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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관장님’을 왜 링 위로 불렀을까

홍송원 갤러리 서미 대표가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에게 그림값 변제 요구하는 소송 낸 내막

김진령 ㅣ jy@sisapress.com | 승인 2011.06.15(Wed) 04: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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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갤러리 서미.
ⓒ시사저널 윤성호

갤러리 서미 대표 홍송원씨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홍씨는 지난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비자금 사건의 상징이었다. 당시 김변호사는 7백억원대에 달하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삼성미술관 리움의 홍라희 관장(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이 사들였다고 주장했지만, 홍씨는 ‘판 것이 맞다’라는 애초의 주장을 번복해 이 사건이 홍관장으로 번지는 것을 막은 방화선 노릇을 했다. 그런 그가 4년여 만에 홍관장을 상대로 그림값을 갚으라는 소송을 낸 것이다.

홍씨는 지난 6월7일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했다. 홍관장과 삼성문화재단에 2009년 8월~2010년 2월 사이 미술품 14점, 총 7백81억원어치를 팔았는데 2백50억원만 받고 나머지 5백31억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홍씨는 “우선 50억원을 갚으라”라고 주장했다.

홍씨는 삼성 비자금 건과는 무관하게 오리온그룹 비자금 사건에 휘말려 지난 5월25일 구속 기소된 상태이다. 검찰은 홍씨에게 오리온그룹 비자금을 세탁한 혐의(범죄 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법 위반) 등을 적용했다.

구속은 오리온 건으로 되었는데 홍씨는 왜 삼성의 안주인 홍관장에게 소송을 냈을까. 더구나 오늘의 서미갤러리가 있기까지 삼성과의 거래가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은 화랑가에서 정설이나 다름없다. 홍송원씨는 삼성과의 ‘인연’을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올해 들어 홍씨의 행적을 살펴보면 홍관장을 상대로 낸 소송이 즉흥적으로 내린 결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잠하다 지난 4월부터 태도 달라져

2007년 <행복한 눈물> 사건 이후 물밑 행보를 보여왔던 홍씨는 2009년 4월부터 일반 관객에게 서울 가회동의 갤러리 서미를 공개하며 활동을 재개해왔다. 특히 지난 4월 이후 전열을 가다듬었다. 포르투갈 유명 여성 작가 조안나 바스콘셀로스(40) 전시회는 갤러리 서미의 공식적인 컴백을 알리는 상징적인 전시였다. 그만큼 화제도 되고 작가의 유명세도 컸다. 당시 전시를 전후해 홍씨의 둘째아들인 박필재 갤러리 서미 이사가 언론 앞에 직접 나섰고, 홍씨도 한 일간지 미술 담당 기자와 인터뷰를 갖는 등 외견상 삼성 비자금 사건 후유증에서 완전히 탈피한 듯 보였다.

바스콘셀로스 전시는 ‘준비 기간만 1년5개월’(박필재 이사의 말)이 걸린 기획전으로 홍씨에게는 의미가 있는 전시였다. 이 행사를 전후해 갤러리 서미는 설립 이래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다. 갤러리 서미의 주주이자 설립 이래 이사로 있던 김용기씨가 지난 4월20일자로 이사진에서 빠지고 갤러리 서미는 홍씨와 아들 박원재 이사, 박필재 감사로 구성된 완벽한 가족 회사로 재출범했다. 등기부상 기록을 보면 홍씨의 큰아들 박원재씨는 2002년 회사 설립 때부터 주주 겸 이사로 올라 있고, 둘째아들 박필재씨는 지난 2008년 감사로 합류했다.

박필재씨는 이번 전시로 처음 매스컴에 등장했고, 박원재씨는 지난 2월 한 여성지에 자신의 집을 공개하며 외부에 등장했다. 세 모자가 4월 전시를 기점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묘한 것은 홍씨의 발언이다.

홍씨는 삼성 비자금 사건 이후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삼성가의 그림자를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4월 인터뷰에서 ‘이재용 사장’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의 발언은 이랬다. “2002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작품이 나왔기에 6백80만 달러에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는 삼성에 팔려고 2년 넘게 기다렸는데 홍라희 관장께서는 마음에 들어 했지만 이재용 사장이 만화 같은 그림을 7백만 달러나 주고 왜 사느냐고 반대해 결국 못 팔았다. 이후 비자금 파문에 휘말리는 바람에 미국측에 도로 팔아버렸다.”

자금 압박설의 진상은?

   
▲ 2008년 특검 조사를 받고 나올 당시의 홍송원 대표(가운데).
ⓒ연합뉴스

형식은 이전에 있었던 <행복한 눈물>의 소유권을 둘러싼 공방에 대한 해명이었지만 이는 되레 삼성 비자금 사건을 환기시키는 꼴이 되었다. 재벌가에서는 좋든 나쁘든 이런 사안에 로열 패밀리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극구 꺼린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홍씨가 바스콘셀로스 전시 건을 명분으로 잡은 인터뷰에서 왜 갑자기 홍라희 관장과 이재용 사장의 이름을 들먹였는지를 놓고 화랑가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리고 한 달여 뒤인 지난 5월25일 홍씨는 오리온그룹 비자금 건으로 구속되었다. 6월7일에는 홍관장을 상대로 소장을 제기했다. 그동안 쉬쉬했던 물품 대금 문제를 법정에서 따져보자는 것이다. 재벌가나 화랑가에서는 ‘서태지-이지아 이혼 재판 건’만큼이나 쇼킹한 일이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왔던 삼성가의 미술품 거래 관행이나 가격,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여부, 삼성미술재단이나 리움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재판 과정에서 낱낱이 공개되는 것은 물론 홍관장도 재판정에 출석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갤러리 서미는 자금 압박설에 휘말려왔다. 하지만 외견상 드러난 재무제표를 보면 서미는 한국의 어느 화랑보다 더 큰 거래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갤러리 서미는 지난 2010년 1천2백1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9년에는 9백21억원이었다. 순이익도 38억5천만원에서 49억2천만원으로 뛰었다. 여기에는 영업이익이 24억8천만원에서 61억3천만원으로 뛴 것이 큰 몫을 차지했다.

서미가 자금 압박을 심하게 받았다는 근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하나는 부채가 늘어난 것이고, 또 하나는 강남 서미앤투스갤러리 건물을 매각한 것이다.

갤러리 서미의 부채 총계는 2009년 7백60억원에서 2010년 1천5백60여 억원으로 두 배로 뛰었다. 특이한 것은 2010년에 원앤제이로부터 4백50억원어치의 작품을 사들인 것이다. 원앤제이의 2010년 매출이 4백56억원이었던 것에 비추어보면 원앤제이는 매출의 거의 전부를 갤러리 서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갤러리 서미의 차입처 중에는 파인아트컬렉션이 눈에 띈다. 서미는 2010년 한 해에만 2백19억원의 돈을 파인아트컬렉션에서 조달했다. 파인아트컬렉션은 2010년 5월에는 갤러리 서미와 하이자산운용, 신한금융투자가 공동으로 띄운 파트너 격인 회사이다. 2009년 5월에는 원앤제이의 파트너 격인 서미컬렉션유한회사가 세워지기도 했다. 화랑가에서는 이런 회사의 역할이 고가의 미술품 거래를 위해 금융회사와 갤러리 간의 자금 차입과 조달을 담당하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로 보고 있다. 이런 유한회사의 잇단 설립은 홍송원씨가 미술 사업을 더욱 본격화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서미앤투스는 서울 청담동 사옥을 2010년 10월에 매각했다. 등기부상 기록에 따르면 64억원에 매각한 뒤 서미앤투스는 3억3천만원에 전세를 살고 있다. 이 건물은 대지 71평에, 단층 면적이 31평 정도, 5층짜리 건물이다. 서미앤투스는 미술품 거래와 인테리어 사업을 겸하는 회사로 주요 주주로 홍송원씨와 ㈜한성과 대상그룹 상속녀인 임상민씨가 올라 있다. ㈜한성은 홍씨의 여동생인 홍정원 서미앤투스 이사의 남편인 구자철 회장의 회사이다. 구회장은 LS그룹 구자홍 회장의 동생이다.

홍송원씨는 나름으로 자금 조달 방법이나 자산 매각 등 갤러리 서미그룹의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공을 들여온 셈이다. 그러던 홍씨는 돌연 구속되고, 옥중의 홍씨는 오리온 건에 대한 무죄를 논하기에 앞서 홍라희 관장을 링 위로 불러 올렸다. 홍씨 입장에서는 그것이 더 시급한 일이었다는 의미이다. 이 때문에 송사가 법정으로 이어질지, 취하될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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