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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시작해 흙으로 돌아가는 세계관 투영”

가나아트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 여는 임옥상 화백 / “흙의 변용이 물·불·철·살로 서로서로 영향 줘”

김진령 ㅣ jy@sisapress.com | 승인 2011.08.23(Tue) 16: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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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박은숙

 1970년대 말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임옥상 화백(61)은 20세기에는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유명했다. 푸른 논밭 사이로 붉은 속살을 드러낸 채 파헤쳐진 땅을 그린 그림으로 상징되는 ‘화가 임옥상’은 20세기 한국 민중미술의 아이콘 중 하나였다. 21세기 들어와서 첫 10년 동안 그는 매향리에서 수거한 탄피로 ‘철기 시대’ 시리즈를 만드는 등 사회적인 맥락의 발언도 여전하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고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에 설치된 <하늘을 담는 그릇>,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있는 박석 묘역의 골목길처럼 뻗어나간 디자인을 만들었다. 작품의 톤이 한결 너그러워지고 삶의 여러 모습을 껴안고 좀 더 많은 대중이 그의 작품을 체험할 수 있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가 2003년 이후 오랜만에 개인전 <임옥상의 토탈 아트, 마스터피스: 물, 불, 철, 살, 흙>을 연다. 오는 8월26일부터 9월18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의 4개 전시관을 털어서 하는 대규모의 전시로 규모가 큰 작품이 많이 나온다. 공기정화기 업체인 벤타코리아와 협업하는 <에코 미르>라는 작품은 높이가 3m 가까이 되는 대형 작품이다. 그가 2003년 이후 야심차게 재도전하는 흙 시리즈는 작은 방 하나만 한 크기이다. 개인전 막바지 준비가 한참인 일산의 ‘철 스튜디오’와 ‘흙 스튜디오’로 그를 찾아갔다.

이번 전시에 대해 그는 “흙의 변용이 물·불·철·살이다. 서로서로 영향을 준다. 관계론적인 세계관을 많이 반영했다. 이번 전시도 흙에서 시작해서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그것을 읽어주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일산스튜디오에서 마주친 것은 이동 가능한 ‘흙 담벼락’이었다. 지푸라기와 버무린 흙을 세 겹으로 이겨 바르고 그 위를 끌개로 파내 형상을 새기고 그림을 그렸다. 그가 흙에 집중한 것은 화가 초년생 때부터였다. “자본주의에서 땅의 문제, 분단 국가에서 땅의 문제 등 땅은 사회적인 요소가 강하다. 땅 부자는 있지만 흙 부자는 없다. 작가라는 것은 질료를 통해 생각을 표현한다. 땅을 표현하기 위해 물감으로 땅을 그렸다. 서양식 물감은 미끄덩거리기만 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땅을 제대로 표현할까 생각하다 흙을 가지고 작업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흙 자체로는 전시를 할 수 없었다. 가장 흙에 가까운 유기적인 재료인 쇠는 무겁고. 그러다 전주 한지를 만났다. 흙과 성질이 비슷한 한지로 흙을 번안하는 작업은 좋았지만 역시 질감의 차이가 났다. 그렇다고 논밭의 흙을 전시장으로 끌고 들어갈 방법도 없었다.”

흙의 질감과 미감을 미술 전시장으로 그대로 끌어들이기 위한 30여 년의 고민 끝에 그는 이번 전시에서 ‘생흙’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생흙을 다지고 표면에만 식물 성분의 코팅제를 바르는 방법으로 변하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는 흙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장에 흙덩어리를 끌어들이는 것은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가공되거나 변형된 흙이 아니라 순수한 흙의 원형을 전시장으로 가져간다. 흙에 대해 잠깐만이라도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이다. 앞으로 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엄청나게 많다. 그 일부를 이번에 보여주는 것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로 덥썩 껴안고 쉬기도 할 수 있는 공공미술 추구”

   
▲ 개인전에 출품한 이동 가능한 ‘흙 담벼락’.
ⓒ시사저널자료

애초에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사회적인 발언을 담은 작품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그의 작품 인생이 부유한 콜렉터의 수집 표적이 된 것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이다. 이에 대해 그는 “그림으로 먹고사는 것은 숭고한데, 먹고살려고 보면 상업적인 것과 맞물린다. 결국은 내 작품을 부자가 사는 모순이 생긴다. (내 작품이) 이상한 역할로 둔갑할 가능성도 많고. 그럼에도 도로(徒勞)와 같은 일을 우리가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것을 흘러넘치게 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 예술가의 운명이다”라고 밝혔다.

그의 작품 톤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까.

“내가 작품 활동을 시작할 때는 박정희 독재가 극에 달했을 때이다. 그 가위눌림 속에서 젊음을 보낸 것이 억울하다. 그런 트라우마를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내 작품의 첫 과제였다. 1991년 호암갤러리에서 초대전을 하는데 김지하 시인이 와서 나를 재발견하더라. 그림을 보고 나서 김시인이 ‘집안에 무기(巫氣) 있는 사람이 있느냐’ ‘정신병을 앓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을 했다. 먼 친척 쪽에도 정신병자가 없다고 했더니 갑자기 김시인이 머리통을 치면서 ‘이 자식 정말 웃기는 놈이네’ 하더라. 내가 신기나 내면의 큰 상처가 있는 작가로 보였던 듯싶다. 지나고 보니까 내 젊은 시절이 가위눌린 시절이었다. 법대나 문리대는 데모도 하고 그렇게 푸는데 미대(서울대)는 그런 것이 없었다. 울분은 울분대로 쌓이고 창피하고 콤플렉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누른 것 같다. 그게 작업을 하면서 터져나왔다. 억압에 대한 자유 정신의 분출이었다. 그것이 측은지심이 발달한 사람이 갖고 있는 하나의 특권이다. 연민이 없는 사람은 군부 독재든 뭐든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에는 무관심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나 지식인은 그런 것을 못 참는다. 민주화 이후로는 관심사가 좀 더 넓어졌다. 공공미술을 하면서 대중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대화하는 것처럼 ‘익스큐즈 미’를 연발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최첨단 기술과 비싼 재료로 만든 권위적인 작품이 아니라 눈에 흔히 보이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로 눈을 맞추면서 만들어 ‘손대지 마시오’가 아니라 덥썩 껴안고 기대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소소한 재미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을 그는 공공미술로 보고 있었다.

   
▲ <벤타 에코미르>
ⓒ벤타코리아 제공

그가 이번 전시에 대형 여의주(사실은 가습기!)를 물고 있는 <벤타 에코 미르>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용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공기청정기로 유명한 벤타의 수입원인 벤타코리아가 후원했다. 벤타측에서는 그동안 애프터서비스 등으로 바꿔준 폐제품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임화백이 폐자재를 이용한 경쾌한 친환경 설치 작품을 만든 것이다. 벤타코리아는 그동안 해외 유명 아티스트의 방한이나 가나아트갤러리 등과의 협업을 통해 메세나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임화백은 “폐자재를 활용한 협업 작업이 즐거웠다. 전시장에서는 <에코 미르>에 플러그를 연결하면 하얀 김이 올라오는 가습기 노릇도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중과 같이하는 공공미술도 좋지만 나 혼자 정면으로 부딪쳐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동안 쌓였던 그런 욕구를 이번 전시에 대규모로 선보인다”라고 이번 전시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토탈 아트’라는 말이 붙는다. 전방위 예술이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이 말은 그가 평면과 설치, 조각 작업 등 거의 모든 미술 장르에서 다작을 쏟아낸 예술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나보고 하나만 하라고 하는데 나는 태어날 수만 있다면 곤충처럼 태어나고 싶다. 탈바꿈을 하며 살고 싶다.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은 지겹다. 최소한 내가 하는 작업만이라도 연연하지 않고 새롭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임옥상은 흙의 화가이다. 나는 결국은 흙으로 마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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