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안드로이드에 집중할 때
  • 김인성│IT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08.30 23: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에 따른 국내 IT 업계의 대안 / 적대시하지 말고 협력 관계 잘 다져야

ⓒEPA연합

두 용의자가 따로 갇혀 자백을 강요당한다. 둘 다 자백하면 5년을 살게 되지만 둘 다 거부하면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한 명만 자백하면 그는 석방될 수 있지만 다른 용의자는 10년을 살아야 한다. 당신이 용의자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둘 다 협력을 하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배신이 가져올 위험을 피하려면 결국 배신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경시해온 탓에 뾰족한 수 없어

▲ 삼성이 개발한 모바일 운영 체제 ‘바다’.

신뢰 없는 상대와의 일회성 게임은 끝내 파국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이 게임을 반복해야 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이전에 상대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여부에 따른 평판 시스템이 작동함으로써 선택이 복잡해진다. 이런 경우에 최선의 전략은 무엇일까? 실제 게임 이론가들이 다양한 전략으로 실험한 결과 이른바 ‘팃포탯(Tit for Tat: 눈에는 눈)’ 전략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팃포탯은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1. 먼저 협력하라 2. 배신에는 즉각 보복하라 3. 배신자를 용서하라. 이 전략은 복잡하지 않아 상대가 오판할 위험이 없고 보복 후의 용서로 인해 상대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었다. 연구 결과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도 이와 같은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애플의 하드웨어 수익이 부러웠다거나 안드로이드 점유율이 충분히 높다고 판단한 구글이 본색을 드러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프트웨어를 등한시해온 한국 기업은 이제 글로벌 업체의 하청 기업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업은 소프트웨어 인재를 모으고 있고, 정부에서는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는 오픈소스에 대한 이해력이 없는 자들의 오판일 가능성이 크다.

컴퓨터 분야에서는 오픈소스 문화가 존재한다. 독점 기술로 시장을 지배하고 특허를 무기로 경쟁 업체를 제압하려는 일반적인 기업과는 다른 철학을 가진 집단이다. 그들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소스를 공개한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제작자라도 이를 소유할 수 없다. 개발을 주도할 능력과 함께 참여한 개발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지도력을 검증받아야 관리자가 될 수 있다. 오픈소스에 대한 기여와 헌신도 필요하다. 더구나 한번 오픈된 소스는 영원히 오픈소스로 남는다. 이를 독점 소스로 바꾸려고 시도한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프로젝트에서 배제된다.

오픈소스 문화에서는 주도권을 쥐고 있더라도 다른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개발 방향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 따로 독립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경우 다른 팀이 소스를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누가 얼마나 더 인기 있고 충실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가 하는 것이 경쟁 기준이 된다. 안드로이드의 핵심인 리눅스 커널(운영체제의 핵심 소프트웨어)도 원 리눅스 커널 팀과 다르게 개발되고 있었는데 이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구글은 검색 경쟁력을 위해서 전세계 모든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을 가지려 한다. 이를 위해서 모든 업체와 공생을 추구한다. 필연적으로 개방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구글은 지도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기업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위치 정보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대용량 메일뿐만 아니라 온라인 오피스 프로그램도 무료로 제공하며 이런 소프트웨어를 모아 크롬 OS를 만들고 다시 이것을 하드웨어에 담은 크롬북까지 내놓았다. 구글은 크롬북 하드웨어에서 수익을 일절 얻지 않으며 크롬 OS 또한 오픈소스로 만들어 누구나 쓸 수 있게 공개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또한 마찬가지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달빅이라는 프로그램 운영 환경도 오픈소스화했다. 각종 앱의 소스까지 제공한다. 제조사를 위해 안드로이드 업그레이드도 무료로 해주고 있다. 통신사에게 앱 마켓 운영권을 넘겨주고 아무런 수익도 취하지 않는다. 심지어 구글 검색 창을 내장할 경우 이를 통해 얻은 검색 수익도 나누어준다.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단기간에 주류 스마트폰 운영체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상생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그리고 오라클이 안드로이드 제조사에게 특허 공격을 강화했다. 이들에게 거액의 라이선스를 지불해야 할 처지에 놓인 안드로이드폰 제조사를 지원하기 위해 구글은 캐나다 노텔의 특허를 사려고 했다. 하지만 45억 달러를 배팅한 MS-애플 연합군에게 패한 바 있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가격 1백26억 달러는 노텔 인수 가격에 비해서는 높지만 모토로라의 현금 보유액과 유·무형의 각종 자산을 감안하면 과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인수·합병으로 인해 안드로이드 제조사의 특허 압박이 일거에 해결되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대한 헌신은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에게도 직접적인 혜택을 주고 있다. 모토로라가 앞으로 구글 프리미엄을 누리지 않을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것은 여태까지 MS와 오라클 그리고 애플이 했던 특허 공격에 비해서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구글이 한 해 90억 달러에 이르는 광고 시장을 포기하고 가능성도 적고 적자 상태인 하드웨어 사업에 진출할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구글을 의심할 근거가 없다.

지금 한국에서 나오고 있는 거의 모든 해법은 구글을 적으로 돌리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를 경시해온 국내 기업에게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대안이 없다. 독점 소스를 통해 제조사의 하드웨어 스팩까지 통제하며 라이선스 비용을 철저히 챙겨가는 MS의 윈도우폰을 채택하기도 어렵다. 이미 MS는 노키아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자체 운영체제를 만드는 것도 위험 부담이 크다.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환경에서는 플랫폼 생태계가 중요한데 이것은 업체 혼자 만들 수가 없다. 노키아는 애플에게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밀리자 자체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심비안을 오픈소스로 공개했지만 끝내 생태계 조성에 실패했다. HP 또한 Web OS를 포기한 상태이다. 플랫폼 싸움에서는 다른 업체와 협력하고 개발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상생 정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것은 애초에 우리나라 기업에게는 없는 특성이다. 여기에 국가 주도로 독자 운영체제를 개발하겠다는 것은 희극을 넘은 비극이다. 노키아와 HP조차 실패한 길을 이제야 가겠다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스스로 말살시키겠다는 것과 같다.

구글이 모토로라에 특혜 준다면 ‘독립’ 모색

결국 지금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우선 안드로이드에 집중하는 것이다. 안드로이드 생태계는, 누가 얼마나 많은 헌신을 했고 얼마나 기술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주도권이 결정되는 곳이다. HTC는 이미 발 빠르게 안드로이드에 전념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우리 정부가 진정으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경쟁력을 기르고 싶다면 학교와 중소기업이 안드로이드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은 MS의 윈도우폰과 같은 독점 소스로 넘어가거나 가망 없는 자체 운영체제 개발보다는 안드로이드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기업과 정부 그리고 학계가 노력해 우리나라가 안드로이드 기술 종주국이 될 수 있다면, 만에 하나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독점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더라도 이를 저지할 수 있다. 만약 구글이 모토로라에 특혜를 준다면 오픈소스인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 합법적으로 구글을 배제하고 나머지 기업이 연합해 독자 운영체제로 독립할 수도 있다.

지금은 안드로이드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구글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는 철저히 그 기업의 여태까지의 행적, 즉 평판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 결코 우리가 먼저 배신해서는 안 된다. 안드로이드에 몸담은 업체는 먼저 배신하는 자가 도태되는 신뢰성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