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대반격의 칼 빼드는가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8.1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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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중수부, 정치권에서 ‘특검’ 거론하자 뭍밑 움직임 재개…“새로운 저축은행 관련자들 조사 착수”

▲ 지난 8월10일 부산저축은행 피해자 대책위는 서울로 상경해 이틀 앞으로 다가온 특위의 기간 연장을 주장하며 국회 앞에서 시한부 농성을 벌였다. ⓒ시사저널 유장훈

8월10일 오전 11시께. 서울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출입구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국회의사당 내로 진입하려는 ‘저축은행 비리’ 사태 피해자 수십 명과 이를 봉쇄하려는 경찰들 사이에 격한 몸싸움과 승강이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왜 경찰이 국회에 못 들어가게 막느냐. 비켜라!”라는 피해자들의 강한 울분이 쏟아졌다. 

지난 1월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로 촉발된 저축은행 비리 사태. 검찰이 칼을 빼들고 국회까지 나서서 국정조사를 벌였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채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명예 회복’을 천명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검사 60여 명 등 수사 인력 2백여 명을 투입했다. 하지만 고작 몇몇 ‘피라미급’ 정·관계 인사들이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고, 저축은행이 85억원을 부당 인출했던 사실만 밝혀낸 것이 전부였다. 5개월 넘도록 수사했음에도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들의 불법 대출 △대출금 용처 △비자금 조성 내역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청탁·로비 여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실체에 접근하지 못한 채 무수한 의혹들만 계속 양산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과 검찰 사이에 쓸데없는 공방만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라며 국회가 지난 6월29일 ‘국회 저축은행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띄웠지만, 지난 8월12일 별다른 성과 없이 문을 닫았다. 미진한 검찰 수사의 의혹을 해소해주고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정쟁만 일삼다 시간을 허비했다는 비판 여론이 따갑다. 여야는 국정조사 청문회의 핵심 증인으로 누구를 채택할지를 놓고도 말싸움만 벌이다 말았다. “검찰과 정치권이 ‘할리우드 액션’을 연출했다”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자기 식구들’이 연루된 의혹 사건을 처음부터 제대로 조사할 수 있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정 당국의 한 인사는 지난 7월 중순 기자에게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제대로 된 국정조사가 진행될 리 만무하다”라며 국회 특별위에 대해서 처음부터 냉소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이 인사의 말은 적중한 셈이다. 실제로도 정가에서는 그동안 갖가지 ‘저축은행-정치인 커넥션’이 나돌았다. 부산저축은행이 경기도 시흥시 영각사 납골당 사업을 위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에 불법 대출을 해주는 과정에 고위 관료 출신인 ‘야권의 유력 정치인’이 개입되었다는 얘기가 새롭게 흘러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캄보디아에 조사팀 비밀리 파견

▲ 8월10일 국회 저축은행 국조특위에서 여야 간사인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왼쪽)과 우제창 민주당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 7월 초에는 민주당으로 귀가 솔깃할 만한 ‘대형 제보’도 들어갔다. ‘여권의 거물급 인사’가 부산저축은행이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세운 현지 특수목적법인 관계자들과 가깝게 지냈으며, 캄보디아 현지에서 그들과 골프 회동을 갖기도 했다는 것이다. 수천억 원이 캄보디아 특수목적법인을 통해 증발했다는 의혹이 남아 있는 터라, 제보 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저축은행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야권 입장에서는 여권을 향해 맹공을 퍼부을 수 있는 ‘대형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에 민주당은 캄보디아 현지로 조사팀을 비밀리에 파견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전언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8월10일 기자를 만나 “‘여권 거물급 인사’와 특수목적법인 관계자들의 골프 회동 여부 등을 캄보디아 현지에서 탐문했으나, 현지에 있는 주재원 등이 조사팀에 제대로 협조해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거물급 인사’와 관련된 일이다 보니 모두들 입조심하면서 몸을 사리는 것 같았다”라고 현지 조사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파행의 이유가 어찌 되었든, 국정조사가 막을 내리면서 ‘특별검사제 도입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검찰과 정치권이 하지 못한다면 특검이라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 특검의 경우, 야권이 강하게 들고 일어나면 여권에서 김을 빼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오히려 특검에 대한 여권의 의지가 강해 보인다. 저축은행 비리 사태는 지난 10년 정부와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8월 초 검찰 수사의 부실함을 지적하면서 “특검이든 뭐든 하지 못할 게 뭐냐”라고 질책했다. 국정조사특위 위원장이었던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도 특검의 불가피성을 언급한 바 있다.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의 대표 발의로 ‘부산저축은행 등 비리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도 이미 제출된 상태이다.

민주당은 당초 국정조사 활동 기간을 연장하려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반대로 좌절되면서 ‘특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국 ‘저축은행 특검’으로 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물론 검찰은 반발하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걸핏하면 ‘특검’을 운운하는데 ‘옷 로비 특검’부터 지금까지 아홉 차례 특검이 있었다. 하지만 특검을 통해 제대로 된 수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8월12일 취임한 한상대 검찰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저축은행 특검’과 관련해 “(특검은) 입법부에서 결정할 사안이지만, 검찰에서는 특검 도입이 필요치 않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라며 특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회의론이 제기된다. 국정조사특위 소속이었던 박선숙 민주당 의원은 8월11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정조사 청문회도 여야 간 증인 채택 문제로 열지 못했다. 따라서 특검의 수사 대상과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할 것이냐를 놓고도 여야 간 합의가 쉽게 도출되지 않을 것 같다”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설령 특검이 도입된다 해도 수사가 그리 녹록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저축은행의 핵심 로비스트였던 박태규(부산저축은행)·이철수(삼화저축은행) 씨 등이 이미 해외로 도주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박태규씨가 잡히지 않으면 구명 로비의 전모를 밝혀내기가 어렵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런데 검찰 내 분위기가 8월로 접어들면서 예사롭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정조사 기간 동안 냉소적 시선으로 정치권을 바라보면서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던 대검 중수부가 다시 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중수부 내부 동향에 밝은 한 인사는 8월10일 “이대통령이 검찰의 부실 수사를 질책하면서, 특검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이후 중수부가 무언가 작품을 만들려 하고 있다. 그동안 수사하면서 한 번도 접촉하지 않았던 저축은행 사태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 대한 검찰의 역공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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