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 사람이 대선에 뛰어들까요?”
  • 김진명│소설가 ()
  • 승인 2011.09.0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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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소설가의 팩션 ‘격동의 2012년과 한국의 대선 정국’

 

2012년을 앞두고 한반도는 격동의 중심에 서 있다. 동북아 정세가 요동칠 전망이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대선이 있고, 중국에는 ‘시진핑 체제’가 들어선다. 북한은 강성대국을 선언하고 있다. 인기 소설가 김진명씨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시사저널> 추석 특집호에도 ‘격동의 2012년과 한국의 대선 정국’이라는 주제로 ‘팩션’을 보내왔다.


팩션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을 주된 소재로 하고 여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장르를 말한다. 김진명씨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반도> <고구려>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내며 국내에서 팩션의 일인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글에는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내용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했음을 밝혀둔다.

 

 

2012년 새해를 한 달 정도 남겨둔 2011년 12월 초. 중국이 사상 최초로 보유한 항공모함 ‘스랑’이 모항을 벗어나 공해상으로 진입했을 때, 괌의 앤더슨 미군 기지에서는 순항 미사일  토마호크를 날렸다. 그날 밤 중국의 지도자들은 인민대회당 회의실에 모였다. 이제 곧 후진타오 주석의 뒤를 잇게 되어 있는 새로운 최고 지도자 시진핑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 

 

“여러분, 10년만 참읍시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경제뿐 아니라 군사에서도 미국을 따라잡을 거요. 그때까지는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상책이오.”

 

시진핑과 같이 중국 경제를 이끌어가게 될 리커창이 말을 이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중국에는 흑자가, 미국에는 적자가 쌓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군사력은 우리의 다섯 배 정도 됩니다. 그들은 군사력을 동원해서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 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초스피드로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지만, 그때까지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중국 지도자들의 관점은 확고했다.

워싱턴. 포토맥 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층 빌딩의 넓은 테라스에 앉은 공화당 진영 선거의 귀재 존 로브는 흐르는 강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옆 자리의 스텐포드 의원을 향해 낮게 속삭였다.

 

“자네, 케네디 암살의 트릭이 뭔지 아나?”

“글쎄.”

“가짜를 죽여 진짜로 만들어버린 거야.”

“설명을 해주게.”

“사건과 아무 상관도 없는 오스왈드를 경찰이 체포하게 해놓고 킬러가 백주에 경찰서를 찾아가 오스왈드를 죽였으니 천하가 모두 오스왈드를 범인으로 알 수밖에 없지 않겠나. 생각할수록 교묘한 트릭이란 말일세.”

“그런데 갑자기 웬 케네디 암살이야? 자네 혹시 누군가 대통령을 암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오바마가 재집권한다면 암살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

너무나 뜻밖의 얘기에 스텐포드 의원은 흠칫 놀랐다.

“누가, 왜, 그를 죽인단 얘긴가?”

“오바마는 엄청난 규모의 군사비 삭감을 추진하고 있어. 바보 같은 짓이지. 경제에 이어 군사까지 중국에 밀리게 되면 명실공히 미국은 이류 국가가 되는 거야. 그럴 바에야 미국은 중국과 전쟁을 하는 것이 나아. 순식간에 중국을 초토화시켜 항복하게 만들고 전쟁 배상금을 물려 미국의 채무 문제를 해결하는 거야. 놈들의 악랄한 환율 조작을 응징하는 것은 그 길뿐이야.”

“전쟁의 단초는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중국이 잔뜩 몸을 사리는 것을 잘 알지 않나? 설마 환율에서 공격의 명분을 찾자는 것은 아니겠지?”

“전쟁의 명분은 한반도에서 구해야 해. 북한이 있지 않나? 멋모르고 까부는 놈들이지. 적절한 구실을 찾아 북한을 때리면 중국 놈들은 자동 개입이 되니 북한의 대남 도발을 활용할 수 있겠지.”

 

포토맥 강의 물결에 시선을 두고 있는 로브의 관자놀이가 쉴 새 없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 “대통령 선거가 한 가지 색깔로만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맞소. 그런데 그런 인물이 한국에 있겠소? 양심적 우파로 그 어렵디 어려운 창당을 해내고 부산·경남에서 박근혜를 이길 만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

ⓒ일러스트 찬희

 

 

 
서울시장 보궐 선거가 끝난 남한의 정국은 바야흐로 2012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을 장악한 ‘친박’ 진영은 이제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이번 총선은 문자 그대로 대선의 전초전이었고,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총대를 메고 총선을 치러야만 했다. 박근혜는 유승민을 불렀다. 

 

 

“나는 공천에 일절 간여하지 않겠어요.”

 

혼자 총선의 총대를 메고 나서야 하는 사람으로서 공천과 거리를 두겠다는 박근혜의 단호한 의지는 그의 목표가 대권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공천이 계파에 따라 나눠먹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한나라당은 끝이에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간 대표님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공천을 안 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그러면 둘 중 하나가 되는 거예요. ‘친박’ ‘친이’의 나눠먹기가 되어 국민의 심판을 받거나, 친이로부터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가 터져나오는 거예요.”

“그렇군요.”

“철저한 개혁 공천을 하세요.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이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온 국민에게 보여주어야만 해요.”

 

유승민은 자신을 기다리는 수많은 친박계 인사들 앞에서 박근혜의 뜻을 전했다.

 

“(박근혜) 대표님은 이미 친박이냐, 친이냐 하는 작은 우물에서 떠났습니다. 불편부당을 강조하셨고, 대대적 개혁 공천을 요구하셨습니다. 물론 그동안 대표님을 따른 분 중에서도 공천 탈락자가 나올 것입니다. 공천에서 잘 안 된 분은 내각에 들어갈 수도 있고 더 좋은 길이 얼마든지 있을 테니 우리는 자중자애합시다.”

 

정치 감각이 탁월한 박근혜는 강력한 개혁 공천과 특히 젊은 층을 영입하는 데에 몰두했다.

 

이미 한나라당 내에 지난 4년 동안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해온 박근혜의 경쟁자는 없었고, 총선이 다가오자 영남은 물론 서울·경기·충청·강원의 의원들, 심지어는 친이의 핵심 멤버들조차 박근혜에게 기대지 않을 수 없었다.

 

“박대표가 몇 번 지원 유세를 해주는가가 그대로 당락입니다.”

 

총선 성공이 그대로 대선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 박근혜는 총선에 혼신의 힘을 쏟을 태세가 되어 있었다.

 

“충청도가 제일 중요해요.”

“충청도민들은 지난번 세종시 일로 대표님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는 부족해요.”

 

박근혜는 그간 줄곧 피하기만 했던 이회창을 만나 한국 사회에서의 이념적 혼돈을 정리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민주당이 민노당 등을 포함하는 야권 대통합으로 나가는 것은 심히 불안한 움직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한국 사회를 완전히 좌경화시키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결코 좌시할 수 없습니다.” 

 

보수 대단결의 기치 아래 두 사람은 실로 오랜만에 손을 잡았다.

 

“이제 생각하니 김지사 생각이 옳았어.”

 

이재오는 오랜만에 김문수를 만났다. 지난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청와대에서는 김문수에게 오세훈 지지를 강력하게 주문했다. 청와대뿐만 아니라 그의 참모들도 한목소리를 냈다. 오세훈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진다면 그의 지지세를 김문수가 바로 흡수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문수는 복지에 구분을 두는 것은 결국 못 가진 사람들에게 불리해진다고 생각해 오세훈을 지지하는 것을 거부했었다. 그는 ‘친서민’ 기조를 잃지 않은 셈이다.

 

“김지사, 박근혜는 이번 총선에서 쓰러질 수 있어.”

 

2010년 지방선거 승리 후 김문수는 급속도로 박근혜와 어깨를 겨눌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경기도민의 선택을 우선시해 일단 도정을 더욱 챙기려 들었고, 이것은 기회를 놓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는 지사의 임무를 수행하며 묵묵히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마도…, 총선 후 정국은 김문수 당신을 불러낼 거야. 실력을 제대로 보일 기회만 주어진다면 아마 자네가 대통령이 될지도….”

“형님, 일단 총선을 한번 지켜보십시다. 그땐 나도 결심을 할 테니….”

 

김문수를 바라보는 이재오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이재오는 기본적으로 혁명가였다. 혁명가는 바늘만 한 틈새에서 세상을 뒤집는다 했던가.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민주당의 대표 주자로 떠오른 손학규는 전당대회를 ‘판세 굳히기’의 결정적 기회로 잡았다.

 

“정세균을 당대표로 밀고 손대표님이 대선 후보로 나선다면 당은 완전히 일치단결하는 것입니다. 야권 대통합의 분위기도 아주 좋습니다. 민노당이 후보를 안 내면, 진보 진영 지지의 3%가 모두 민주당 후보를 밉니다. 그동안 대선이 100만표 내외로 승부가 났으니, 이 3%, 즉 야권 대통합만 이루면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야권 대통합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고 기회는 드디어 손학규의 발 앞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재야에서는 대표님과의 경선을 요구해올 텐데요.”

“그야 당연히 해야지. 경선 없는 승리는 없지 않은가. 민노당이든 재야 대표든 누구하고라도 경선을 해야 진정한 야당 후보가 아니겠나.”

 

사실 민주당에게 야권 후보와의 경선은 반드시 필요했다.

 

“이것 보게. 민주당은 자력으로는 대선에 이길 수 없어. 김대중 대통령은 충청도와 연합해 이겼고,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경남 출신이었기 때문에 대선에서 이긴 것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 충청도는 한나라가 절대 유리해. 박근혜는 세종시를 지지해 충청도민의 지지를 대폭 얻은 데다 이회창과도 연합했어. 부산·경남의 이반이 없으면 민주당은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 문재인은 민주당에게는 필수적인 존재야. 반드시 그와 경선을 해야지.”

“그런데 문재인 이사장의 인기가 만만치 않아서….”

“문재인이 인기가 높을수록 민주당 후보에게는 좋은 일이야.”

 

참모들의 걱정과 달리 손학규는 자신이 있었다. 정치라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또한 손학규였다. 누구보다 정치의 쓴맛, 단맛을 많이 본 손학규는 노무현을 회상하는 책 출간으로 높아진 문재인의 지지도는 거품이 빠지기 마련이라는 것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손학규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민주당의 중진들 또한 이해찬, 문성근, 문재인 등이 몰두하는 야권 대통합은 결국 민주당의 외연을 넓히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떠오르는 대권 주자 문재인에게도 총선은 중요한 고비였다. 아니, 사실 그에게는 대선보다 총선이 더 어려운 숙제였다.

막연한 인기로 지지도를 확보한 그로서는 실제 정치력을 보여야만 했고, 따라서 부산·경남 지역의 총선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내야만 했다. 야권 대통합을 추진하는 기구 ‘통합과 혁신’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문제없습니다. 이 지역이야말로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이 아닙니까? 우리가 대거 여기에 후보를 낸다면 부산·경남 시민들이 외면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 간부가 자신감에 찬 목소리를 토해냈다.

 

“민주당과의 통합을 통해 정권을 인수하려 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민주당 출신들도 후보로 나서도록 합시다.”

 

또 다른 한 간부 역시 야권 대통합의 기염을 토해냈다.

 

하지만 이해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중 아무도 문재인 이사장에게 도움이 될 사람은 없어요. 아마 우리 중에는 내가 지명도가 제일 높을 텐데 나도 이 지역에 출마하면 떨어질 거요. 여기는 기본적으로 경상도요. 한나라당이 아무리 싫어도 민주당이나 전라도는 더 싫다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소. 노대통령의 유산만으로 총선에 이기겠다는 것은 무리요.”

 

문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찬은 부산·경남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것은 자신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다시 이해찬이 말을 이었다.

 

“총선에서 한나라는 그 어느 지역보다 부산·경남에 전력을 쏟을 것입니다. 박근혜가 피를 토하며 부산시민, 경남도민에게 호소할 테지요. 지난번 세종시로 충청도민을 사로잡았듯 박근혜는 이명박이 막아버린 동남권 신공항을 약속할 테지요. 원칙의 화신으로 자리 잡은 박근혜가 이렇게 달려들면 민심은 크게 달라집니다. 신공항이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는 이명박과 다르다는 점이 부각되고, 표는 한나라로 쏠립니다.”

“음!”

 

비로소 간부들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문재인의 정치적 성공은 ‘통합과 혁신’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다. 문재인의 인기가 가라앉으면 통합은 민주당에 그냥 가져다 바치는 보너스가 될 뿐이었다. 회의는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 “민노당이 후보를 안 내면, 진보 진영 지지의 3%가 모두 민주당 후보를 밉니다. 그동안 대선이 100만표 내외로 승부가 났으니, 이 3%, 즉 야권 대통합만 이루면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일러스트 찬희

 

총선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은 유독 빨랐다. 통합을 위한 모임뿐만 아니라 민주당 역시 문재인의 성공이 필수적이었기에 부산·경남에서 문재인의 승리를 찾기 위한 방법이 수없이 검토되었지만, 시원한 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문불출하던 문재인이 유폐를 풀고 전 언론을 통해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포문은 엉뚱하게도 한나라당이 아니라 북한의 김정일·김정은 부자를 향한 것이었다.

 

“김정일 부자에게 경고한다. 내년은 총선과 대선이 있는 만큼 털끝만 한 도발이 있거나 도발을 획책한다면 우리 국민들은 추호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조차 북한과의 화해와 교류를 당론으로 내놓는 마당에 문재인의 이와 같은 대북 경고는 전혀 뜻밖이었다. 갑자기 소집된 ‘통합과 혁신’ 비상대책회의에서는 성토가 이어졌다.

 

“당신은 그동안 한나라 사람이 되어버렸소?”

 

연신 이어지는 질책과 항의에도 문재인은 잔잔한 웃음만 띠었다. 신중한 이해찬조차 나섰다.

 

“한마디 해주는 게 좋겠어요. 너무나 뜻밖이어서.”

 

문재인은 천천히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표정은 어딘지 상기되어 있었다.

 

“야권 대통합은 꼭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간 이게 너무 닫혀 있다는 생각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한쪽만의 단결은 다른 쪽과의 대립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진정한 통합이란 진보의 통합만이 아니라 보수에게도 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힐난했다.

 

“보수 기득권층 말이요?”

“보수에도 양심적인 인물이 많습니다. 성장에도 전력을 다해 뛰었고 분배에서도 정의를 실현하려는 훌륭한 인물이 많다는 얘깁니다. 이런 양심적 보수는 진보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 인물과 경선을 치른다면 가장 바람직할 테지요. 대선에서도 100퍼센트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소리요?” 

“진보적 인물들로만 부산·경남에서 이기기 어렵다면 그런 인물들만 출마시키는 것은 부산·경남 시민들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정치일 리는 없습니다. 부산·경남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 당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통합입니다. 그래서 나는 부산·경남 출신의 양심적 보수 명망가들로 하여금 창당을 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총선에 승리를 하면 그 대표와 내가 경선을 치를 것입니다.”

“문이사장이 창당을 하는 것이 아니오?”

“나는 곁에서 도울 뿐입니다. 나는 그 당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당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야 다른 색깔을 냅니다.”

“양심적 보수 세력이 창당을 하고 그 대표와 문이사장이 경선을 치른다?”

“그렇습니다. 신당 대표인 그와 야권의 대표인 이 문재인이 경선을 하는 것입니다. 이 경선의 승자가 또다시 민주당 후보와 경선을 한다면 그 경쟁력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한 가지 색깔로만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맞소. 그런데 과연 문이사장이 생각하는 그런 인물이 한국에 있겠소? 양심적 우파로 그 어렵디 어려운 창당을 해내고 부산·경남에서 박근혜를 이길 만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

“한 사람 있습니다. 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들도 다 짐작하실 줄로 압니다.”

 

참석자 중의 누군가가 짐작이 간다는 듯이 말했다.

 

“누군지는 충분히 알겠소만, 과연 그 사람이 정치판에 뛰어들까? 또 만약 그가 문이사장을 앞서버린다면?”

“그렇다면 더 좋은 일입니다. 그는 나보다 더 이 나라를 좋은 모습으로 바꾸어나갈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미래를 줄 수 있습니다. 젊은이의 우상이니까요. 그리고 나는 내가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그 산파역을 훌륭히 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은 채 문재인의 얘기를 한참 듣고 있던 이해찬도 문재인이 말하는 그 인물이 누군지 굳이 말을 안 해도 짐작이 갔다. 그는 현재 전국을 돌며 젊은이들에게 ‘양심적 보수’ 세력의 가능성을 설파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해찬은 그래도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갈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아까 왜 김정일 부자에게 오히려 한나라당보다 더 삼엄한 경고를 했던 거요?”

“나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역대 한국 선거와 북한의 작용을 면밀히 검토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의 알고리즘을 찾아냈어요. 북한은 항상 진보 세력에 불리하게 작용하더군요.”

 

회의 참석자들 중에는 영문을 몰라 하는 사람도 있었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었다.

 

“북한은 상식과는 거꾸로 갑니다.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에 적개심이 있는 북한이 무조건 야권을 도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북한은 내년 틀림없이 한나라에 유리하게 움직입니다. 북한 정권에게는 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내년은 김정일 부자가 강성대국의 완성을 선언한 해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하지요. 인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눈을 딴 데로 돌릴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남한뿐입니다. 야권 대통합이 실현되면 민노당과 연합하게 될 텐데 이때 북한의 도발이 있으면 선거는 해보나마나 한나라로 넘어갑니다. 야권 대통합은 득도 있지만 위험도 있으니만치 항상 북한에 대해 한나라보다 더 강력한 경고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문득 생각이 난 듯 가방에서 잡지를 꺼내 펼쳐들었다. 거기에는 사각턱의 문재인이 특전사의 베레모를 쓰고 동료들과 굳게 어깨를 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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