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맹주’ 향한 꿈, 날개 달다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6.2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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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에르도안 총리, 최근 총선 승리로 세 번째 연임 성공…G-20 가입 이어 EU 가입도 ‘눈앞’
▲ 지난 6월12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 있는 집권 정의개발당 본부 앞에서 에르도안 총리가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REUTERS
터키의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6월12일 실시된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어 세 번째 집권에 성공했다. 유권자들은  50% 가까운 지지표를 던져 5백50석의 의회에서 3백26석을 여당에 안겨주었다. 터키 역사상 이런 일은 처음이다. ‘선거 혁명’으로 불리는 역사적 대변환의 중심에는 2003년에 처음 집권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57)가 있다. 그가 파격적으로 승리한 두 가지 큰 요인은 경제와 안보이다. 유럽 각국이 경제 위기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터키 경제는 9년 연속 평균 7%의 성장을 지속했다. 외교적으로는 인접국 및 세계 강대국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거의 긴장 제로 상태의 국제 관계를 구축했다.

에르도안은 이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강력한 터키를 건설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이러다가는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독재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그의 치세는 탄탄대로에 들어섰다. 세계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고 있다. 정치학자들은 국민을 매혹시키는 그의 통치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연구하느라 바쁘다. 일부 분석가들은 국부 아타튀르크를 연상시킬 정도로 그가 세상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는 독실한 무슬림이면서 정치에서는 이슬람 교리를 배척하고 세속주의를 앞세우는 자기 모순적 노선을 서슴없이 선택했다. 과거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권이 강요한 종교적 이념을 정치에서 추방함으로써 보수 성향 수니파 유권자들의 저항을 불러온 점을 주목했다. 이슬람주의에 너무 집착하다가 실패를 거듭하는 여러 중동 국가에서 교훈을 배웠기도 했다. 그는 승리를 축하하는 연설에서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누구를 증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슬람과 세속주의, 소수 종족 문제를 모두 포용하겠다는 말이다.

에르도안의 삶의 행로를 한마디로 말하기는 힘들다. 노점상, 노조위원장, 축구 선수, 야당 당수, 투옥, 집권당 창당 등이 그의 과거사에서 드러나는 주요 이력이다. 이것만으로는 그의 정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소년 시절 그는 터키 슈퍼 리그의 축구 선수로 한 10년간 활약했다. 그는 어쩌면 축구 인생으로 일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학에서 경영행정학을 전공하면서 그의 가슴에는 개혁 마인드가 싹트기 시작했다. 터키의 발전을 저해하는 수많은 장애물을 제거하겠다는 집념은 그를 정계로 이끌었다. 그를 터키 개혁의 영웅으로 만든 씨앗은 이때 심어진 듯하다. 정계에 투신하면서 터키의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는 참신한 개혁 공약으로 최대의 상업 도시인 이스탄불의 시장에 당선되었다. 4년간 시장을 지내면서  빈민굴, 공해, 교통 지옥, 물 부족, 쓰레기 대란을 해소했다. 공공 장소에서의 흡연과 술 판매를 금지했다. 그 결과 이스탄불은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관광지로 변했다. 그의 야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터키 전체를 개조하겠다는 야망을 불태웠다. 오늘의 터키를 만들 구상은 이때 만들어졌다.

▲ 지난 6월12일 터키 집권 정의개발당 본부 앞에서 지지자들이 선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AP 연합
비판 세력 탄압 등 ‘독재’에 대한 우려도 있어

총리가 되면서 우선 5만명의 사상자를 낸 쿠르드족과의 분쟁을 종결했다. 남동부에 거주하는 이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에로도안은 이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자치권을 주고 쿠르드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허용했다. 그는 세계 무대로 눈을 돌렸다. 가장 먼저 착안한 비전은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을 잇는 터키의 지정학적 입지를 감안한 이른바 ‘가교(架橋) 외교’였다. 유라시아의 다리가 되겠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물론이고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그리고 중남미 국가들과 우호 관계를 구축했다.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이란, 이라크 등 아랍국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었다. 유일한 예외는 이스라엘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빼앗은 이스라엘을 서슴없이 규탄한다. 이 때문에 미국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은 이슬람 혈통을 이어받은 그로서는 숙명적인 것이다.

그가 재탄생시킨 터키의 등장은 지난 10년의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이면서 가장 주목받지 못한 변화이다. 그만큼 그의 개혁이 큰 마찰음 없이 추진되었다는 얘기이다. 에르도안의 영도하에 터키는 오토만 제국의 잔재를 말끔히 치웠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여러 차례 받으면서도 세계 17위의 경제 규모를 건설했다. 1인당 소득은 1만 달러에 근접했고, 경제성장률은 세계에서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높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는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G-20 클럽에도 가입했다. 남은 숙원은 EU 가입인데 그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아랍의 봄’이 개화하면서 터키의 위상과 역할은 더욱 높아지고 확대되었다. 오랜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중동 사람들은 터키를 ‘영감의 모델’로 바라본다. 터키는 어느새 ‘무슬림 민주주의’의 표상이 되었다. 아랍의 거리에서 에르도안은 ‘영웅’으로 추앙된다. 이번 터키 선거는 인접국과 세계 각국에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군부의 입김을 제거하면서 경제를 성장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 일석삼조의 쾌거가 다른 나라에서도 가능하다는 산 증거를 터키가 보여주었다. 그에 대한 지지율은 60%를 넘는다.   

그러나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에르도안이 이끄는 터키의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경제가 삶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EU 가입, 이스라엘과의 앙숙 관계, 군부의 동태, 쿠르드족 문제 등이 아직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언행도 마음에 걸린다. 무엇보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이 변할 가능성이 없다. 그를 비판한 기자 60여 명이 현재 감옥에 있다. 정부를 비판한 작가와 방송인들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이 1만건에 이른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터키의 언론 자유 순위를 1백38위로 매겼다.

에르도안에 대한 비판을 자아낸 최대 이슈는 헌법 개정이다. 터키 헌법은 몇 번 수정되기는 했으나 근간은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만든 그대로이다. 에르도안은 군부와 사법 제도를 완전히 민주적 통제하에 두는 프랑스식 대통령제를 꿈꾸고 있다. 이 방향으로 헌법 개정을 시도할 경우 많은 마찰이 예상된다. 의석 수도 문제이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단원제 의회에서 3분의 2 다수 의석을 확보해야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방법은 중소 정당 소속 의원들을 포섭하는 것인데, 이것이 쉽지 않다. 7천3백만명의 터키 인구 가운데 18%를 차지하는 1천4백만명의 쿠르드족을 다루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 분리 독립을 원하는 이들의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할지도 고민거리이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터키로 넘어온 5천명의 난민을 처리하는 문제도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 시리아와의 관계 설정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에르도안이 집권 당시에 비해 터키를 더 살기 좋고 풍요롭고 안정된 나라로 변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도전도 많다. 그의 권력이 너무 비대해져서 군부 시절의 독재로 환원하는 사태가 온다면 그것은 이 선거에서 그의 당에 투표한 유권자들이 바라는 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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