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잔혹 살인의 놀라운 ‘죄와 벌’
  • 최현진│국제신문 사회부 기자 ()
  • 승인 2011.11.0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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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징역 사상 최고형 선고된 ‘교수 부인 살해 사건’의 재구성

이혼 소송 중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른바 ‘교수 부인 살해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경남 한 대학의 컴퓨터공학과 교수 강 아무개씨(53)가 국내 유기징역 사상 최고형을 선고받았다. 부산지법 형사6부(김동윤 부장판사)는 지난 11월1일 살인과 사체 은닉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강교수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강교수를 도와 범행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내연녀 최 아무개씨(50)에게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4월15일 개정된 형법은 유기징역의 최고형을 25년에서 50년으로 늘려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부산지법 전지환 공보판사는 “이번에 선고된 형은 지난해 10월 개정 형법이 시행된 후 선고된 유기징역 중 가장 길다. 한 명을 살해한 사건은 보통 징역 20년을 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개정 형법에 따라 살인죄는 유기징역을 선택할 경우 최장 30년, 사체 은닉은 최장 7년을 선고할 수 있어 산술적으로 강교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형은 37년이었다.

“증거 인멸 시도, 사체 은닉 등 죄질 극히 불량”

ⓒ연합뉴스

재판부는 “강씨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스마트폰 문자메시지 내용을 삭제하는 등 증거 인멸을 시도했으며, 사체를 은닉하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 범행 동기가 피고인이 주장하는 피해자의 패악이 아니라 이혼에 따른 재산 문제인 것으로 보여 정상 참작의 여지도 없다”라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범행 후의 정황과 수사기관과 법정에서의 태도를 볼 때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으며, 피해자의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라고 덧붙였다.

강교수는 공판 기간 내내 이 사건 범행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자신을 괴롭혀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의 동생이 자신은 물론 딸까지 찾아가 위협하기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강교수는 부산 해운대구 동백섬 인근 공영주차장에 세워놓은 자신의 차 안에서 아내 박 아무개씨(50)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가방에 넣어 부산 사하구 을숙도대교 위에서 강물에 던진 혐의로 기소되어 무기징역을 구형받았다. 내연녀 최씨는 박씨의 시신을 자신의 차량에 옮겨 실은 뒤 유기하는 것을 돕고, 시신 유기 장소를 답사하는 등 범행을 공모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강교수는 공식적으로 1993년과 1995년 두 번 이혼한 경력이 있다. 2001년 7월 동생의 소개로 피해자 박씨를 알게 되어 수년간 교제하다 지난해 3월9일 혼인 신고를 했다. 내연녀 최씨는 2003년 이혼해 혼자서 자녀를 양육하며 생활하던 중 2004년 초 대리운전 기사로 일할 때 강교수를 손님으로 만나 알게 되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이번 사건의 전말은 마치 텔레비전에 나오는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판결문을 중심으로 이번 사건을 재구성했다.

강교수와 피해자의 사이가 벌어지게 된 것은 재산 문제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 전 절반씩 비용을 부담해 결혼 생활에 필요한 아파트와 승용차 등을 구입하기로 약속했다. 다만 강교수가 당장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피해자인 박씨가 우선 필요한 비용을 전액 부담하면 추후 퇴직금 담보 대출 등으로 필요한 자금의 절반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해서 박씨의 돈 4억7천만원으로 부산 북구 화명동의 아파트와 그랜저 승용차를 구입했다.

하지만 혼인 신고를 마친 뒤 수개월이 지나도 강교수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심지어 같이 살았던 경남 김해시 아파트를 7천4백만원에 매각했음에도 자신에게 알리지 않은 사실을 박씨가 알게 되어 두 사람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같은 사실이 박씨 가족에게 알려지면서 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지난해 9월 협의 이혼하기로 결정했다.

강교수는 별거하던 중 지난 1월 박씨를 상대로 이혼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강교수는 박씨가 적극적으로 응소해 다투면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사회적 위신이 손상되고 소송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진행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해 박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혼자서 범행을 저지르면 의심을 사게 될 것을 우려해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최씨를 범행에 끌어들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을 대신해 박씨를 죽여달라고 부탁했지만 최씨도 이를 두려워해 범행을 망설였다. 그러던 중 강교수는 지난 3월 이혼 소송에 대한 피해자의 답변서를 송달받게 되자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박씨를 죽이고 대신 최씨에게는 사체를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때 최씨에게 “박씨가 돈이 많으니 박씨가 죽게 되면 나에게 들어오는 돈이 많다. 이 돈으로 아이들 집 한 칸씩 사주고 당신에게도 돈을 보태주겠다. 커피 전문점을 차려 당신이 관리하도록 해주겠다”라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사전에 거가대교와 을숙도대교를 답사하며 다리에 설치된 폐쇄회로(CC) TV 카메라 위치까지 파악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결국 비상 주차용 갓길이 있어 차를 대기에 편리한 을숙도대교를 박씨의 사체와 유류품을 버리기에 적당한 장소로 결정했다.

자신이 살해하고 내연녀에게 사체 처리 맡겨

▲ 실종 50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50대 주부 살해 사건의 용의자 현장 검증 현장. ⓒ뉴시스

이에 따라 지난 4월1일 이들은 박씨를 살해하기로 하고 강교수는 이날 밤 9시40분께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 인근에서 박씨를 만나 술을 마셨고, 최씨는 강교수가 살고 있는 북구 만덕동 아파트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교수는 박씨 살해를 미루었다. 당시 박씨의 승용차가 교내로 진입했을 때 차량 출입 흔적이 CCTV에 남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끔찍한 범행은 다음 날 이루어졌다. 강교수는 이날 밤 부산 해운대구 우동의 한 호텔로 아내를 불러냈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거닐며 대화를 나누다 강교수는 아내를 호텔 인근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자신의 그랜저 승용차로 유인했다. 이날 밤 11시께 두 사람은 의자를 뒤로 젖혀 누운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다 강교수가 갑자기 아내의 목을 졸랐다.

범행 40분 후 아내가 더는 움직이지 않자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최씨를 불러 사체를 여행용 가방에 넣었다. 최씨는 미리 계획한 대로 박씨의 사체를 을숙도대교에 버리려고 했으나 무거워 혼자 들지 못하자 강교수를 불렀고, 3일 새벽 3시40분께 두 사람은 박씨의 사체를 들어 낙동강 하구 물속으로 던졌다.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난 4월5일 수사가 시작될 때부터 강교수는 경찰의 용의 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범죄자문위원인 강교수의 철저한 ‘증거 없애기’ 탓에 수사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런데 경찰이, 강교수가 내연녀 최씨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문자 내용을 복원하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 다음 달 21일 을숙도대교 인근에서 정화 활동을 하던 자원봉사자들에게 박씨의 시신이 든 가방이 발견되면서 강교수의 범행은 들통 났다. 강교수는 국내 최고 명문대를 졸업해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될 정도로 엘리트로 인정받았다. 특히 사이버 범죄 유형과 실태 분야의 전문가로서 수사기관 자문위원과 한국컴퓨터범죄학회장을 지냈다. 박씨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강교수의 경력으로 보았을 때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을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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