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물거리는 ‘손’에 내리친 ‘정’
  • 이유주현│한겨레 정치팀 기자 ()
  • 승인 2011.07.1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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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손학규 대표·정동영 최고위원, 총선·대선 앞두고 충돌 가능성 더 커질 듯

▲ 지난 7월4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는 정동영 최고위원(왼쪽)의 말을 손학규 대표가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홉달 만의 첫 충돌이었다. 지난 10·3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적어도 공식 석상에서는 서로 낯을 붉히지 않았던 손학규·정동영 두 정치인이 7월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원칙 있는 포용 정책’을 둘러싸고 가시 돋친 설전을 벌였다. 기자들이 지켜보는 공개 회의에서 언쟁이 계속되자, 보다 못한 당직자들은 “그만하세요”라며 말렸다.

사회를 보던 김현미 수석사무부총장은 부랴부랴 “이제 비공개로 가자”라며 기자들을 내보냈다. 이후 두 사람 모두 더 이상의 확전은 피하면서 봉합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날 논쟁은 포클레인 삽으로 강바닥 오니토를 퍼올린 것처럼, 양쪽이 평소 품고 있던 생각의 차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겉으로 보자면, 이날 먼저 펀치를 날린 쪽은 정동영 최고위원이지만 정최고위원이 파고들 수 있었던 데는 최근 손학규 대표의 잇따른 ‘실기’가 빌미를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손대표는 지난 5월에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안에 대한 여야 합의 과정에서 리더십을 의심받았고, 6월에는 KBS 수신료 인상안 문제를 놓고 당내 입지가 ‘흔들’ 했다.

물론 두 가지 사안 모두 원내 현안으로서, 박지원·김진표 전·현직 원내대표의 의견 수렴 과정·오판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터지자 이를 수선·봉합해야 할 책임은 결국 손대표에게 돌아가는 것이었고, 이 과정에서 손대표는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5월 한-EU 자유무역협정 사태 때에는 당내 의견을 듣기 위해 마라톤 의총을 벌였으나 자신의 판단에 따라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의총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지도자라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이를 설득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무조건 ‘다 들어봅시다’라는 태도는 맞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악센트 정치’ 대 ‘기동력’ 대결?

KBS 수신료 인상안 문제에서 손학규 대표는 정동영 최고위원의 ‘순발력’과 비교하면 한참 감이 떨어지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6월22일 김진표 원내대표가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수신료 인상안 6월28일 표결 처리’에 합의했을 때, 손대표는 상황을 보고받는 데 그쳤다. 하지만 정최고위원은 ‘취재’를 통해 당내 부정적 기류를 확인한 뒤 곧바로 긴급최고위원회 소집을 제안했다. 지도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손대표도 최고위 소집에 동의했고, 6월23일 아침 비공개 최고위원회의가 열렸다.

결국 이날 회의 녹취록이 한나라당에 넘어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주당의 오락가락 태도가 도청 사건 파문에 가려지기도 했으나, 손대표의 상황 관리 능력에는 또 하나의 물음표가 붙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최고위원이 손대표의 허약한 지점을 바로 짚고 나서자, 손대표로서는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2007년 대선 경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 주자였던 손대표는 당시 이명박 후보와의 갈등 속에 탈당하고 이후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해 구 여권 내 유력 후보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이후 당내 경선에서는 조직을 총동원한 정최고위원을 당해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2008년 총선  때 손대표는 종로, 정최고위원은 동작 을에서 출마했다. 패배한 두 사람은 여의도를 떠나 춘천과 미국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의 행보에는 차이가 컸다.

정최고위원은 미국에 간 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2009년 4·29 재·보선 고향 출마를 위해 돌아와 당 안팎에서 비판을 받았다. 반면 손대표는 여러 차례 재·보선 출마 권유를 받고도 춘천에 은거하며 때를 기다림으로써 세간의 관심과 기대를 끌었다. 손대표는 지난여름 칩거하던 춘천에서 나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노선·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해질수록, 두 사람이 부딪힐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 같다. 정최고위원은 2009년 4·29 재·보선으로 여의도에 복귀한 뒤 발 빠르게 움직이며 ‘좌(左)클릭’해 갔다. 올 초 소속 상임위원회도 환경노동위원회로 옮길 만큼 노동·복지 분야에 올인하고 있다. 손대표 역시 ‘통합과 혁신’을 외치며 민주당의 정책 노선을 정비하고 있지만 정최고위원과는 결이 다르다.

손대표는 지난 6월 경주에서 열린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에서 “이벤트 정치는 안 하겠다. 기자들이 좋아하는 식의 악센트 정치는 안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정최고위원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상대적으로 ‘기동력’과 함께 ‘악센트 정치’가 강점인 정최고위원과의 충돌은 앞으로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민주희망2012 “우리는 정동영의 계보 조직 아니다”

한나라당이 7·4 전당대회를 통해 세력 구도 재편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민주당 역시 내년 총선·대선을 이끌고 갈 지도부 선출을 앞두고 계파별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민주당 내 계파는 486·재야·친노로 구성된 진보개혁모임과 비주류 모임인 ‘민주희망2012’ 두 가지로 나뉜다. 지난 7월3일 출범식을 가진 민주희망2012는 지난해 7월 창립한 민주희망쇄신연대의 ‘확장형 버전’으로, 1백10여 명의 원 내외 인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이 내년 총선·대선 승리로 가는 길에 워치독·선봉대·전위대가 될 것’을 자임하고 있다.

민주희망2012는 과거 정세균 대표 체제 시절에 정대표의 당 운영 방식에 반발해 생겨난 쇄신 모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동영·천정배·김영진·장세환·문학진·이종걸 의원 등이 참여한 쇄신모임은 “정대표가 민주당을 사당화하고 있다”라며 당권에서 밀려난 인사들을 규합했다. 이후 쇄신연대(2010년 6월), 민주희망쇄신연대(2010년 7월)로 발 빠르게 몸집을 불려갔다. 지난해 10·3 전당대회에서는 자파 소속인 정동영·천정배·박주선·조배숙 네 명을 최고위원에 당선시킴으로써 위력을 과시했다. 민주희망2012는 자신들이 ‘정동영 계파’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문학진 공동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정최고위원도 우리와 함께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정최고위원이 하라는 대로 하는 조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으로서의 선명한 정체성’을 강조하는 만큼 향후 사안마다 손학규 대표와 각을 세울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 3월 출범한 진보개혁모임은 지난 6월30일 회원 4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고 최근 당 개혁특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전당대회·총선 공천 경선 룰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다. 진보개혁모임은 김근태 상임고문·이인영 최고위원 등이 참여한 민주평화연대, 우상호·임종석 전 의원 등이 주축이 된 진보행동, 원혜영 의원·유인태 전 수석 등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이광재 전 지사·백원우 의원 등 일부 친노 그룹 100여 명으로 구성되었다.

상대적으로 손학규 대표·정세균 최고위원과 가까운 인사들이 많아 민주희망2012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우상호 전 의원은 “우리는 국민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하되 당직이든, 공직이든, 동원 경선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되고, 당에 헌신한 당원들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들과 별도의 참여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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