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게 만들어 설득시키는, 힘들지만 가장 쉬운 방법
  •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8.3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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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득과 상반되는 주장이나 행동 펼칠 때 감동 불러

▲ 주주 총회에 참석한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가운데). ⓒAP연합

‘2008 KBS 신인 연기자 선발대회’에는 연기자를 꿈꾸는 젊은이 3천4백69명이 응시했다. 그중에서 1차 서류 심사, 2차 면접과 연기 테스트, 3차 카메라 테스트를 통과한 21명이 최종적으로 연기자로 선발되었다. 1백75 대 1이라는 경쟁률이 말해주듯이, 연기자는 우리 사회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 된 지 오래다. KBS에서 5년 만에 처음으로 선발대회를 통해서 신인 연기자를 뽑았다는 것도 화제였지만, 이 대회에서 가장 크게 이목을 끌었던 사람은 바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중견 연기자 김성환씨였다.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 자격으로 심사위원장이 된 그의 아들이 이 선발대회에 응시했던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중에서 관련 기사를 보지 못하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과연 지금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이런 상황(부모는 뽑는 위치에 있고, 자식은 응시자)에서 우리나라 뉴스에 가장 쉽게 등장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조금 더 심해지면 ‘아버지가 힘을 써서’, 최악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돈과 권력을 동원해서’ 아들이 합격했고, 그 덕분에 순진하게 실력만 갈고 닦았던 다른 응시자들은 들러리가 되었다는 내용으로 구성될 것이다.

메시지 전달자의 신뢰성을 키우려면…

하지만 김성환씨는 이런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의 아들은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다가 연기자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귀국해서 서울예대를 졸업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를 이어서 연기자가 되기 위해 준비해온 아들을 김성환씨는 1차 심사에서 바로 탈락시켜버렸다. 그는 “아들이 물론 실망도 컸을 것이고 기가 죽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실력이 없으면 그 누구라도 안 되는 것이고 어려운 직업인 만큼 더 많은 훈련을 거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더 쉽게 설득당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타인의 태도를 변화시키거나 설득시키기 위한 첫 단계는 메시지 전달자의 신뢰성을 키우는 것이다.

신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쓸 수 있는 가장 쉬운, 하지만 가장 강력한 방법은 바로 자신의 이득과는 상반되는 주장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고, 자신에게 손해가 될 만한 말이나 행동은 억제하는 경향이 강하다. 더 나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나 또는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이나 부정한 행동도 쉽게 저지른다. 따라서 누군가가 자신의 이득과는 상반되는 주장이나 행동을 했을 경우에 사람들은 이것이 그의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이 사람의 주장이나 행동을 더 신뢰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월스터(Walster) 등의 연구에서는 실험 참여자들에게 ‘나폴리의 어깨’로 불리는 ‘조’(Joe ‘The shoulder Napolitano’)라는 마피아 행동대원이 조직 폭력에 대한 범죄 혐의로 수감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고 난 후에 조가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여주고, 사람들이 조가 어떤 주장을 폈을 때 그의 말을 더 신뢰하고 그의 주장에 의해 더 쉽게 설득당하는지 알아보았다.

조는 실험 조건에 따라 두 가지 다른 주장을 펼쳤다. 한 조건에서 그는 조직폭력범에 대한 형사 처벌이 지금보다 더 강화되어야 하고 형량도 더 강하게 부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조의 주장이 법정에서 받아들여지면 그는 더 큰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조는 자신의 이득과는 상반되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다른 조건에서 조는 조직 범죄가 다른 범죄에 비해 더 심하게 처벌받고 있기 때문에 불공평하고, 그래서 조직 범죄에 대한 처벌은 현재보다 더 관대해져야 하며 형량도 지금보다는 더 가벼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조는 자신에게 이득을 줄 수 있는 주장을 한 것이다.

당신이라면 ‘나폴리의 어깨’가 어떤 주장을 펼쳤을 때, 그의 주장이 더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여길까? 결과에 따르면, 조직 범죄에 대한 처벌이 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조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조가 자신과 관련된 범죄에 대해 더 엄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는 매우 설득력 있는 메시지 전달자로 지각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주장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고, 그가 진심을 담아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가 자신의 이득과는 반대되는 주장을 펼쳤을 때, 그의 주장은 국민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는 청렴하고 강직한 공무원이 동일한 주장을 했을 때만큼이나 설득력이 강했다.

워렌 버핏 등 세금 더 내겠다는 부자들이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이유

흥미로운 것은 ‘나폴리의 어깨’ 조는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법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다. 그는 단지 조직폭력배이다. 하지만 조직폭력배가 하는 말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혐오스럽게 생각하고, 더구나 전문가도 아닌 사람일지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어떤 주장을 펴는 사람을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고,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얼마 전(8월15일) 세계 최대의 부자 중 한 명인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서 부자들의 세금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에 자신은 소득의 17.4%를 세금으로 냈지만, 자기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 20명은 소득의 33~41%를 세금으로 내서 세금 비율이 모두 자신보다 높았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그는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노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보다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고까지 주장했다. 이런 버핏의 생각에 미국 MSNBC 방송이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한 설문에 참여한 5만5천여 명 중 약 95%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버핏의 주장이 있고 난 후(8월24일), 로레알의 상속녀인 릴리안 베탕쿠르를 포함한 프랑스 16개 기업 대표와 투자자들도 세금을 더 내게 해달라고 자국 정부에 요청하고 나섰다. 그들은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낼 수 있도록 특별기부세를 신설해달라고 신문에 기고문을 게재했다. 자신들은 프랑스 사회 시스템과 유럽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계층임을 알고 있다며 정부 부채로 인해 프랑스와 유럽의 운명이 위협받고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단결된 노력을 요구하는 이때, 우리가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자는 자신들이 내는 세금 총액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부자들의 세율을 더 줄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부자들 스스로 자신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그리고 더 내게 해달라고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개인적 이득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편 버핏과 프랑스 부자들에 대한 신뢰도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증세가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더 효과적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에 대한 경제학적 논쟁과는 무관하게, 버핏과 프랑스의 부자들은 이미 신뢰와 존경이라고 하는, 자국민들과 더 나아가, 세계인의 마음을 이미 확실하게 얻은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집단으로 늘 상위에 꼽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과 부자들이다. 신뢰를 얻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득과는 반대되는 주장과 행동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정치인과 부자가 더 많아지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도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도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심리학의 힘 P: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11가지 비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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