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나이에‘꿈의 축구’를 완성시키다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06.07 21: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 최강 FC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끈 과르디올라 감독은 누구인가

▲ 호셉 과르디올라 FC 바르셀로나 감독 ⓒ연합뉴스

한국 시간으로 지난 5월29일 새벽, ‘축구의 성지’ 웸블리에서 열린 2010·2011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벤치에서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상대팀 벤치로 건너가 FC 바르셀로나의 감독 호셉 과르디올라와 악수를 나누었다. 맨유의 1-3 완패. 객관적 전력에서 차이는 있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더 압도적인 차이였다. 볼 점유율 63 대 37, 슈팅 수는 16 대 3, 패스성공률은 86% 대 72%. 결과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바르셀로나의 승리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퍼거슨이 자신보다 서른 살이나 어린 과르디올라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패배를 시인하는 모습은 마치 왕위 계승식 같았다. 과르디올라는 1군 감독 데뷔 3년 만에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맨유에는 그보다 한 살 많은 골키퍼 판 데르 사르와 두 살 어린 라이언 긱스가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이 만 40세의 젊은 지도자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르셀로나를 이끈 것은 지난 2008년 여름부터다. 2006년 현역 생활을 마감한 그는 2007년 2군 격인 바르셀로나 B팀을 맡아 4부 리그에서 우승을 일구어냈다. 그 직후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 1군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아무리 팀의 간판스타 출신이라지만 지도자가 된 지 1년밖에 안 된 초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자 언론과 팬들은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호안 라포르타 회장은 “과르디올라야말로 정신과 전통을 계승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다”라며 성공을 자신했다. 라포르타 회장의 호언장담대로 과르디올라는 데뷔 첫 시즌에 프리메라리가, 코파 델 레이(FA컵), 챔피언스리그를 거머쥐는 트레블(3관왕)을 달성했다. 유례 없는 성공 앞에 그에 대한 불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전설) 출신이다. 바르셀로나 인근의 상트페도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미셸 플라티니를 동경하며 창조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유망주로 커갔다. 그 재능을 주목한 바르셀로나는 12세 때 과르디올라를 유스팀에 입단시켰다. 1군 데뷔 기회를 얻은 것은 19세이던 1990년이었다. 당시 바르셀로나에는 요한 크루이프 감독이 있었다. 현역 시절 리누스 미셸 감독과 함께 네덜란드 토털 사커를 완성시킨 그는 감독으로서 그보다 한 단계 발전한 ‘뷰티풀 풋볼’을 강조하고 있었다. ’‘결과에서 이겨도 아름답지 않다면 패배이다. 아름답게 승리하자’라는 철학을 팀에 심으며 스페인과 유럽 무대를 정복해갔다.

과르디올라는 사실상 이 시기부터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확실한 자기 철학과 주관을 갖고 있는 크루이프 감독의 후계자로 자라났다. 크루이프는 좀 더 큰 이상향을 과르디올라에게 주문했다. 당시 유럽을 정복한 바르셀로나의 주역은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게오르게 하지, 로날드 쿠만, 미카엘 라우드롭, 호마리우 등 외국인 선수였다. 바르셀로나에 의해, 바르셀로나를 위해 키워진 ‘메이드 인 바르셀로나’ 선수들로서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크루이프는 유스 시스템을 강화했다. 이는 스페인에 속했지만 자치권을 주장할 만큼 독립 성향이 강한 카탈루냐 주의 사회·정치·경제 담론을 담은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자신들만의 뿌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우승을 노리는 정상권 팀에서는 이루기 힘든 구조이다. 우승을 위해서는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를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 고정 관념이다. 크루이프의 꿈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일 뿐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 지난 5월28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확정 지은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수들 융화시키고 동기 부여해 주는 데 중점

2001년 바르셀로나를 떠나 브레시아, 로마(이탈리아), 알 알리(카타르), 도라도스(멕시코) 등 세계를 돌며 선수 생활 말년을 보낸 과르디올라는 크루이프의 강력한 추천으로 바르셀로나 감독으로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당시까지 바르셀로나는 루이스 반 할, 프랭크 레이카르트 등 크루이프와 동향인 네덜란드 출신 지도자가 팀을 이끌었지만 뷰티풀 풋볼을 완성시키지는 못했다. 크루이프는 혼신을 다한 유스 시스템에서 자라난 선수들이 속속 1군에 올라서자 수제자인 과르디올라가 자신의 꿈을 완성시켜줄 것이라 확신했다.

선수단 운영권을 잡은 과르디올라는 팀 분위기를 흐리던 호나우지뉴와 데쿠를 과감히 내보내고 유스 출신의 젊은 선수 위주로 재편했다. 중고참이던 카를레스 푸욜과 챠비 에르난데스를 축으로 리오넬 메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헤라르트 피케, 세르히오 부스케츠, 페드로 로드리게스를 핵심 멤버로 올렸다. 여기에 다니엘 알베스, 세이두 케이타, 다비드 비야 등 보강이 필요한 포지션에 외부 선수를 영입했다. 바르셀로나는 21명의 1군 선수 중 절반이 넘는 11명이 유스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한 바구니에서 자라난 선수들 덕에 바르셀로나는 조직력과 목표에 대한 강력한 동기 부여가 가장 강력한 팀으로 유명하다.

과르디올라는 퍼거슨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을 휘어잡는 절대 권력형 감독이나, 주제 무리뉴처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창의적인 전술을 내세우는 천재적 전략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는 크루이프가 탄생시킨 팀의 정신과 철학을 철저히 계승했다. 최고의 유스팀이 키워낸 최고의 선수가 곧 전술인 상황에서 과르디올라의 역할은 선수를 융화시키고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이었다. 호나우지뉴, 데쿠, 사무엘 에투 등 훈련 태도와 사생활, 팀원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던 선수는 제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과감히 내쳤다. 알베스와 같이 개성 강한 선수조차 과르디올라 감독의 인화 중심 지도에 녹아들었다.

바르셀로나는 스타플레이어가 모여 있는 팀임에도 선수 간의 갈등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챠비, 이니에스타, 푸욜 등은 최고의 선수로 불릴 능력을 갖추었지만 메시에게 늘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메시를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경쟁자가 아닌 한 가족이다. 바르셀로나가 맨유, 레알 마드리드 등을 꺾는 것을 ‘가족이 회사를 이기는 것’에 비유하는 이유이다. 메시는 “나는 바르셀로나와 돈이 아닌 가슴으로 계약했다”라고 말한다. 메시를 낳은 친모는 아르헨티나이지만, 그를 키운 양모는 바르셀로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서 과르디올라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과 함께 시카고 불스 왕조를 만들었던 필 잭슨 감독과 닮은 점이 많다. 그들의 성공은 조던과 메시 같은 역대 최고 선수의 도움 덕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하지만 스타를 하나로 뭉치게 하고 이미 정상에 있음에도 성공을 갈망하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능력이다. 바르셀로나가 과르디올라 부임 후 3년이란 짧은 기간 사이에 무려 10개의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전무후무한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 그 증거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어진 과르디올라는 앞으로 1년 더 팀을 이끈 뒤 새로운 도전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역 시절 그가 몸담았던 이탈리아 세리에A의 클럽이나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한 카타르 국가대표팀이 유력한 차기 행선지로 꼽힌다.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서 확실한 검증을 마치는 것은 다음 번 도전에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