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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에 빠져버린 ‘불편한 동거’

미국·파키스탄 관계, 빈 라덴 사살 후 불협화음 더 커져…알카에다·탈레반 소탕 작전도 ‘삐걱’

조홍래│편집위원 ㅣ 승인 2011.10.10(Mon) 22: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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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때문에 미국의 고민이 깊어간다. 파키스탄은 2001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이래 테러리스트 소탕 작전에 협조해온 동맹국이다. 미국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지금까지 해마다 평균 100억 달러씩 총 1천2백억 달러를 지원했고 앞으로도 알카에다가 소탕될 때까지 군사·경제 원조를 계속할 예정이다. 전략적 측면에서 보면 미국과 파키스탄은 틀림없는 동맹국이다. 그러나 이 동맹 관계가 최근 삐걱거리고 있다.

양국 관계에 결정적으로 불협화음을 초래한 것은 지난 5월에 있었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이었다. 미국은 네이비실(해군 특공대)을 동원해 파키스탄 군사학교 인근에 숨어 있던 빈 라덴을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작전은 파키스탄 정부에 사전 통고되지 않은 가운데 진행되었다. 파키스탄 정부가 발끈했다. 주권 침해라는 것이다. 미국이 파장을 예상하면서도 파키스탄 정부에 작전 계획을 미리 통보하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빈 라덴은 파키스탄 군 사령부가 있는 아보타바드의 안가에서 사살되었다.

그가 은신한 가옥은 파키스탄 군사학교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빈 라덴은 이곳에서 5년간 은신했다. 파키스탄 정부의 비호나 묵인이 없었다면 빈 라덴의 은신은 애당초 불가능했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게다가 빈 라덴을 비호한 배후에 파키스탄 정보국(ISI; Inter-Service Intelligence)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미국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미국이 빈 라덴 사살 작전을 극비에 붙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이 계획을 사전에 통보했다면 작전은 실패했을 것이라고 미국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 지난 10월4일 파키스탄의 물탄에서 반미 시위대가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을 붙인 허수아비를 앞세우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

파키스탄 보유 핵무기도 미국의 발목 잡아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불신의 뿌리는 사실상 아보타바드 작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선 테러 작전 비용으로 준 돈이 원래 목적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엉뚱한 곳에 유용된다는 의심을 미국은 지울 수 없었다. 거액의 자금이 파키스탄의 숙적인 인도를 견제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의혹도 있었다. 2008년 인도의 뭄바이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 사건의 배후가 파키스탄 정보국이라는 설도 있다.

이 사건으로 1백66명이 죽었다. 또 다른 의혹은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음으로 양으로 돕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추격을 받은 탈레반은 파키스탄으로 도주한다. 이론적으로는 자국 영토로 도주한 탈레반은 파키스탄군이 체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파키스탄군이 자국 내로 숨어든 탈레반을 체포하거나 사살한 예는 단 한 건도 없다. 이 사례로 미루어 탈레반과 파키스탄군은 한통속이라는 인상을 준다. 미국은 거의 그렇게 믿고 있다. 물론 파키스탄은 이를 부인한다. 어쨌든 파키스탄 북부 지역은 탈레반의 은신 천국이 되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파키스탄은 미국에 필수적인 파트너이다.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파키스탄을 은신처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그 첫째 이유이다.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무기가 테러리스트의 수중에 들어가는 일을 막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미국은 이런 목적을 위해 파키스탄을 아낌없이 지원해왔다. 국가 간의 동맹은 절대적인 신뢰를 전제로 한다. 이 신뢰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외교 분석가들은 작금의 양국 관계를 ‘불편한 동거’라고 비유한다. 9월 중순에는 미국을 진짜로 화나게 하는 사건이 터졌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있는 미국 대사관과 나토 본부가 탈레반으로 추정되는 반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탈레반과 종전 협상을 벌인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관리들이 탑승한 헬리콥터도 카불로 귀환하던 중에 반군의 로켓포 공격을 받았다.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을 주도한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라바니는 암살되었다. 아프가니스탄 북부 와르다크의 미군 기지도 반군의 공격을 받았다. 이 일련의 공격은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미국은 이런 공격의 배후를 파키스탄 정보국이라고 지목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언론들은 파키스탄이 동맹인가, 적인가 하는 의문까지 제기했다. 최근 퇴임한 미국의 마이크 멀런 전 합참의장은 상원 군사위 증언에서 이들 사건의 배후에 파키스탄 정보국이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는 파키스탄이 과연 동맹인지 의심스럽다는 말도 했다. 파키스탄은 즉각 반발했으나 미국 조야는 그의 발언에 대체로 동조하는 분위기이다. 국무부 일각에서는 파키스탄과의 단교론까지 나왔다. 리언 파네타 미국 국방장관이 황급히 나서 양국 관계 단절은 없다고 진화할 정도로 양국 간 마찰은 심각하다.  

파키스탄에는 다수의 테러 단체 또는 민병대 그룹이 있다. 이 가운데 미국은 하카니(Haqqani) 조직을 주목한다. 이 조직이 ISI의 지령으로 움직이는 대리전 네트워크라는 것이 미국 정보국의 분석이다. 하카니는 지금까지 빈 라덴을 숨겨주고 탈레반을 비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파키스탄 관계가 여기까지 온 데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과 동맹했으나 그 국민은 그렇지 않았다. 10년에 걸친 테러와의 전쟁에서 파키스탄인 1만명이 죽었다. 이들이 흘린 피는 자연히 반미 감정을 잉태시켰고 이 감정은 알카에다와 탈레반에 대한 동정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파키스탄에 대한 대규모 원조가 이 나라 국민들의 친미 정서를 고무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것은 미국의 오판이었다. 파키스탄 정부는 자국 내 알카에다 조직과 탈레반 도주자들을 소탕하기 위한 미국의 무인폭격기(드로운; drone) 공격을 승인했다.

그러나 무인기는 정확도가 낮아 민간 목표물을 공격함으로써 파키스탄 민간인들을 많이 죽였다.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파키스탄인들은 미국을 저주했다. 여론조사 기구 퓨리서치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파키스탄 국민들은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키스탄인들에게 테러와의 전쟁은 ‘남의 전쟁’일 뿐이다. 자기들의 전쟁이 아닌 타국의 전쟁에 말려든 모호성은 많은 파키스탄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이슬람 과격분자들이 자행하는 자살 폭탄 테러도 원인을 따지고 보면 미국에 대한 저주와 그런 정부에 협력하는 정부에 대한 보복 심리에서 나오고 있다. 무인폭격기 공격으로 어린 딸을 잃은 한 파키스탄 어머니는 “파키스탄 사회 전체가 충격과 혼란에 빠져 있다”라고 말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에 대해 교육을 받은 파키스탄 학생들은 미국 때문에 일어나는 유혈 사태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이다.     

미국의 원조에 기대어 부패한 파키스탄 정부

   
▲ 지난해 6월15일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남부 지역에서 미군이 군사 훈련을 하고 있다.
ⓒThe New York Times

파키스탄과 미국은 파키스탄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모두 증오의 대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반미 감정보다 반정부 감정이 더 깊다. 미국이 제공한 원조가 테러와의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서는 한 푼도 사용되지 않은 것도 반정부 감정을 자극했다. 또한 원조의 상당 부분은 정부 요인들의 사욕을 채우는 데 사용되었다. 그 때문인지 미국이 파키스탄의 부패를 조장한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군부가 지배하는 파키스탄 정부는 민초들의 원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탈레반을 지원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연장시킴으로써 계속해서 미국의 원조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고 전쟁을 끝낼 작정이다. 이 계획은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로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무인폭격기 공격으로 가족을 잃은 어느 파키스탄인의 독백이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 전쟁은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이며 우리 파키스탄 국민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의는 무엇이며 테러는 무엇인가?” 이 독백에는 미국과 오바마의 고민도 일부 묻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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