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비리’ 수사 흐지부지 마라
  •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 승인 2011.10.0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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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대통령 지시 떨어지자 적극적으로 태도 바꿔 ‘눈총’…납득할 성과 보여야 검찰도 살아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거액 수수 의혹에 대해 검찰이 보여준 태도는 우리 검찰이 존재할 이유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시사저널> 특종을 계기로 주요 언론은 SLS그룹 이국철 회장이 신재민 전 차관에게 수십억 원에 달하는 금품을 전달했다고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이회장의 주장은 상당히 구체적인 데다 물증도 있어 일반인이 들어도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신 전 차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실세 차관 중의 한 명이었고, 대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이국철 회장의 주장은 심각한 파장을 초래할 만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이회장은 또 신 전 차관 외에도 이 정권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인사에게 더 많은 돈을 주었다고 밝혔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공은 검찰에 던져진 셈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당연히 수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법인데, 검찰의 반응이 실로 가관이었다. 지난 9월26일 검찰 관계자가 “현재 상태로는 더 수사할 것이 없다. 뭐가 확보되어야 수사할 것이 아니냐”라고 한 것이다.

▲ 9월27일 로비스트 박태규씨로부터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맨 왼쪽). ⓒ연합뉴스
언제까지 정치에 휘둘릴 것인가

이 말을 듣자면, 우리 검찰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코앞에 가져다 주어야 비로소 수사를 하는 기관으로 보인다. 이같은 검찰의 반응은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과거에 비교하면 큰 뇌물을 받아먹고 이권에 개입한 것은 아니다”라며 신 전 차관을 옹호하고 나선 직후에 나온 것이라서, 검찰이 청와대와 호흡을 맞추었다는 의혹을 갖게 된다.

김효재 정무수석은 신재민 전 차관과 마찬가지로 조선일보 출신으로 이명박 정권을 만드는 데 일조한 후에 국회의원을 거쳐서 정무수석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인물이기에, 이 모습을 보면 검찰은 이제 ‘권력의 시녀’ 정도가 아니라 더한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더 재미있는 현상이 바로 그 다음 날에 생겼다. 김효재 정무수석과 검찰 관계자의 위와 같은 발언이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자 이명박 대통령은 “측근 비리, 이대로 갈 수 없다”라면서 “법무부에서 권력형 비리나 가진 사람들의 비리를 신속하고 완벽하게 조사해 달라”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 말이 떨어지자 서울중앙지검장은 “여러 의혹이 제기되는 사안을 눈치 보지 않고 철저하게 수사할 것이다”라며, 전날 있었던 다른 관계자의 발언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  

우리나라에서 범죄 수사권과 기소권은 검찰이 가지고 있다. 검찰의 막강한 권한이 정치적으로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총장은 임기제로 임명하고, 임명할 때 국회에서 청문회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검찰 제도는 역사의 유물이라고 할 정도로 낡아빠진 것이다. 수사권을 검찰에 독점시키고, 기소를 검찰이 재량껏 할 수 있게 한 것이 특히 문제이다. 정치적으로 임명되는 법무부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한해서 특별한 경우에만 수사를 지휘할 수 있는데, 중요한 수사는 사실상 권부(權府)의 지시와 주문에 따라 행해지고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은 이제 보편적 지혜가 되어버렸다. 

이번 사건만 해도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이 측근 비리를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한 데 대해 일반 국민은 차가운 냉소를 보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살아온 사람인데, 그런 대통령의 ‘지시’가 있어야 비로소 수사를 해 보겠다고 나서는 것이 우리 검찰이라면 그런 검찰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오늘날 한국 검찰의 위상은 땅에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땅속 1천m 아래 깊은 나락(奈落)으로 추락해버린 형상이다.

지난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가 여야 합의로 검찰 중수부를 폐지하겠다고 결정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청와대에 대해 고개만 숙이고 있는 줄 알았던 검찰 간부들이 집단적으로 사표를 내는 등 발끈하고 나섰다. 결국 검찰총장이 물러나는 파동으로 이어지더니 중수부 폐지는 없던 것으로 되고 말았다. 사개특위에서 중수부 폐지안을 냈을 때 한 신문이 몇몇 교수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는데, 대다수 교수는 ‘정치 검찰’인 중수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에 필자는 중수부는 국가 보안 사범, 테러 범죄, 공직자 부패를 수사하는 본연의 임무를 하도록 존치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의 지방 분권화가 필요하다

▲ 한상대 검찰총장(가운데)이 지난 9월2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특수부장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검찰이 군대를 연상케 하는 일사불란한 중앙 정부 조직인 것은 그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검찰도 지방화하고, 지방검찰의 수장을 민주적으로 선출하는 것이 올바른 길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검찰을 지방 분권화한다고 해도 중앙에는 반국가 보안 사범, 테러, 공직 부패 같은 중요한 범죄를 다룰 검찰 조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회 사개특위가 중수부 폐지에 합의했다는 소식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현 정권 들어서 중수부의 무리한 수사로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야당이 중수부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당이 거기에 동의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여당은 청와대의 내락(內諾)이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하는데, 그렇다면 청와대가 중수부 폐지에 동의했다는 것이니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믿거나 말거나’ 식의 해석이 가능하지 않은가 한다. 정권 말기가 되면 중수부는 항상 대통령 가족과 측근을 수사해서 정권을 수렁에 빠뜨리곤 했다. 때문에 그런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차에 야당이 중수부를 없애자고 하니까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검찰 간부들이 반기(叛旗)를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중수부 폐지는 하루아침에 백지화되고 말았다는 ‘추론’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도 있었기 때문에 신재민 전 차관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물론 지금부터다. 과연 검찰이 신 전 차관과 다른 관련 인사에 대한 수사를 엄정하게 할 수 있을지, 이국철 회장이 말하는 ‘정권 실세’에 대한 수사가 가능할 것인지 등, 지켜보아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에 대한 수사,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형제에 대한 수사가 모두 임기 말에 있었고, 그것이 정권의 쇠락을 불러왔지만 반면에 검찰의 위상을 높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정권 말기가 되면 청와대는 기운이 빠지고 검찰은 기운이 치솟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정권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다.

중수부 폐지안에서 신 전 차관에 대한 수사에 이르기까지의 논란은 결국 ‘검찰 제도 전면적 개혁’이라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여러 가지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중앙 집중화된 검찰을 지방 분권화하고, 중앙 검찰은 국가 안보 사범과 공직 부패를 다루는 특수한 검찰로 존치시키며 그 독립성을 담보하는 방안이 가장 적절하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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