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넘어 파도’ 험난한 항해 끝이 없다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1.08.2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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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 / 정리해고 사태뿐 아니라 벌이는 일마다 법적 공방 벌어져
▲ 지난 8월18일 열린 한진중공업 청문회에 출석한 조남호 회장은 “책임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리해고 철회와 관련해서는 대답을 피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 8월18일 국회에서는 한진중공업 청문회가 열렸다. 여야 의원들은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60·한진중공업 대표이사)의 부도덕성을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조회장은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다. 책임을 느끼고 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청문회는 말 그대로 청문회일 뿐이었다. 핵심 쟁점이었던 ‘정리해고 철회’와 관련해 조회장은 즉답을 피했다.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느냐’라는 정동영 의원의 질문에 “소통을 더 해보겠다. 노력을 더 하겠다.  

일단 남아 있는 1천4백여 명의 임직원, 협력업체가 조속히 회생이 된 다음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청문회 도중 긴 한숨을 쉬기도 했다. 거기까지였다. 해외 도피 의혹 등으로 두 번의 출석 요구 불응 끝에 어렵게 열린 청문회였다. 조회장은 “본의 아니게 심려와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라는 말을 남긴 채 청문회장을 떠났다.

지주회사 전환하며 흔들…시세 차익 노린 혐의 받아

8개월을 훌쩍 넘긴 최근의 정리해고 사태 이전에도 한진중공업은 삐걱거리고 있었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내부자 거래 의혹에 진땀을 뺐고, 조회장 가족의 주식 취득에 대해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노사 갈등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진중공업(구 대한조선공사)은 지난 1937년 국내 최초의 철강 조선소인 조선중공업으로 출발하며 순항하는 듯했지만 잦은 암초는 조회장의 발목을 계속해서 붙잡았다.

조남호 회장은 다른 형제들과는 다르게 국내파로 통한다.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해외 근무 경험은 풍부하다. 조회장은 지난 1971년에 입사해 네덜란드와 중동,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근무하며 해외 건설 사업의 개척자 역할을 담당했다. 조회장의 형이자 고 조중훈 회장의 장남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동생 조남호 회장에 대해 “둘째(조남호)는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데다 성격도 걸걸해서 건설, 중공업에 적당하다고 (선친이) 판단하셨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2005년 10월 당시 조남호 회장은 한진그룹에서 분리된 한진중공업그룹을 이끌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한진중공업그룹은 한진중공업을 비롯해 한국종합기술, 한일레저, 한진도시가스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조남호 회장은 한진중공업그룹 경영의 전면에 서 있었다. 그리고 2년여가 흘러 2007년 5월, 한진중공업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다시 한번 체제 변신에 나섰다. 회사는 지주회사 격인 ㈜한진중공업홀딩스와 자회사인 ㈜한진중공업으로 분할되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사세 불리기의 신호탄이라고 해석했다.

문제는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뒤 불거졌다. 서울중앙지검은 조남호 회장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자사 주를 산 혐의를 포착해 수사에 들어갔다. 조회장이 한진중공업이 지주회사 체제로 바뀐다는 내용을 사전에 알고, 그해 두 차례에 걸쳐 법인과 개인 명의로 자사 주 100만주가량을 매입한 혐의였다. 당시 한진중공업측은 조회장의 주식 불공정 거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자회사로 바뀌고 관련 주가가 두 배 이상 급등해 조회장이 4백억원 상당의 평가 차익을 거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한진 베르시움 문제도 여전히 진행 중 

▲ 서울 신문로에 있는 ‘한진 베르시움’. ⓒ시사저널 임준선

최근 법원의 판결을 받으며 일단락되는 듯이 보였지만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한진 베르시움’ 문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진중공업은 청문회까지 열게 한 정리해고 사태의 이유로 경영상의 위기를 든 바 있다. 지난해 5백17억원의 단기순손실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조선 사업 부문 물량이 감소해 매출이 떨어졌고, 서울 신문로 베르시움 사업과 관련한 소송 패소로 일회성 비용이 발생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여기서 언급된 ‘베르시움’이 문제의 골자이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2002년 8월 시행사 ㈜보스코산업과 자금 대여사 삼성생명보험, 신탁 사무 및 대리사무 수임자 ㈜생보부동산신탁 등과 광화문 신문로에 ‘한진 베르시움’이라는 명칭으로 개발 사업 약정을 체결했다. 한진 베르시움은 지하 7층, 지상 18층 규모의 호텔식 오피스텔 건물로 금호그룹의 신사옥과 흥국생명 빌딩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은 한진중공업이 손을 대기 전 이미 ‘문화타워’ ‘킹덤타워’라는 이름으로 분양을 했다가 몇 차례 부도를 겪은 상태였다. 당시 시행사는 ㈜거삼, 시공사는 ㈜기산·㈜화남건설 등이었다. 한진중공업이 계약을 체결한 시행사 ㈜보스코산업의 전신이 바로 ㈜거삼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수분양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했다. 더욱이 보스코산업의 대표이자 거삼의 대표이기도 한 최 아무개씨가 베르시움 수분양자들로부터 모은 자금을 다른 지구 개발 사업에 사용하거나 개인 용도로 사용한 의혹을 사면서 피해 사례는 늘어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진중공업이 시공사로 참여하고 나서도 이어졌다. 보스코산업 최대표는 분양을 받기 이전에 관리 처분 계획 변경 인가 및 건축 설계 변경 허가를 받지 않고 ‘한진 베르시움’ 분양 광고를 내기 시작했다. 한진중공업이 참여하고 난 지 두 달여가 지난 2002년 10월이었다. 종로구청으로부터 ‘분양 및 광고 중지’ 명령을 한 차례 받았지만 시행사와 시공사, 자금 관리사가 함께 분양 광고를 이어갔다. 

2003년 6월 계속된 분양 광고와 관련해 도시개발법 위반으로 고발당하고 분양 행위 중지 명령을 받으면서 무리한 광고는 중단되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시행사 대표인 최씨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사업 진행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베르시움은 공정률 70% 수준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자금 대여사인 삼성생명은 손실의 책임을 한진중공업에 돌렸다. 이미 2006년부터 법적 다툼이 시작되었고, 5년간의 법적 공방 끝에 한진중공업은 패소 판결을 받았다. 법원이 한진중공업에 시행 사업을 대신 진행하지 않은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피해 수분양자들과 한진중공업 사이에 또다시 법적 공방이 시작되고 있다.

지난 5월25일 피해 수분양자 20여 명은 조남호 회장 등을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전체 피해자는 2백20여 명, 피해액만 6백40억원에 달한다.

변호를 맡은 정인봉 변호사는 “종로구청에서 한진중공업을 특정해 공사도 분양도 중단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지만, 한진은 이행하지 않았다. 현재 공소 시효 문제로 법리 다툼이 있지만 피해 보상이나 제반 대책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조남호 회장에게도 책임을 물으려 한다”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서부터 한진 베르시움 문제까지 조남호 회장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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