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원 둘러싸고 분열되는 ‘이승만’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07.0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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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장 소장 사료 연세대에 넘기면서 돈 수수’ 논란…보수 진영 내에서도 파열음

▲ 이화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거주하던 곳으로 1948년 초대 내각을 구성한 장소인 조각정이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 1번지에는 1천7백여 평의 넓은 대지에 고즈넉한 한옥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거주했던 ‘이화장’이다. 이화장은 대통령의 거주지였다는 점 외에도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다. 1948년 대한민국 초대 정부의 조각(組閣)이 이루어져 발표된 곳이 이화장이다. 1982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던 이화장은 2009년 4월, 사적 497호로 지정되면서 국가지정 문화재가 되었다. 그런 이화장을 둘러싸고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이화장에는 1965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서거 후, 미망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양자인 이인수씨(‘이승만 기념사업회’ 이사) 가족이 함께 거주했다. 이때만 해도 옛 경무대 직원들이 건물 관리 등에 신경을 쓰고 성금을 내며 이곳을 보살폈다. 하지만 1992년 3월18일, 프란체스카 여사가 타계한 뒤에는 그런 발길마저 줄어들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받던 연금과 각종 지원금, 차량 보조금 등 월 4백만~5백만원 정도의 지원이 끊어지면서 유지·보수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광복 이후의 역사를 품은 이화장은 점점 평범한 민가로 전락해 갔다.

비록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졌지만 이화장 내에는 역사의 흔적들이 그대로 잠자고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이 남겨놓은 막대한 사료들이 그것이다. 1948년부터 10여 년간 국내외 신문들을 스크랩한 수백 권의 노트들, 이동휘·민영환 등에게 보낸 친필 서한, 임시 정부가 대미 외교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에 설치한 구미위원부에서 발행한 ‘공채표’ 등 각종 희귀 자료들이 있었다.

“팔아먹었다” 비판에 “유지 관리 비용” 반박

▲ 이화장 내부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진과 친필 서한, 가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 사료들은 1998년 트럭에 실려 연세대로 넘어갔다. 연세대가 넘겨받은 자료는 이 전 대통령의 일기와 편지, 연설문, 미 출간된 책의 원고 등 1만9천종으로 15만 페이지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1998년 당시 기사를 살펴보면, ‘이화장측은 이 사료들을 연세대에 기증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와 관련해서 새로운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료들이 무상 기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보수 단체의 간부는 “당시 이화장에서 사료들을 (연세대에) 제공하면서 15억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기자에게 전했다. 국가기록물을 관장하는 행정안전부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행안부의 한 관계자는 “일종의 수집 비용처럼 일정 부분 (이화장이) 금전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들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국정 수행 중 남긴 작은 메모지 하나조차도 국정 수행의 중요한 기록물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런 역사의 흔적들은 대통령 기록관으로 옮겨간다.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대통령 기록과 관련해 돈을 지원받으며 기증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최근 2만건 정도를 그냥 기증했고, 윤보선 전 대통령의 기록도 유족과 논의해 위탁 보존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15억원이라는 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 보수 단체의 관계자는 “대한민국 역사가 기록된, 그런 보물 같은 서류들을 금전적 대가를 받고 넘겼다. 대학에서 소유하며 학술적 용도로 사용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인들도 열람하고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데 그런 길을 아예 막아버렸다”라며 이화장측을 비판했다.

<시사저널>이 확인 취재한 결과, 이화장측에서 이승만 사료를 기증하며 15억원을 받은 것은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 돈의 성격을 둘러싸고 이화장과 일부 보수 단체 간에 상당한 인식 차이가 있다. 양측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불거지고 있는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화장측은 ‘금전적 대가’라는 의혹에 대해서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1998년의 일이 지금 와서 불거지는 데 대해 거꾸로 일부 인사들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씨는 “당시 삼성그룹에서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를 만들기 위해 50억원을 발전 기금으로 기증했는데, 그중 15억원이 이화장 관리와 유지 비용으로, 35억원이 연세대 한국학연구소 기금으로 갔다”라고 밝혔다.

이씨는 이화장의 사료를 보존하는 데 삼성의 도움을 구했다고 밝혔다. “당시는 전직 대통령 기록물에 관해서 정부의 지원이나 관련법이 없던 시기였다. 1994년에 이건희 회장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고, 삼성의 지원을 받아 사료를 복사할 수 있었다. 때마침 최송옥 여사(현재 ‘이승만 기념사업회’ 이사)가 자신의 부암동 건물을 이승만을 연구하기 위해 연세대에 기증했고, 삼성에서 연구 기금 50억원을 마련해줘 연세대로 사료를 이관했을 뿐이다. 당시 이화장에는 관리 기금도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학연구소로 사용되던 이 부암동 건물은 올해 2월부터 ‘이승만연구원’으로 독립했다.

이승만 사료를 양도했던 시점에 받은 15억원을 놓고 이처럼 서로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최근 들어 이화장이 새삼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공과(功過)가 학계에서도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현 정부에서 빠르게 진행되었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어 이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격상시키는 작업이 있었고, KBS에서는 올해 광복절에 이승만 특집 다큐멘터리를 내보낸다. 자연스럽게 이승만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는 이인수씨와 이화장도 주목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미래연구원과 이승만연구소로 갈려

제헌절 60회를 맞은 지난 2008년 7월17일, 100여 명의 보수 진영 지식인들은 이화장에 모여 ‘미래연구원’을 출범시켰다. “건국 60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확립하겠다”라는 취지를 밝혔다.

이날 이인수씨는 유종하 전 외무부장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미래연구원의 고문에 추대되었다. 이화장을 중심으로 보수 진영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이화장 인근에 사는 주민은 “과거에 비해 이화장에 사람이 많이 몰린다. 이전에는 조용했는데 이제는 사람들 소리가 많이 난다”라고 말했다.

이화장에 사람들 발길이 잦아지면서 기존 기념사업회를 이끌던 세력들과 갈등이 생겼고 방향성에 대해서도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나타났다.

기념사업회를 비판하는 측은 “이화장 쪽에서 기념관 건립 등 현재 상황에서 볼 때 무리하고 덩치 큰 사업에만 몰두한다. 기념사업회가 잘 되려면 유족들이 한 발짝 물러서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화장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일단은 백범기념관이 만들어질 때처럼 국민들에게 이승만을 알리는 작업을 선행한 뒤에 무엇을 해야지, 갑자기 기념관 사업부터 들고 나오면 잘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승만기념사업회의 김일주 사무총장은 “유족들이 물러서야 한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는 것을 안다. 하지만 비단 우리 사업회 쪽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백범기념사업회 등 다른 곳에서도 제기되었던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기념관 사업 역시 포기하지 않을 뜻을 밝혔다.

이승만연구소 창립식에서 언쟁 벌어지기도

▲ 지난 4월18일 4·19 민주혁명 희생자 참배와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를 찾은 이인수씨(오른쪽)가 4·19 유족과 관계 단체의 저지로 묘지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화장의 행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이들도 따로 결집했다. 지난 3월9일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는 ‘이승만연구소’를 창립했다. 이승만연구소는 이화장의 기념사업회를 돕던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가 이끌고 있다.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류기남 자유시민연대 대표, 이도형 한국논단 발행인,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등 보수계 원로들이 고문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반면 기념사업회 쪽 인사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화장측은 “우리가 큰집이고 저쪽은 작은집이다”라고 설명했지만,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창립식에서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늦게 도착한 이인수씨와 창립식에 참가한 인사 사이에서 언쟁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인사는 “(이씨가) 이화장과 별도로 이승만연구소가 따로 생긴다는 점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듯했다”라고 말했다. 이화장측은 “의전상의 실수 때문에 생긴 오해였다. 서로가 오해될 만한 것들이 있었는데 다 풀었다”라고 해명했다.

한 보수계 인사는 “이승만 동상 하나도 세우기 어려운 시기 아니냐. 보수 진영의 전반적인 여론이 이런 상황을 안 좋게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승만 재평가 작업의 파열음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새어나오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승만기념사업회’ 이사진 구성에 “동문회·종친회 형태로 모아서야…”

김일주 이승만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쟁쟁한 분들을 모았다. 전직 당 총재를 하셨던 분도 있고, 장관을 하셨던 분도 있다. 이사들은 기념사업회에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실 수 있거나 힘을 써주실 수 있는 분들을 모셨다”라고 말했다. 이승만기념사업회 조직 구성을 들여다보면 이같은 김사무총장의 말이 이해된다. 현재 기념사업회장은 이기수 고려대 총장이 맡고 있다.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박세환 재향군인회장 등이 상임고문에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것은 25명의 이사진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씨도 현재 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이사진은 크게 세 줄기로 구성된다.

우선은 고려대 인맥이다. 학력 파악이 가능한 이사진 중 신경식 전 장관, 이강욱 국가발전기독연구원 이사장,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고려대 출신이 8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인수씨 역시 고려대를 졸업했다. 감사를 맡고 있는 김규선 동북아손해사정 사장과 김일주 사무총장 역시 고려대 동문이다.

다음으로 배재고등학교 출신이 이사진에 더러 포진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배재고등학교 전신인 배재학당 출신이다. 이인용 백경물산 대표, 윤영노 자뎅 대표, 정순훈 배재대 총장 등이 배재고 출신이다.

전주 이씨 역시 기념사업회의 한 축이다. 이 전 대통령과 이인수씨 모두 전주 이씨이다. 이완근 신성홀딩스 대표이사와 이강용 청권사 이사장 등은 전주 이씨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감사를 맡고 있는 이희영 전 천안시장도 전주 이씨 종친이다.

보수계의 한 원로 인사는 “기념사업회를 운영하기 위해 인맥 위주로 사람을 꾸리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동문회·종친회 형태로만 모아서야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라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것은 ‘코리아게이트’로 유명한 박동선씨가 이사진에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박씨는 배재중학교에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김사무총장은 “이승만 대통령 거주처가 미국이었고 이분이 워낙 미국에 아는 분들이 많다. 미국 지사를 설치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 어렵게 영입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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