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해도 ‘경징계’로 어물쩡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7.05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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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전국 국공립 초·중·고 교원 징계 현황 자료 입수…솜방망이 처벌 실태 그대로 드러나
ⓒ일러스트 찬희

10대 여제자를 1년 동안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한 여고 교장이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 6월15일 전남 함평경찰서는 이 지역의 한 여고 교장 김 아무개씨(57)를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지난 4월12일 학교 관사로 제자인 ㄱ양(17)을 불러내 변태적인 성행위를 시키는 등 지난해 5월부터 1년간에 걸쳐 총 여덟 차례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성추행을 한 혐의가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ㄱ양의 체육복에서 김씨의 정액이 나오고, 관사 CCTV 화면에 김씨가 ㄱ양을 데리고 관사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는 “ㄱ양을 관사로 데려간 것은 맞지만, 침대에 앉혀놓고 상담을 했을 뿐이며, 정액이 묻은 것도 ㄱ양이 몰래 침대에 들어갔다가 묻은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은 광주지검 목포지청으로 넘어갔는데, ㄱ양의 아버지는 ‘김 아무개 교장이 성추행을 한 적이 없다’라는 내용의 합의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경찰측은 “(합의서는) ㄱ양이 스스로 썼다기보다는, ㄱ양의 아버지가 김씨와 합의하고 ㄱ양에게 사인만 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무튼 양자의 합의로 인해 검찰은 김씨에 대한 처벌에 애를 먹고 있다.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규정 때문이다. 김씨의 혐의는 해당 법률 가운데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에 포함된다. 이는 피해자가 합의와 같은 의사 표현을 하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에 해당된다.

해당 지역 교육 당국 또한 이번 사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전남도교육청의 안일한 대응 방식은 김씨에 대한 경찰 수사가 처음으로 진행된 시점부터 죽 이어졌다. 지난 4월 중순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면서 이 사실을 전남도교육청의 감사실에 알렸다. 감사실은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원 관리 담당 부서인 교원정책과에도 알리지 않았다. 감사실의 대응은 거의 ‘묵인’이나 다름없었다.

‘4대 비위’ 가운데는 금품 수수가 최다

감사실은 사건 수사가 진행된 지 두 달이 지난 6월16일에 김씨를 직위해제했다. 김씨가 불구속 입건된 이후였다. 결국 김씨는 성추행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중에도 두 달 동안 학교에서 계속 교장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했다. 성추행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은 ㄱ양과 같은 학교에 있었던 것이다.

현재 조사가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에 ‘성추행’ 여부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역 여론은 매우 뜨겁다. “성추행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교장이 특정 여학생을 자신의 관사로 데리고 들어가고 침대에 앉히고 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결코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라는 비난 여론이 그것이다. 법적인 시비에 앞서, 이미 교육자로서 품위와 자질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만큼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 보니 전남도교육청 역시 검찰의 통보를 기다리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씨에 대한 징계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전남도교육청 교원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징계를 집행하기는 하지만, 감사실에서 징계 수위 등을 정해 징계를 요구해야 가능하다. 사안이 미묘해서 어떤 식으로 결정될지는 아직 모른다”라며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다.

감사실의 한 관계자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해 교육청에서 (김씨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식의 비판을 듣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검찰의 통보에 얽매이지 않고 내부적으로 징계를 내릴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만약 성추행 혐의가 어느 정도 인정된다면 징계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감사실에서 내부적으로 따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사실 비리 교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교육계에 관행적으로 퍼진 분위기이기도 하다. 비리 교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어느 수준일까. <시사저널>은 전국 초·중·고등학교 교원들의 징계 현황과 관련된 자료를 단독 입수해 그 실태를 살펴보았다. 이 자료는 2008년도부터 2010년도까지 3년 동안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의 징계위원회가 전국 초·중·고등학교(국공립만 해당)의 교원에게 내린 징계 결과를 모은 것이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월1일부터 2010년 12월31일까지 3년간의 교원 징계 가운데, 10건 중 7건꼴로 불문 경고·견책·감봉과 같은 ‘경징계’가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징계 결과를 살펴보면, 교육청 소속 교원을 제외한 전체 초·중·고교 교장·교감·교사 등에 대해 지난 3년간 내려진 징계 1천5백39건 가운데 경징계는 견책이 5백39건(35%), 불문 경고가 2백80건(18%), 감봉이 2백40건(16%)으로 전체의 69%에 달했다. 중징계는 정직 3백39건(22%), 해임 1백4건(7%), 파면 37건(2%)으로 총 29%였다.  

성폭행·금품 수수·성적 조작·폭행 등 이른바 ‘4대 비위’에 대한 징계 수준도 미온적이었다. 여기서도 역시 경징계 비율이 51%로 절반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4대 비위’에 대한 총 3백27건의 징계 처분 결과를 살펴보면, 경징계는 견책이 90건(26%), 감봉이 61건(19%), 불문 경고가 19건(6%)으로 총 1백70건(51%)에 달했다. 중징계는 정직이 81건(25%), 해임이 49건(15%), 파면이 27건(9%)이었다. 4대 비위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은 ‘금품 수수’였다. 금품 수수로 인한 징계는 총 2백33건에 달했다. 금품 수수에 대한 징계 가운데 경징계의 비율은 50%였다. 

한편 교원들의 징계 사유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음주 운전’(5백25건)으로 약 34%를 차지했다. 징계는 빈번하게 이루어졌음에도 처분 수위는 대부분 불문 경고나 견책에 불과했다. 음주 운전에 대한 징계 가운데 경징계는 견책이 2백35건(45%), 불문 경고가 1백25건(24%), 감봉이 87건(17%)이었다. 중징계는 정직이 75건(14%), 해임이 3건(3%)이었다. 

사립학교는 관련 정보 입수조차 힘들어

교육계에서 끊이지 않는 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징계 수위’를 높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4대 비위’에 대해서도 가벼운 처분이 주를 이루는 실태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한 도교육청의 교원정책 담당자는 “그나마 공립의 경우는 어느 정도 교원 비리를 관리할 수 있다. 제보에 의해 내부 민원이 제기되어서 감사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사립은 재단과 법인이 징계 권한을 가지고 있고 제보 또한 미미하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사실 사립학교의 교원 징계에 대해서는 관련 정보를 입수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교육 당국 관계자들은 “재단이나 법인에서 교원 징계 처분 결과를 교육청에 알리도록 되어 있지만 모든 징계 조치를 의무적으로 고지하는 것은 아니다. 감사실에서도 특별한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주기적으로 사립 재단의 징계 현황을 관리할 자격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교원 비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담당 부처의 철저한 의지가 뒷받침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 교육청 감사실의 관계자는 “전국 시·도교육청의 감사관이 올해 1월1일부로 공모제로 바뀌어 계약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독립적인 성향이 생기다 보니 감사 과정 자체가 더 철저해졌고 그만큼 의지도 강해졌다. 아직은 좀 더 지켜보아야 성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징계’ 피하고 교단에 다시 돌아오는 뻔뻔한 교사들

비위가 드러나도 일단 징계를 피한 뒤 다시 교단에 오르는 ‘뻔뻔한’ 교사들도 있다. 현행 공무원법에 따르면, 교육 비리로 파면·해임된 교사는 다시 교단에 설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를 뒤집어보면, ‘징계만 피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교단에 다시 설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그동안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기 전에 자진해서 먼저 사직한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교사들이 많았다. 또 사직한 뒤 비위 행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다 하더라도, 5년이 지나면 교사로 임용되는 데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처럼 현행 법 규정을 악용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관련 법 개정에 대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4월29일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교육공무원법·사립학교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날 통과된 개정안은 징계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지 않아도 4대 비위로 인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교원은 다시 채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인 교원뿐만 아니라 기간제 교사나 강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권영진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기 전에 공무원이 사직서를 제출한다 하더라도 사표를 수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비리 교원으로 명예가 실추될 것을 우려해 서둘러 사직서를 처리하는 학교가 많았다. 물론 여전히 비리 교원들이 징계를 회피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비리 교원들이 다시 복귀하는 관행만큼은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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