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대여’ 대출 피해도 있었다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1.07.05 22: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저축은행 SPC 태안종합건설 직원들 각각 3천만~6천만원 부담 떠안아…“회사 대표가 지시”

▲ 전체 12만여 평 중 5만평가량의 토지가 명의 대여 대출로 매입된 대전 관저4지구 도시 개발 현장. 공사는 2년여 전부터 중단된 상태이다. ⓒ시사저널 윤성호

부산광역시 진구 연지동에 사는 이기영씨(가명)는 지난 2005년 본인 명의로 부산저축은행에서 2억2천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러나 돈은 이씨 손을 거치지 않은 채 토지를 매수하는 데 사용되었고, 시간이 흘러 지난 2006년에는 또 다른 회사로 양도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한 달여 전인 5월25일 이씨는 예금보험공사에서 발송한 우편물을 받았다. 대출 잔액 3천6백70만원을 갚으라는 변제 독촉 통지서였다.

이씨는 “월급쟁이인 우리에게 몇천만 원은 정말 큰돈이다. 부산저축은행과 관련된 회사에 다닌 죄로 이 큰돈을 갑자기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니 막막하기만 하다”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현재 재산이 압류당할 위기에 처했다. 부산저축은행 관련자 정 아무개씨에게 상황을 물어봤지만 죄송하다는 말뿐이었다. 급한 마음에 이씨는 매수·매도 과정에서 증발한 차액에 대한 횡령 혐의를 물어 정씨를 부산동부경찰서에 고소해 놓은 상태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씨를 비롯한 10여 명은 태안종합건설 직원이었다. 태안종합건설은 부산저축은행의 특수목적회사(SPC)이다. 회사 대표 김해식씨는 현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된 상태이다. 김대표는 지난 2005년 5월 직원들에게 대전 서구 관저4지구 개발에 필요한 토지를 매입하는 데 ‘명의를 대여하라’라고 지시했다.

이씨는 “김해식 대표의 지시이기는 했지만 김대표는 부산저축은행 임원회의에 참석해서 모든 것을 처리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 입장에서는 부산저축은행과 연관되는 것인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불안했지만 지시에 따랐다. 부산상호저축은행 초량본점을 방문해 대전 관저4지구의 땅을 부산저축은행에서 매수하기 위해 필요한 대출 서류에 기명 날인을 했다. 부동산 매수 금액, 면적, 지번과 대출 금액, 통장 개설, 대출금 인출, 사용 등에 대한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였다.

도시 개발 사업을 진행할 때 자금은 대체로 건설회사나 은행에서 부담하지만 의결권과 권한은 지주조합에서 행사하게 된다. 당시 대전 관저4지구 개발 현장에서의 불리한 여건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원을 투입해서 땅을 매입할 필요가 있었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지주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 다른 피해자인 백진권씨(가명)는 “숫자는 전체의 10~20%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지주가 되면 단결이 잘 되고 말재간이 좋은 사람이 나서서 주도권을 잡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우리 명의로 대출을 받아 땅을 구입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대전 관저4지구 개발에 명의를 대여해준 사람은 서른 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태안종합건설 직원이 10여 명 포함되어 있었다.

인천 효성동 개발 사업에서도 유사 피해 발생

▲ 회사의 지시로 명의를 대여해준 이기영씨가 대출 잔액을 가리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명의 대여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이들이 이같은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강압이 있었을까. 이씨는 “꼭 깡패를 동원해서 협박해야만 강압이 아니다. 부산저축은행의 계열사나 다름없는 회사에 다니다 보니 그것(명의 대여)을 거부하면 회사에서 잘릴 것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월급쟁이의 비애 아닌가. 명의 대여해주고 보증 서주고 하면 손해를 본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나”라고 하소연했다.

그런데 명의를 대여해 구입한 땅이 오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되었다. 처음에 명의를 대여해 이루어진 대출 금액이 토지 매수 금액을 웃돌았음은 물론이고, 이 토지를 ㈜도시생각에 양도하는 과정에서 초기 토지 매수 금액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 오간 것이다. ㈜도시생각 역시 부산저축은행이 설립한 SPC 중 하나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백진권씨의 경우 명의를 대여해줘 대출이 승인된 금액이 1억5천만원이었다.

그런데 대전 관저4지구의 토지를 구입하는 데 들어간 돈은 약 9천7백40만원이다. 여기에서 5천2백만원가량의 차액이 발생한다. 그리고 2006년 2월 이 토지를 ㈜도시생각에 매도했는데 그 가격이 약 1억6천만원이었다. 토지를 매수할 때의 금액과의 차이를 계산하면 무려 6천3백만원가량이 증발한 셈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본래 백씨의 명의로 대출되었던 1억5천만원 중 1억2천2백만원은 상환되었다. 하지만 이자와 함께 잔액 3천6백만원이 남은 상태이다. 이런 방식으로 명의를 대여해준 직원 10여 명이 각각 3천만~6천만원가량의 대출 잔액을 떠안고 있다.

회사 지시로 이름을 적고 도장을 찍은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지난 5년여 간 백씨의 이름으로 구입된 토지는 백씨 모르게 이곳저곳을 거쳤고, 결국 그에게는 대출 잔금을 갚으라는 독촉 통지서만 돌아왔다. 지난 5월25일이었다. 백씨는 “억울해도 명의를 대여해준 원죄가 있기 때문에 어디에 호소하기도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통지서가 날아오기 전까지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수사에서 결론이 나면 어떻게든 정리가 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백씨는 재산 압류가 두려워 우선 빚을 내어 잔액을 갚아버렸다. 피눈물이 났다. 하지만 계속해서 붙을 이자가 겁나 어쩔 수 없었다. 지난 4월30일부로 태안종합건설은 사실상 폐업 상태가 되었고, 백씨는 이미 3월 말에 퇴사했다. 지난해 10월 이후부터 월급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월급, 퇴직금, 나와 상관없는 대출 잔액까지 5천만~6천만원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기영씨는 그나마도 형편이 어려워 빚을 내지도 못하고 있다. 백씨보다 먼저 지난해 12월에 회사를 나온 이씨는 한 달 전 일자리를 구하기 전까지 6개월 동안 실업급여로 생활하고 있었다.

백씨와 이씨는 한목소리로 “이것만 없애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가리킨 것은 대출 잔액이 표시된 문서였다. 하지만 암묵적 강압에 따른 것이든 아니든 ‘명의 대여’라는 불법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가야 할 길은 험난하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와 관련해 우리 같은 사람이 있는지는 존재조차도 모를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서 (명의 대여에) 서명한 우리 잘못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나. 어떨 때는 예금 피해자들이 부럽다.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할 수 있다는 게.”

한편 인천 효성동 도시 개발 사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피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곳 역시 부산저축은행의 SPC인 효성도시개발이 진행하고 있었다. 토지 소유자 중 이 아무개씨의 피해 금액이 26억원에 달하고 이곳의 세입자로 들어와 있는 영세 사업체들 역시 피해를 호소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편성곤씨는 “우리도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해왔다.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이렇게 커졌으니 공영 개발을 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기만을 바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