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4색’ 금융 수장들의 ‘무한 도전’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
  • 승인 2011.10.3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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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성·어윤대·한동우·김승유 회장, 연말 앞두고 현안 처리에 잰걸음…“진짜 대결은 지금부터”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최근 해외 출장길에 나섰다. 시기가 겹쳤지만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어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수행단에 포함되었다. 평소
이대통령의 신임이 돈독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팔성 회장은 스페인, 영국 등지에서 현지 은행들과 잇따라 제휴를 맺었다. 김승유 회장 역시 미국에 갔지만 외환은행 인수를 위한 투자자를 접촉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반면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국내에 머무르면서 유럽발 재정 위기확산에 따른 파장을 예의 주시했다.

이처럼 우리·KB·신한·하나 등 국내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연말을 앞두고 잰걸음을 하고 있다. 산적한 현안을 내년으로 미룰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대부분 새 임기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았다는 점도 이들의 행보를 빠르게 만드는 요인이다. 최고경영자(CEO)들이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경영 색깔을 드러낼 때가 되었다는 얘기이다.

글로벌 30위 향해 뛰는 ‘마당발’ 이팔성 회장

1990년대 당시 행장을 포함한 한일은행 임원들은 수시로 ‘이팔성’을 찾았다. 그보다 다방면으로 인맥이 넓은 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회장은 친화력이 대단히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회장은 ‘1등’을 한 경험이 많다. 남대문지점에 근무할 때 전국영업점 중 실적 1위를 기록했고, 영업부장 시절에는 지점 수신액만 1조원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한일은행 역사상 최연소 임원이 되었다. 우리금융그룹을 떠났다가 2008년 6월 회장으로 복귀한 그는 올해 초 3년 임기를 다시 시작했다.

요즘 이회장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지난 7월 세계 순위에서 처음으로 KB금융을 제치고 국내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영국 금융 전문지 <더 뱅커>에 따르면 우리금융의 지난해 말 기준 기본 자본은 세계 72위로, 국내에서 가장 많다. 이회장의 목표는우리금융을 글로벌 30위로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면 돌파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우선 내년 초 우리카드를 분사시켜야 한다. 수평형 조직 체계인 매트릭스도 도입하기로 했다. 비은행 부문을 확대하고 계열사 간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서다. 문제는 우리은행 임원 일부와 노조가 두 사안에 대해 모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은행 임원들은 자산 규모 및 권한 축소를, 노조는 구조조정을 각각 걱정하고 있다. 이회장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 걸림돌이다. 우리금융 회장은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은행장 선임 등 인사권을 100% 행사할 수 없다.

이회장은 우리금융 민영화의 불씨를 살려야 하는 책무도 지고 있다. 민영화야말로 우리금융 임직원들이 10여 년간 품어온 숙원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민영화는 이회장 필생의 숙제이다. 다만 우리금융의 대주주가
정부여서 금융업 외길을 걸어온 이회장이 물밑 작업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고 전했다.

▲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출생 연도│1944년 ·출생지│경남 하동·학력│고려대 법학·주요 경력│한일은행 도쿄지점, 한일은행 영업부장, 우리투자증권 사장,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 ·경영 키워드│친화 ·주요 과제│우리카드 분사 및 우리금융 민영화 ⓒ시사저널 임준선  
▲ 4대 금융지주 회장들어윤대 KB금융 회장 ·출생 연도│1945년·출생지│경남 진해·학력│고려대 경영학, 미시간대 경영학 박사·주요 경력│한국금융학회 및 경영학회 회장, 고려대 총장, 국제금융센터 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경영 키워드│소통·주요 과제│비은행부문 확대 통한 안정적 수익 창출 ⓒ시사저널 박은숙

독선적 이미지 벗으려 대화 나선 어윤대 회장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지난해 7월 취임한 이후 조직 내에서는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각 조직의 임원이 아닌 팀장급들이 회장과 직접 대화할 기회가 많이 생겼다. 어회장이 실무진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해서다. 어회장은 금융지주 수장 가운데 가장 다양한 직업을 거친 사람이다. 고려대 교수와 초대 국제금융센터 소장, 금융통화운영위원,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고려대 총장직을 맡았을 때는 기업들로부터 학교 발전 기금을 4천5백억원 이상 모아 ‘CEO’로 인정받았다.

그가 KB금융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글로벌화였다. 해외를 돌며 기관투자자들과 연쇄 면담을 했고, 대형 은행들과 손을 잡았다. 자신은 세계은행협회(IIF)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어회장에 대한 KB금융 안팎의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하지만 영업과 단기 실적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불만이 일부 제기된다. 계열사 CEO인 민병덕 국민은행장이 체크해야 할 월별 영업 실적까지 직접 챙기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해 말 한꺼번에 3천2백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명예퇴직을 밀어붙일 때에는 독선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요즘 어회장은 어떻게 비은행 부문을 확대하고 생산성을 높일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는 올 상반기에 KB카드 분사를 단행했다. 그런데도 은행의 수익 비중이 전체의 80~90%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어회장은 “2년 후까지 비은행 부문의 수익을 30%선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생명보험사나 저축은행 인수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조직의 효율을 높여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이다.

그는 “인건비 대비 영업이익을 계산했더니 다른 금융지주들보다 훨씬 낮았다. 군살을 더 빼고 생산성과 효율성을 대폭 향상시켜야한다”라고 강조했다.



투명하고 따뜻한 ‘신뢰 경영’ 한동우 회장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에게 최근의 ‘반(反)월가’ 시위는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막 시작한 ‘따뜻한 금융’ 프로젝트가 빛을 잃을까우려되어서다. 하지만 한회장은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변명하지 않고 “금융권 잘못이 크다”라고 시인했다. 또 “사회 공헌을 더욱 강화하겠다”라고 했다. 한회장이 신한금융그룹에 복귀한 것은 올해 초이다. 그는 2009년 5월 신한생명 부회장을 끝으로 그룹을 떠났다. 갑자기 돌아온 것은 ‘신한 사태’ 때문이었다. 그룹의 최고위층이던 라응찬·신상훈·이백순 씨가 동시에 물러나면서, 한회장이 조직을 추스리라는 특명을 받았다.

한회장은 수개월의 장고 끝에 지난 8월 ‘투명 경영’을 골자로 한 지배 구조 개선안을 발표했다. 그룹경영회의를 신설했다. 승계 구도 역시 명확히 했다. 그가 두 번째로 시도한 조직의 변화는 ‘따뜻한 금융’ 프로젝트이다. 한회장은 “후발 주자이던 신한은행이 리스크 관리를 강조해오면서 수익만 앞세우는 은행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이런 인식을 완전히 바꾸기 위해 사람 중심 금융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고객의 이익과 성공을 우선시하고 △일시 어려움에 처한 고객을 도와주며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에게 따뜻함을 전달하고 △녹색 금융과 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는 세부 지침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식 변화는 쉽지 않은 일이다. 브랜드 이미지가 바뀌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신한금융은 올해 금융권에서는 처음으로 순익 3조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또다시 ‘탐욕’ 논란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얘기이다. 내부에서는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를 마무리하면 ‘빅3’ 대열에서 탈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말단 직원의 고향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인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회장은, 새로운 그룹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 4대 금융지주 회장들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출생 연도│1948년 ·출생지│부산 ·학력│서울대 법학 ·주요 경력│한국신탁은행 및 신용보증기금 입사, 신한은행 기획조사부장 및 인사부장, 신한생명 부회장 ·경영 키워드│신뢰·주요 과제│‘따뜻한 금융’ 도입해 브랜드 이미지 제고 ⓒ연합뉴스  
▲ 4대 금융지주 회장들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출생 연도│1943년 ·출생지│충북 청주 ·학력│고려대 경영학,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학 석사 ·주요 경력│한일은행 및 한국투자금융 입사, 고려대 강사, 한국투자금융 부사장, 하나은행장 ·경영 키워드│분석 ·주요 과제│외환은행 인수 등 규모의 경제 확보 ⓒ연합뉴스

외환은행과 합병 ‘마지막 승부’ 김승유 회장

금융계에서 판단력이 가장 빠르고 명석한 인사는 누구일까. 주저 없이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을 꼽는 이가 많다. 김회장은 충청은행과 보람은행, 서울은행 인수·합병(M&A)때 직접 도장을 찍은 사람이다. 지금은 외환은행 인수를 눈앞에 두고 있다. CEO로 있으면서 4개 은행을 M&A하는 것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승부사’이다. 김회장은 한국투자금융 및 후신인 하나은행에서 30여 년간 임원 자리를 지켜왔다. 1997년 2월 하나은행장에 취임해 14년 연속 CEO를 맡고 있다.

그룹의 ‘살아 있는 역사’나 마찬가지다. 김회장은 금융권 최초로 영업점장 공모제를 실시했다. 객장 내에 증권보험 창구를 개설했다. 사업부제와 프라이빗뱅크(PB)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우리금융과 신한금융
이 내년부터 도입할 예정인 매트릭스 체제는 바로 하나금융이 먼저 도입한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특히 다른 기업을 인수해 한꺼번에 덩치를 키우는 김회장의 전략은 적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충청·보람·서울은행 뿐만 아니라 대한투자증권 등 비은행 부문에서도 과감하게 M&A를 단행했다. 판단이 빠르지만 사전에 치밀하게 분석하는 스타일이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간 합병은 김회장이 추진하는 마지막 대형 딜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워낙 많은 자금이 소요되는 데다 복잡한 탓에, 하나금융이 수년 내 다른 M&A에 나설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더라도 두 은행 간 합병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외환은행 노조는 일찌감치 하나은행과의 합병을 전면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이다. 두 은행 점포 중 상당수가 겹쳐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나은행 직원 중 일부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동안 M&A할 때마다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회장이 이번 합병을 얼마나 매끄럽게 매듭지을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은 지금이 무한 경쟁의 시작점이라고 보고 있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마무리되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각 지주 간 덩치 싸움이 재연될 수 있다. 다만 앞으로는 보험·증권·저축은행 등 비은행 부문에서 M&A가 활발해질 것이라는것이 금융계의 관측이다.

전장(戰場)이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시장이 포화되었다는 것이 배경이다. KB금융과 하나금융은 이미 카자흐스탄과 인도네시아 현지 은행을 인수해 경영하고 있다. 우리금융과 신한금융은 미국 및 인도네시아에서 각각 매물을 살펴보고 있다. 우리금융은 캄보디아에서 대형 국책 은행을 설립할 채비도 하고 있다.

다만 진짜 ‘금융 빅뱅’은 우리금융이 민영화될 때일 것 같다. 일부 규제만 풀리면 KB금융이나 신한금융이 우리금융의 정부 지분(57%)을 사겠다며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자산 규모 7백조원이 넘는 초대
형 금융지주가 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우리금융의 민영화 재추진 시기는 2013년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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