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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큰돈 선뜻 내놓고 잠 못 이루는 사람들

조현주·이규대 기자 ㅣ 승인 2011.10.31(Mon) 0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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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에 처음 기부 문화가 한국 땅에 정착한 이후 지난 10년 동안 기부 규모는 크게 불어났다. 하지만 기부자에 대한 인식이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한 수준에 놓여 있다. 아직까지 기부를 순수하게만 받아들이지 않는 풍토가 있는 데다, 기부자에 대한 사회적 예우 프로그램도 마땅히 없다. 게다가 거액의 기부금을 낸 후 ‘기부 후유증’에 시달리는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 왜일까? 그 실상을 들여다보았다.

   
▲ 고액 기부자 구재서(왼쪽 위 사진), 한수옥(왼쪽 아래 사진), 송금조 회장(오른쪽 사진 앞줄 가운데)
ⓒ연합뉴스

‘국민 여동생’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문근영씨는 ‘기부 천사’로도 각광받고 있다. 가수 김장훈씨 역시 ‘기부왕’으로 불릴 정도로 기부 문화 확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개인 기부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5천억원을 기부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기부’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비단 재벌 회장이나 인기 연예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또한 그다지 여유롭지 못한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기부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해마다 전체 기부금 규모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이 아닌 개인 기부자의 비율도 크게 오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도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고 고액 기부자들의 노후 생계 보장을 위한 법안 제정을 추진하는 등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집까지 찾아와 “우리에게도 기부해달라”

   
▲ 류양선 할머니
ⓒ뉴스뱅크
한국에 기부 문화가 생겨난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기부 규모는 눈에 띄게 불어났지만, 기부자에 대한 인식이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한 수준이다. 아직까지 기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는 이들이 많고, 기부자에 대한 사회적 예우 프로그램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그 때문일까. 수억 원 또는 수백억 원의 기부금을 내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고액 기부자들 가운데에는 ‘기부 후유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기부를 결심하는 과정보다 기부 이후에 겪어야 했던 일들이 더 곤혹스럽다고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기부왕’으로 유명한 류양선 할머니(78)의 경우가 그렇다.

류할머니는 자신의 고향인 충남 서산에 대학교를 지으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류할머니는 이 꿈을 대신해 지난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충남 서산에 있는 한서대학교에 총 2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증하고, 한서대 장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류할머니는 수십억 원에 이르는 기부로 인해 ‘혹독한 유명세’를 치러야만 했다. 집으로 직접 찾아와 “우리에게도 기부를 해달라”라는 식의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아, “한동안 집의 초인종을 없애야 할 정도였다”라고 한다.

지난 2003년 10월 부산대와 3백5억원의 기부 약정을 맺은 ㈜태양 송금조 회장 부부도 류할머니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당시 송회장 부부가 국내 개인 기부액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기부 약정을 맺은 것이 화제가 되어 연일 각종 매체의 인터뷰 요청에 시달려야만 했다. 또 곳곳에서 기부 청탁 요구가 줄을 잇는 통에 견디다 못한 송회장은 병원에서 요양을 하기까지 했다.

송회장 부부가 진짜 ‘기부 후유증’을 앓게 된 때는 지난 2008년부터였다. 송회장 부부는 2008년 7월부터 현재까지 부산대를 상대로 ‘기부금 용도’와 관련해 지루한 소송전을 치르고 있다. 송회장측의 주장에 따르면, 송회장은 부산대에서 양산캠퍼스 부지 매입 대금으로 쓰일 기부금을 요청해왔고 이 취지에 호응해 기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려움 속에도 ‘나눔’ 실천하는 사람 많아

하지만 이제까지 송회장이 기부한 1백95억원 가운데 상당 부분은 양산캠퍼스 부지 매입과는 다른 용도로 쓰였다. 이에 송회장측은 지난 2008년 7월 부산대를 상대로 나머지 1백10억원을 기부할 수 없다는 내용의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부산대측에서는 송회장측이 맺은 기부금 약정서에는 용도가 ‘부산대 캠퍼스 건설 및 연구 발전 기금’으로 적시되어 있다며 송회장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현재 대법원의 최종심이 남아 있는 가운데, 지난 6월 부산고법에서 선고된 2심까지의 결과는 부산대측의 승소였다. <시사저널>은 10월21일 송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경암교육문화재단에 연락을 취해 송회장 부부의 최근 근황을 물었다. 재단측에서는 “현재 대법원으로 상고해 여전히 소송이 진행 중이다. 따라서 소송과 관련해서는 입장을 밝히기 꺼리신다. 아울러 언론과도 일절 접촉하지 않으려 하신다”라고 답했다.

고액 기부자들이 ‘반짝’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후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한국 사회에는 ‘기부 이후’를 돌보아주는 문화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직 역사가 일천한 한국의 기부 문화가 갖는 ‘성장통’이라고 볼 수도 있다. 김민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략모금추진단 팀장은 “사실 아직까지 기부자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기부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특히 고액 기부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데도, 기부 이후에 감내해야 할 부분이 오히려 더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공개적으로 기부하는 문화가 형성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너소사이어티그룹’은 이제 모두 공개 회원인데, 그 가운데에서도 30% 정도의 회원은 여전히 공개에 대해 부정적이다. 여기저기서 추가 기부를 요청하는 경우가 상당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꽤 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고액 기부자 주변에는 고액 자산가 친구가 많다. 그들에게 ‘당신은 왜 기부를 하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대부분 사회적 시선을 두려워한다. 이들에게는 ‘당신의 기부를 통해 기부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전하고 있다. 앞으로 기부 문화가 확산되는 데에는 ‘기부자에 대한 인정’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지난 10월27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리더 나눔클럽’ 회원이 된 서울 강남경찰서 오학래 경위가 용산구 한강로주민센터 앞에서 무료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는 소액 기부자도 많다. 이들은 ‘고액 기부’로 가는 지름길로 꾸준히 ‘소액 기부’를 한다. 최근 서울강남경찰서의 오학래 경위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리더나눔클럽(1천만원 이상 기부자들의 모임)’ 회원이 되었다. 오경위는 매달 소액 기부를 통해 평생 ‘1억원’을 기부하기로 한 약정을 맺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1억원 기부 약정을 맺은 이는 오경위가 처음이다. 

오경위의 삶은 ‘나눔’으로 가득하다. 매달 수입의 40%가량을 꾸준히 기부했다. 봉사 활동 경력은 무려 4만 시간에 달한다. 오학래 경위는 경찰 임관 후 23년 동안 꾸준히 베푸는 삶을 실천했다. 그는 “사실 내 저축은 엄두도 못 낸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후를 걱정해본 적이 없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하루에 세 끼 밥만 먹을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열심히 돈을 절약해 기부와 봉사 활동에 쓴다. 애초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자 했다면, 이 정도까지 기부를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가 기자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보기에는, 기부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람의 비율이 10% 미만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보다 욕심을 비우고 따뜻한 가슴으로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내가 배부른 상태에서 차가운 마음을 가지면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을 보기 힘들다.” 

 

   


 “기부 문화 확산 위해서는 기부 이후에 기부자를 잘 돌보는 것이 중요” 
국내 최초 비영리 단체를 위한 모금 전략 컨설팅회사 ‘도움과 나눔’의 최영우 대표

 
ⓒ시사저널 우태윤
최근 한국의 기부 문화 자체는 활성화되고 있지만 기부자에 대한 예우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보는가?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는 기부자에 대해 이중적 태도가 존재한다. 기부자를 존경하는 한편, 과연 어떤 의도로 기부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것이다. 기부자에 대한 예우가 미흡한 것은 기부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기업 감사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사주가 거액의 기부금을 내놓는 식의 행태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기부한 뒤에 부정적 피드백이 상당하다. 스토커들이 생기고, 울며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보내는 이들에게 시달리거나 온갖 자선 단체에서 추가 기부를 독촉하는 연락이 오기도 한다.

최근 국회에서는 명예기부자에 대한 예우 법안을 마련하려 하는 등 기부 문화에도 일종의 변화가 보이고 있는데.

기부자 예우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인다. 기부자에 대한 예우 측면에서 기부 이후에 기부자를 ‘케어’하는 부분이 상당히 중요하다. 미국만 해도 과거 1990년대 말 해비타트 운동의 측면으로 고령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집을 평생 수리해주는 조건으로 사후에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을 가장 가난한 신혼부부에게 기부하도록 독려하는 활동을 했었다. 이른바 ‘조건부 기여’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그런 면에서 유산 부분과 관련된 ‘계획적 기부자’ 영역이 더 발달해야 한다.

한국이 기부 문화에서 아직 미흡한 부분은 어떤 것이라고 보는가?

기부를 떳떳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고액 기부자의 경우는 크게 근로 소득이 많은 분과 재산 소득이 많은 분으로 나뉜다. 근로 소득이 많은 분들로는 대기업의 임원들을 꼽을 수 있는데 아직 이들의 고액 기부는 미흡하다. 기업의 오너가 먼저 나서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데 한국은 아직 그런 분위기 조성이 덜 되어 있다. 또 재산 소득이 많은 경우는 기부 전후를 세심하게 살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70대 이상의 재산 기부자들의 경우에는 가족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 가족의 동의 없이 전 재산을 기부하는 식의 형태는 기부 후에 가족 관계가 깨지는 경우가 많아 바람직하지 않다. 기부가 가정을 깨는 것 같은 인식을 주어서는 안 된다.

기부 문화가 확산되기 위해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기부는 ‘사회에 대한 투자’이다. 투자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 기부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기부라는 것이 반드시 한꺼번에 거액의 돈을 건네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기부 문화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기부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소액의 기부가 쌓여서 자연스럽게 고액 기부로 이어지는 것이 좋다. 또 기부 지수를 측정하는 부분에서도 보완이 필요하다. 기부 문화가 좀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부자의 행동이 아닌 기부를 촉발시키는 주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가령 대학과 병원, 각종 자선단체들이 들어온 기부금을 가지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조사해서 지수화하면 기부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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