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문지기가 곳간에 구멍 뚫었다”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
  • 승인 2011.09.2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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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맡은 금융 감독 당국·회계법인·감사·사외이사 있으나마나…저축은행 대란 불씨 키워

▲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9월18일 영업정지 대상 저축은행을 발표한 뒤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올 1월4일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2월17일 부산 및 대전저축은행 영업정지, 8월5일 경은저축은행 영업정지, 9월18일 토마토 등 일곱 개 저축은행 영업정지….

문을 닫는 저축은행들이 줄을 잇고 있다. 올들어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이 벌써 16개이다. 저축은행에 돈을 넣은 서민·중산층은 패닉에 빠졌다. 5천만원 넘게 예치한 사람들은 원금 손실이 불가피하다. 문제가 무엇일까.

금융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지 않았던 탓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 저축은행은 여러 개의 차명 계좌를 이용해 대주주가 운영하는 사업체에 수백억 원대 대출을 해주었다. 물론 불법이다. 다른 저축은행은 한 기업에 대해 여신 한도를 훨씬 초과해 돈을 빌려주었다가 적발되었다. 고객이 맡긴 예·적금을 쌈짓돈처럼 사용하다 검찰에 걸린 저축은행 대주주도 있었다. 이런 불법·탈법이 수년간 이루어졌는데도 영업정지 직전까지 누구 하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 9월22일, 전날 밤부터 밤을 새운 저축은행 예금자들이 오전 7시께부터 나누어준 가지급금 수령 번호표를 받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금감원, 저축은행 부실화의 ‘종범’

금융 감독 당국과 회계법인, 감사, 사외이사 등은 저축은행을 상시 감시하고 대주주를 견제해야 할 주체들이다. 4대 감시자(watchdog)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저축은행 업계가 총체적인 난국에 부닥친 상황이다.

최근까지 예금자 40~50명이 점거 농성을 벌여온 부산저축은행의 사연은 기막히다. 부산저축은행은 2001년부터 부동산 시행 사업을 직접 수행하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은 이 무렵부터 부분·정기 검사를 실시하기 위해 수차례 부산저축은행 사무실에 상주했다. 하지만 그동안 적발한 것이라고는 자산 건전성 부당 분류 등 경미한 사안뿐이었다.

실상은 달랐다. 부산저축은행은 이때부터 대주주가 지배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 불법 대출을 해주었다. 총 5조3천4백억여 원의 대출이 차명을 동원한 불법으로 판명되었다. 금융 당국은 현장 검사를 나가서도 눈을 감고 있었던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1백20개 특수목적법인(SPC)의 대표이사가 모두 명의상 차주에 불과했고 여러 개의 SPC가 동일한 사업장에 투자하기 위해 수천억 원을 대출받았다. 금감원 현장 조사역들이 PF 대출에 대해 제대로 검사했다면 불법 대출의 전모를 일찌감치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영업정지된 일곱 개 저축은행도 다르지 않다. 지난 3년간 부실 경영으로 금융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곳은 단 두 곳에 불과했다. 감독 소홀이 부실 경영의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체 저축은행 중 3년 동안 부실 경영으로 처벌을 받은 경우는 총 28건이었다. 이 중 프라임과 파랑새 저축은행은 이번 영업정지 대상에 포함되었다.

금융 당국은 그동안 저축은행에 대해 각종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2002년 3월까지 ‘상호신용금고’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저축은행은 ‘국민의 정부’ 시절 영세하고 낙후된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신용금고 사장(대표)’은 ‘저축은행장’이 되었다. 이후에는 시중 은행과의 구분이 더욱 모호해졌고, 소비자들에게 저축은행이 우량한 금융기관이라는 오해를 주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당국은 지난 7월로 예정되었던 저축은행에 대한 국제회계기준(IFRS) 적용 역시 5년간 유예해주었다. ‘시장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IFRS 유예를 통해 저축은행에 대한 회계 투명화 기회를 스스로 박탈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저축은행에 ‘바젤 I’을 적용하고 있는 것도 비판의 대상이다. 은행에 대해서는 엄격한 ‘바젤 II’를 적용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산출하고 있어서다.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과감한 수술을 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 (왼쪽 사진)제일저축은행에서 가지급금을 찾으려는 예금자들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우태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 토마토저축은행 앞에서 예금자들이 가지급금 수령 번호표를 받기 위해 몰려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오른쪽 사진)

회계법인들, 엉터리 감사로 부실 부채질

금융계 관계자는 “저축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1년 사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것은 금융 당국이 부실 검사를 일삼아왔다는 방증이다. 당국의 감독 책임을 철저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부실화된 저축은행을 다른 저축은행이 인수하도록 하는 등 임시방편식 대책이 부실을 확대한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선숙 민주당 의원은 “2008년 저축은행 PF 대출 전수 조사 이후 더 이상 선의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국이 구조조정과 더불어 필요한 조치를 했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회계법인은 ‘숫자의 달인’들이다. 저축은행의 재무제표를 완전히 꿰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형 회계법인이더라도 저축은행들의 눈속임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까웠다. 삼일·안진·한영·대주·다인·성도 등 여섯 개 회계법인은 올해 영업정지된 삼화·부산·부산2·중앙부산·대전·전주·보해·도민 등 여덟 개 저축은행에 대한 회계감사에서 대부분 면죄부를 주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들 회계법인은 지난 3년간 24번 감사 의견을 냈다. 이 가운데 22차례나 ‘적정’하다고 평가했다. 국내 4대 대형 회계법인으로 꼽히는 삼일과 안진·한영도 12번의 감사 의견 중 11번이나 ‘적정’ 의견을 냈다. 회계법인은 감사 결과 회계 처리가 적절하다고 평가되면 ‘적정’, 일부 자료가 의심스럽거나 제시가 안 되었을 경우 ‘한정’, 회계 처리에 위배되는 행위를 발견하면 ‘의견 거절’ 의견을 내야 한다.

특히 삼일·한영 회계법인은 2008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영업정지 처분된 대전과 도민 저축은행의 회계 감사를 맡았는데 경영진이 제시한 재무제표에 도장만 찍어준 꼴이었다. 삼일회계법인은 대전저축은행에 대해 2008년 및 2009년 ‘적정’ 의견을 냈고, 지난해에만 ‘의견 거절’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대전저축은행은 2009년부터 자산 건전성을 잘못 분류했다. 부동산 PF를 일반 대출로 둔갑시켰다. 1%대라던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갑자기 마이너스 25.29%로 바뀌었고, 69억원으로 알려졌던 순자산은 마이너스 2천2백63억원으로 다시 집계되었다. 자기자본비율이 8%를 밑돌면 동일 차주에게 80억원 이상 대출을 해줄 수 없다. 또 이 비율이 낮을수록 고액 예금 수신이나 후순위채 발행에 불리하다.

삼일회계법인은 2009년 6월에는 중앙부산저축은행의 회계감사를 맡아 ‘적정’ 의견을 냈다. 하지만 중앙부산저축은행 역시 2009년부터 불법 대출을 개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3%대로 보고되었던 자기자본비율은 마이너스 28.48%로, 순자산은 1백90억원 대신 마이너스 1천1백20억원으로 각각 바뀌었다.

한영회계법인은 지난 3년간 도민저축은행에 대해 ‘적정’ 의견을 냈다. 이 회계법인 역시 저축은행의 간단한 ‘숫자 놀음’을 잡아내지 못했다. 도민저축은행 회장은 6백80억원에 달하는 불법 대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이다.

안진회계법인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보해저축은행의 결산 회계감사를 맡았다. 검찰이 조사한 이후에야 이 회사에 몸담았던 회계사가 대손 충당금을 대폭 줄이고 건전한 자산을 과다 계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해저축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은 마이너스 2.83%에서 마이너스 91.35%로 바뀌었고, 순자산은 마이너스 2백72억원에서 마이너스 4천3백81억원으로 재정산되었다.

검찰은 저축은행 부실 감사 의혹을 사고 있는 다인회계법인과 성도회계법인에 대해 최근 압수수색을 벌였다. 부산저축은행이 3조3백53억원 규모의 분식 회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회계법인들이 자기자본비율을 조작하는 등의 공모를 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두 회계법인은 지난 3년간 부산 및 부산2 저축은행에 대해 ‘적정’ 의견을 냈다. 이에 대해 한 회계법인은 “회계법인 간 수임 경쟁이 빚어지면서 벌어진 촌극이다. 저축은행 경영진이 제시한 자료를 바탕으로 적정 회계 여부를 가려내야 하는 구조여서 부정을 잡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회계법인들은 신뢰가 땅에 떨어지자 이번에는 아예 “저축은행 감사를 맡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저축은행 감사 수수료가 한 해 3천만~5천만원인 데 비해 위험 부담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것이다.

저축은행 경영진을 내부에서 견제해야 하는 사람은 상임감사이다. 하지만 영업정지가 될 때까지 제 역할을 수행한 저축은행 감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문제는 감사들이 대부분 금융 당국 등 전문가 집단 출신이라는 데 있다. 저축은행 재무 구조를 감시하기는커녕 부실을 스스로 방기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저축은행 대주주들은 권력 기관과 감독 기관 출신을 감사로 끌어들여 불법·탈법을 숨기는 방패막이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영업정지 직전까지 그 목적을 ‘달성’했던 셈이다.

구체적으로 프라임저축은행에는 박 아무개 전 금감원 조사1국 실장(1급)이, 제일저축은행에는 김 아무개 전 은행검사1국 팀장(2급)이 감사로 일하고 있다. 토마토와 제일2저축은행 감사는 신 아무개 전 비은행검사1국 수석검사역(3급)과 안 아무개 전 부산지원 수석검사역(3급)이다. 에이스저축은행의 곽 아무개 감사도 금감원 서민금융지원실 수석검사역(3급) 출신이다.

올 상반기에 영업정지된 여덟 개 저축은행 중 네 개, 9월에 영업정지된 일곱 개 중 다섯 개가 금융 당국 출신 감사들로 집계되었다. 올 들어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16곳 가운데 9곳(56.3%)이다. 금감원 출신 저축은행 감사들은 전직을 활용해 후배들에게 로비했다. 해당 저축은행에 대한 검사가 들어올 때마다 적극적인 해명에 나선 것도 감사들이었다.

국회 조사에서도 전체 저축은행의 감사 등 주요 임원 중 금감원 출신은 34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저축은행에 대한 금감원의 감독이 강화될 수 없는 구조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낙하산’ 저축은행 감사와 ‘거수기’ 사외이사

금융계 관계자는 “부실 저축은행들이 대주주 한도를 초과해 대출을 해주는 등 불법을 일삼았는데도 감사가 이를 잡아내지 못했거나 최소한 방기했다. 감사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는 한편 낙하산 감사를 원천 봉쇄하는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금융 당국은 ‘낙하산 감사’를 차단할 시스템을 정비 중이지만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저축은행 내부에서 불법 행위를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은 ‘거수기’에 불과했다. 대주주나 경영진이 추진하는 각종 사업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9월에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일곱 곳 중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대영과 제일, 토마토, 프라임 등 네 곳의 사외이사들이 대표적이었다. 지난해 7월 이후 세 차례 분기 결산 동안 총 59번 이사회에 참석했는데, 모든 안건에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제일저축은행 사외이사 네 명은 올해 초 경영 부실의 원인으로 지목된 저축은행 PF 규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때 PF 대출의 위험성을 간과하지만 않았어도 ‘영업정지 파국’을 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금융계의 관측이다.

프라임저축은행의 사외이사 세 명도 ‘PF 대출 채권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매각 결과 보고’ ‘대출 이자의 감면’ ‘리스크 관리 규정 개정’ 등의 안건에 대해 모두 찬성했다. 임원의 연봉 인상과 우선주 배당 지급, 재무제표 승인, 유상 증자 등 회사 현안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 사외이사는 1년에 불과 10차례 안팎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거마비 명목으로 최고 수천만 원을 챙겼다. 사외이사 1인당 보수는 대영 1천5백만원, 제일 2천9백만원, 토마토 8백51만원,프라임 1천8백만원 등이었다.

사외이사들은 저축은행 대주주가 마음대로 배당을 통해 회사 자금을 빼 나가는 것을 못 본 체했다. 부산·부산2저축은행이 지난 6년간 배당한 금액은 6백40억원에 달했다. 대주주인 경영진이 받은 배당금 수령액은 이 중 51.4%인 3백29억원. 같은 기간 경영진 네 명은 연봉 및 상여금을 합쳐 1백91억원을 받아갔다.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이 승인해주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다.

저축은행 사외이사들이 유명무실화된 가장 큰 이유는 선임 과정의 불투명성 탓이다. 저축은행마다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가 있지만, 대부분 대주주 지인들이 임명되고 있다. 대주주들이 전문성을 갖춘 인사보다 친구나 각계 실력자들을 ‘바람막이’ 목적으로 영입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특히 전직 관료는 부실 저축은행의 단골 사외이사였다. 제일저축은행에서는 국세청 출신 김 아무개씨, 은행감독원 출신 이 아무개씨 등이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이 아무개 전 감사원장은 이 저축은행 사외이사를 지내다 지난 5월 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후 자진 사임했다. 토마토저축은행 사외이사인 조 아무개씨는 재정경제부 출신이다. 프라임저축은행에는 육군본부 장교 출신인 김 아무개씨가 사외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경영진을 돕고, 또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사외이사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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