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고액 기부자 국가 지원 틀 만든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1.10.31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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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부자 지원법’ 국회에 계류…사후 유족 보조금 지급도 / 소액 기부자 제외 등 싸고 논란…‘자산 연금’ 제도가 대안 될 수도

▲ 가수 김장훈씨(오른쪽)와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지난 3월28일 서울 일원동 강남장애인복지관에서 열린 ‘기부천사의 아름다운 기부금 전달식’을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사회에 막대한 재산을 기부한 ‘고액 기부자’들이 생계에 곤란을 겪거나 송사에 휘말리는 사례가 나타나면서,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월1일 국회에서 발의된 ‘명예기부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은 30억원 이상의 재산을 기부한 사람을 ‘명예기부자’로 인정하고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무엇보다 고액을 기부한 후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보장한 점이 주목된다. 법안에 따르면, 총 재산이 1억원 이하이며 소득이 없는 60세 이상의 명예기부자는 생활 보조금을 지급받는다. 명예기부자는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때나 사후 장례를 지낼 때 전부 또는 일부의 비용을 감면받는 혜택도 누리게 된다. 명예기부자가 죽은 후 생계에 곤란을 겪는 유족 또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법안에서는 30억원 이상을 낸 명예기부자가 아니더라도, 10억원 이상을 기부한 사람 역시 생활 지원금, 의료 지원, 장제비 등에서 나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부 행위 취지 훼손 걱정하는 소리도 나와

그러나 이 법안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우선 고액 기부자만이 혜택을 받는 점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꾸준히 기부 활동을 해 사회에 큰 울림을 준 고(故) 김우수씨(54)의 사례 등을 고려하면, 소액 기부자를 도외시한 채 고액 기부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지적이다. 중국음식점 배달원으로 일하다 지난 9월25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씨는 한 달 수입 70만원을 아껴 매달 다섯 명의 청소년에게 후원금을 보냈다.

기부 행위의 취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의견도 많았다. 기부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의 행위인데, 어떤 대가를 암시하게 된다면 그 순수한 취지가 빛을 바랜다는 주장이다.

기부액을 평가하는 기준이 모호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의 황선미 연구교육국장은 “현금 기부 외에 주식·부동산 기부의 경우 그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현물이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실제로 법안을 적용할 때 이처럼 모호한 기준이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 고액 기부자를 국가가 직접 지원하는 방식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미국·유럽 등 기부 문화가 발달된 곳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기부 방식이 존재하는데, 기부자들은 그중 가장 합리적인 방식을 선택한다. 이를 통해 생계가 곤란해지거나 법정 소송에 휘말리는 등의 어려움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다양한 기부 방식을 국내에 도입함으로써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산 연금’ 제도가 대표적이다. 대학이나 자선 단체, 각종 재단 등에 재산을 맡기면 그 50% 내에서 정액 연금 및 세금 감면 혜택 등을 주는 제도이다. 기부자와 그 가족은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으며, 남은 재산은 재단에 귀속된다. ‘기부자 추천 기금’ 제도 역시 주목받는다. 이 제도는 공적 재단이나 단체에 기부금을 낸 뒤 기부자가 그 운용과 사용에 대해 조언할 수 있도록 약정하는 방식이다. 자신이 기부한 재산이 그릇 사용되는 바람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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