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SNS 효과, 기성 언론이 키웠다
  • 이원재│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
  • 승인 2011.10.31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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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는 ‘사적인 공공장’으로 개인적 교류의 공간일 뿐…매체들의 관심에 의해 증폭·홍보된 경향 커

 

▲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 선거 투표일에 정치인·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투표 인증샷’을 찍어 SNS에 잇따라 올렸다.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 선거 이후로 이제 SNS는 한국 정치에서 정당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언론은 앞다투어 SNS가 투표를 통한 권력 이동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선거 기간 내내 당선자가 보여준 SNS상에서의 우위와, 선거 당일 투표를 독려하는 트윗들이 퇴근길과 같은 특정 시점들에서 봇물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음소프트’의 자료에 따르면 10월26일 박원순 후보와 나경원 후보를 언급한 트윗은 이날 작성된 전체 트윗의 10%와 8%를 점유했으며, 이는 각각 4만, 3만여 건에 이른다. 특히 투표 독려의 키워드였던 ‘인증샷’은 투표 시간 동안 2만여 개의 트윗에서 언급되었다. 

이 숫자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번 선거에서 두 후보 간의 득표 차는 30여 만표였다. ‘박원순’을 언급한 4만의 트윗과 2만의 인증샷 트윗이 30만의 표차를 만들어낸 것일까? 실제로 이날 이 트윗들이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 혹은 ‘투표를 할 것인가’를 두고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결정을 바꾸도록 설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SNS가 선거 결과에 큰 영향 미쳤다?

현재 주어진 자료만 가지고는 ‘그렇다’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이날 하루 트윗의 추이와 서울시장 선거를 언급한 신문 기사량의 추이 사이에 약 60%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다시 말해서 유권자들이 트위터 메시지에 의해 설득을 당했는지, 아니면 비슷한 양의 언론 기사를 보고 투표에 나섰던 것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점은 신문과 같은 기성 미디어가 SNS와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트윗의 효과가 실재하는 것이라면, 이는 기성 언론의 관심에 의해 증폭된 면이 없지 않다. 대안 매체로서 SNS의 등장이 반갑지 않을 기성 언론이 역설적으로 SNS의 효과를 홍보한 것이다.

SNS가 한국 정당 정치의 위기를 불러일으켰다고 하지만, 한국 정당 정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위기였다. 우리가 의회 정치로부터 바라는 핵심적 기능들 중 하나는 다양한 정당이 자신들이 대표하고 있는 다양한 국민들을 대신해 갈등을 조정하고 납득할 만한 합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민은 자기 권리의 일부를 위임하는 대신에 조정과 합의라는 어려운 임무를 의회에 맡겼던 것인데, 대한민국 국회는 꽤 오랜 시간 이 수준에 다다르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한국 정당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이미 팽배한 상태였다. 다만 이것이 조직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대안 정치 세력이 이러한 불만을 조직화하는 데 번번이 실패하는 사이, 일반 대중에게 인터넷이라는 기술이 쥐어졌다. 우리는 게시판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담론이 금세기 초반 어떤 정치적 드라마를 엮어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게시판의 효과는 예상보다 빨리 식어버렸다. 공개된 게시판에서 출몰하는 ‘도배’와 ‘악플’은 사용자들을 지치게 만들었고, 비공개 게시판에서의 정보는 비슷한 것들로 진부해졌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SNS는, 보고 싶지 않은 메시지는 배제하면서도 다양한 정보를 취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SNS의 자유로운 친구 맺기-끊기 그리고 원하는 상대방의 포스팅들을 한군데로 모아주는 뉴스피드 기능은, 개인 사용자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정보를 일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게시판의 경우에는 모든 참여자가 동일한 게시판 목록을 보아야 하지만, SNS 사용자들은 자신만의 맞춤형 게시판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SNS를 통한 네트워크가 이전 게시판을 통한 네트워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공적인 토론장에 참여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불쾌하지 않을 권리를 지키고 싶어 했다. 친구 맺기-끊기와 뉴스피드라는 두 가지 단순한 기술이 결합하자 이러한 모순적인 욕망들이 동시에 충족되었고, 이는 ‘사적인 공공장’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사적인 공공장으로서의 SNS에서 ‘신뢰(trust)’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리트윗을 통해 전해져오는 나와 관계가 없는 누군가의 메시지를 읽는 것은, 그 메시지를 전해준 친구에 대한 나의 믿음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와 내 친구 사이의 신뢰는 애초에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대개의 경우 신뢰의 형성은 기호의 동질성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 신뢰를 갖게 되고, 이것이 SNS 네트워크로 확장된다.

이미 존재하던 불만들이 결집하는 계기 제공

SNS 친구들이 공유하는 취향에는 정치적 견해도 포함된다. 이는 결속이 강한 네트워크일수록 그들이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 하는 것은 인증샷을 주고받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KAIST Social Computing Lab과 AN Lab이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시사한 9월1일,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 안철수라는 이름을 언급하기 시작한 트윗 사용자들은 5천3백48명이었다. 안원장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박원순 시장에게 출마를 권유한 9월6일에는 1만1천4백9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열흘 후에는 단 여섯 명으로 줄어들었다. 9월 전반기 동안 안철수를 처음 언급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수는 총 4만2천6백53명이었다. 이들 사이에 안철수라는 이름이 ‘전파’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심중의 정치적 견해가 변화된 사람들의 수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서울시장 선거의 규모에 비해 미약한 숫자이다.

따라서 이는 안철수를 언급함으로써 ‘사적인 공공장 네트워크’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재확인하는 의례였다고 해석해야 한다.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네트워크상에서 나와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공개했을 때, 나는 커밍아웃할 용기와 동기를 가지게 된다. 더군다나 이는 광장에서 옷을 벗어 보이는 정도의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서 있는 공공장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사적인 공공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적 결단들의 합은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의 결집이라는 집단적 현상을 낳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언론의 지대한 관심은 SNS 내부의 정치적 취향이 밖으로 확대되는 흥미로운 현상을 낳았다.

SNS는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서 공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SNS 내부에서 벌어진 활동들은 지극히 사적인 것들이었다. 이들이 소수의 파워 트위터리안들을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배후에서 활동하는 몇십만 배의 팔로워들은 각기 개별적인 관계의 창을 가지고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따라서 자기 행위의 공적인 결과를 책임지라는 일부 정치권의 요구에 대해 SNS 사용자들이 즉각적인 반발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라는 ‘자유’ 민주주의의 헌법적 가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가 내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이야기에 대해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책임지라는 이야기는 무조건 억울한 일이다. 기성 언론과 정치권에 대한 불신 때문에 믿을 수 있는 뉴스와 소스만을 골라 ‘피드’하려는 이들에게 그 불신의 대상이 규제의 칼을 들이댄다면 누가 순순히 받아들일까. 어쩌면 이들은 자신만의 리그를 좀 더 넓히려는 행동에 돌입할지도 모른다.  

SNS가 선거에 영향을 주었다면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불만들이 결집되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뿐이다. 이는 어느 누구의 의도된 결과가 아니라 사적인 대화들이 촘촘히 모여 만든 점묘화 같은 풍경이었다. 이들을 철없는 잉여로 매도하거나 불순한 세력으로 싸잡아 가둬두려 한다면, 이는 ‘자유’ 민주주의는 물론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입각한 미래 사회로 진입하는 데도 커다란 장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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