 비교적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야권의 취약 지역에서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히고 있다. 만약 그가 출마하지 않는다 해도 내년 총선과 대선 정국에서 영남권 교두보를 확보하는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반면 문이사장의 부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쪽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될 전망이다. 현재 유대표는 4·27 재·보선 패배의 충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5월까지는 당무 이외에 일절 대외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더 길어질 수도 있다”라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그동안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임을 자처해 온 유대표의 입장에서는 문이사장이 전면에 나선다면 더 이상 친노의 유일한 적통임을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국민참여당의 향후 행보도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의외로 민주당과 참여당의 통합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문이사장이 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이래저래 ‘문재인 카드’는 그의 정계 투신 여부와 상관없이 2012년 정국과 관련해 크게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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