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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따라 뜨고 진 북한 ‘외척’들

김일성, ‘친족 정치’ 펴며 외가 식구들 중용…최근에는 김정일 부인 김옥의 아버지가 실세로 부각

정락인 기자 ㅣ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11.14(Mon) 15: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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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을 맞아 지난해 10월10일에 열린 대규모 열병식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심장부는 수도인 평양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평양의 모든 정보는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북한 정권 내부의 일은 외신을 통해서나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평양에서 일어나는 일이 실시간으로 남한에 전달된다. 인공위성을 통해, 휴대전화를 통해 영상까지 볼 수 있다. 비밀의 문이 활짝 열린 셈이다.

그러나 북한 최고 권력 주변의 정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특히 북한의 ‘외척 세력’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정보에도 한계가 있다. 얼마 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과 친형인 김정철이 결혼해 딸과 아들을 낳았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외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과연 북한 최고 권력자의 외척은 누구일까. <시사저널>은 각종 자료와 문헌 그리고 북한 전문가와 소식통 등을 통해 북한 정권의 외척들을 추적해보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 권력자의 외척들은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했다. 봉건 시대 왕들은 권세 있는 가문과 ‘정략결혼’을 통해 자신의 지지 기반을 확고히 했다. 왕권을 위협하는 친족들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외척들을 중용했다. 궁궐 안주인인 왕비는 외척들을 내세워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외척은 왕권의 방패막이이자 왕권을 약화시키는 양날의 칼이었다.

북한은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현대판 왕조’를 이루면서도 권력 구조는 이전의 왕조와는 달랐다. 철저하게 ‘친족 정치’를 펼쳤다. 주요 핵심 요직에는 친·인척들을 사돈에 팔촌까지 앉혔다. ‘권력의 최후 보루’가 친·인척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해 지난해 8월에 사망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도 친·인척 그룹에 속했다. 황씨는 김정일 외사촌 동생의 남편이다.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는 사돈 간이다. 황 전 비서의 외아들과 장부위원장 누나의 딸이 결혼했다. 황씨는 김씨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다가 김정일과 사이가 틀어지자 남한으로 망명했다. 북한의 ‘친족 정치’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김씨 일가들은 ‘김씨 왕조’가 무너지면 곧 자신들이 몰락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체제 수호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친·인척들을 마냥 신뢰한 것은 아니다. 당·정 및 사회단체 등에는 친·인척들이 고루 분포되어 있지만 유독 군부 인사에는 인색했다. 이에 대해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군부는 항일 빨치산 세력들을 중심으로 해서 형성되었다. 친·인척 중에는 군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다른 시각도 있다. 북한은 ‘선군 정치’를 통치 이념으로 삼고 있어서, ‘군부’는 권력 위의 권력으로 통한다. 만약 친·인척에게 군권까지 줄 경우 자신의 자리를 넘볼 수도 있다. 이런 싹을 미리 자르기 위해 군부의 요직에는 일부러 친·인척을 배제했다는 것이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북한에는 이전의 왕조와는 다른 ‘수령관’이 있다. 권력이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1인에게 권력이 100% 집중되어 있는 구조이다. 때문에 혈족을 요직에 앉힌 것은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북한 정권에서 외척이 큰 세력을 형성한 적은 별로 없었다. 북한의 ‘왕자’와 ‘공주’의 혼인 상대자도 권력 핵심부와는 먼 사람들이었다. 출신 성분이 좋고, 당에 대한 충성도는 높으나 권력 상층부에서 약간 비켜나 있는 인물들이었다.

김일성 부인 김성애의 오빠·동생은 ‘숙청’

   
▲ 1994년 6월 지미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김일성 부부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 맨 오른쪽 두 번째가 김성애이다.
ⓒ연합뉴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친척은 어릴 적부터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어온 혈연 관계이다. 누구보다 믿을 수가 있다. 하지만 외척은 성인이 되어서 인연을 맺었고, 한 다리 건넌 관계이다. 그렇다 보니 외척과 권력을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일성은 정권 초기에 어머니인 강반석의 일가친척들을 중용했다. 강씨 일가들은 강반석의 사망으로 권력 구심점이 없는 상태였다. 독자 세력을 형성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런 강씨 일가들을 중용해 권력을 지탱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대표적인 외척이 외종조부인 강양욱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장로교 목사로 활동했고, 1972년 국가 부주석 겸 최고인민회의 중앙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강양욱은 북한의 기독교를 ‘김일성교’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김일성은 외척인 강양욱을 내세워 어용 기독교 조직인 조선기독교연맹을 결성하고, 김정일 정권에 대한 지지 운동을 강요했다. 기존의 기독교 조직을 흡수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강양욱 외에도 강씨 일가 10여 명이 요직에 앉았다. 김일성의 외사촌인 강현수는 평양시 당위원장을 지냈다. 그의 아들들은 만경대 책임비서와 인민무력성 작전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정무원 총리를 지낸 강성산, 전 노동당 대외연락부장 강관주, 전 여맹위원장 강관선도 외가 쪽 인물이다.

김일성은 생전에 부인 두 명을 두었다. 첫 번째 부인 김정숙은 함경북도 회령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남편 김일성과 항일 유격대 활동을 함께한 동지이다. 김일성 부대가 일제의 토벌을 피해 소련으로 이동할 때 김일성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아들인 김정일은 소련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1949년 9월에 아이를 낳다가 3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김정숙은 생전에 ‘권력다운 권력’을 누려보지 못했다. 김일성은 북한 정권이 출범한 후 이런 김정숙을 신격화했으나 그의 일가친척들을 중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두 번째 부인인 김성애는 달랐다. 그는 북한 정권이 수립된 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외척이었다. 김성애는 원래 김일성의 비서 출신이다.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을 낳은 후인 1963년에 김일성과 정식으로 결혼했다. 김성애는 여성 운동을 하면서 권력 전반에 나섰다. 조선민주여성동맹위원장을 거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까지 올랐다. 여성동맹위원장은 북한의 모든 여성에 대한 감시·감독을 전담하는 막강한 자리였다.

김성애는 김일성의 동생이자 시동생인 김영주와 끊임없이 암투를 벌였다. 김영주는 당의 조직지도부장을 맡으며 당의 핵심을 장악했다. 김정일이 등장하기 전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제2인자’였다. 김영주와 김성애는 서로의 힘이 커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김성애는 자신의 아들인 김평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래서 2인자인 김영주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74년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된 후 김성애와 측근들은 몰락하는 길을 걷는다.

김성애의 오빠인 김광협이 가장 먼저 숙청되었다. 그는 빨치산 출신으로 군부의 핵심 인물이었다. 북한 정권의 부수상으로 한때 정치위원회 서열 6위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반(反)김일성’ 세력으로 몰려 하루아침에 제거되었다. 1970년 제5차 당 대회에서 당적을 박탈당한 후에는 권력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김성애의 동생인 김성갑(해군사령부 정치위원)과 김성호(황해북도 당비서)도 숙청되었다. 1973년 여름 김일성은 당 간부들과 함께 김일성광장 뒤에 있는 언덕에 올랐다고 한다. 그곳은 김일성이 인민대학습당을 지으려고 했던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대저택이 들어섰는데, 알고 보니 김성애의 남동생 김성갑과 어머니 고영칠이 살고 있었다.

김일성은 김정일을 통해 조사를 지시한 후 처남들을 직위 해제하고 연금시켰다. 김성애의 추종자들은 모두 농촌이나 탄광으로 쫓겨갔다. 당시 김성애와 김성갑 등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인물들은 모조리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갔다고 전해진다. 김성애는 여맹위원장 자리는 간신히 유지했으나, 이후 공식적인 대외 활동에는 제약을 받았다. 김성애는 김일성이 사망한 후에는 곁가지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김정일은 1998년 7월 김성애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탈락시키면서 권력에서 밀어냈다. 김성애의 핵심 세력인 조선민주주의여성동맹도 무력화시켰다. 핵심 간부들을 지방으로 축출했다. 중앙 조직 일부만 형식상 존치한 채 지방의 하부 말단까지 해산시켰다. 김성애의 팔과 다리를 완전히 잘라버린 것이다.

지금은 북한 당국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볼모’ 신세로 전락했다.

김정일과 후계 다툼을 벌였던 김평일은 1979년부터 해외에서 유랑 생활을 하고 있다. 1989년 헝가리 주재 북한 대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2년간 해외를 떠돌고 있다. 그동안 불가리아와 핀란드 주재 북한 대사를 거친 후 1998년부터 폴란드 주재 북한 대사를 맡고 있다. 김평일은 부인 김금순과의 사이에 아들 김인강과 딸 김은송을 두고 있다. 이 중 큰딸인 김은송은 지난 2007년 12월쯤 북한 장성의 아들과 결혼했다고 알려졌을 뿐이다.

평범한 가정 출신 며느리 얻은 까닭은?

   
▲ 지난해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참가자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붉은 원 안의 여인이 다섯째 부인인 김옥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무려 다섯 명의 부인을 두었다. 

조강지처는 동갑내기인 홍일천이다. 김위원장은 지난 1966년 홍일천과 결혼해 딸 김혜경(43)을 낳았으나 3년 후 이혼했다.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홍일천은 김일성종합대학 러시아문학부를 졸업한 재원이다. 그는 김정일과 이혼한 후 1980년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정무원 보통교육부 부부장을 거쳐 현재 김형직사범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1993년 1월부터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조선측 본부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 부인은 북한의 유명 배우인 성혜림이다. 김정일보다 다섯 살 연상이다. 그는 원래 월북 작가 이기영의 아들인 이평의 부인이었다. 김정일과 가깝게 지내다가 남편과 이혼하고, 1969년부터 동거에 들어갔다. 두 사람 사이에서 김정남이 태어났다. 그러나 성혜림은 ‘이혼녀’라는 꼬리표 때문에 정식 부인이 되지 못했다. 김일성도 그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비운을 맞게 된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강요에 의해 조선로동당 간부의 딸인 김영숙과 결혼했다. 김정일의 관심에서 멀어진 성혜림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1974년에 요양차 러시아 모스크바에 머물렀다. 정식 부인 자리를 김영숙에게 내주면서 더는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성혜림은 1996년 2월에 서방으로 망명한 뒤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와 2002년 5월 6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언니인 성혜랑은 1996년 미국으로 망명해 살고 있으며, 아들 이한영은 한국에 망명해서 살다가 암살당했다.

김정일의 셋째 부인은 당 선전·선동부의 타자수 출신인 김영숙이다. 김영숙은 혁명가 집안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으로 부친이 청진사범대학 학장이라는 설도 있으나 정확히 확인된 것은 없다. 김영숙은 김위원장의 유일한 공식 부인이었으나 불행한 전철을 밟았다. 아들을 낳지 못해 일찍부터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난 ‘뒷방 마님’ 신세가 되었다. 김영숙은 김정일과의 사이에 김설송과 김춘송을 두었다. 현재 북한 호위사령부 초대소에서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넷째 부인은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인 고영희이다. 고영희는 김정일의 부인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5년쯤부터 암으로 사망한 2004년까지 동거하며 사실상 ‘안주인’ 역할을 했다. 1998년부터는 군부대 등 현지 시찰을 동행하는 등 김정일의 사랑이 각별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친·인척이 권력에 진입했다고 알려진 것은 없다. 고영희는 김정일과의 사이에서 아들 정철·정은, 딸 여정을 낳았다. 고영희의 동생이자 김정은의 이모인 고영숙은 지난해 10월 스위스를 통해 미국으로 망명해 살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성혜림의 아들인 김정남은 한때 유력한 후계자였다. 그러나 후계 다툼 와중에서 이복동생인 김정은에게 밀려났다.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후원자를 자처하며 김정남을 옹립하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이 망명한 것 등의 행적이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황태자에서 밀려난 김정남은 작은아버지인 김평일의 전철을 밟고 있다. 김정남은 2009년 이후 계속해서 해외를 떠돌고 있다. 부인 이혜경과의 사이에 한솔(16)과 솔희(12)를 두고 있다. 김한솔은 보스니아의 국제학교에 입학한 것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섯째 부인이 바로 김옥 국방위원회 과장(47)이다. 그는 1980년 초반부터 서기실 과장으로 근무하며 김정일을 가까이에서 보좌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내연 관계로 발전한 것은 고영희가 암으로 사망한 2004년 이후로 알려졌다.

김옥을 다섯째 부인으로 추천한 사람이 고영희라고 한다. 그는 죽기 직전에 자신의 아들인 정철과 정은의 뒤를 부탁했다는 후문이다. 김옥은 자타가 공인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이다. 해외 국빈 방문 등에는 김옥이 동행하고 있다. 북한의 정식 안주인이 된 후 그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의 부인들과는 여러 모로 차원이 다르다.

김옥은 김위원장보다 나이가 스물두 살이 적다. 40대 중반이다. 그는 단순한 안주인 역할에 그치지 않고, ‘국방위원회 과장’이라는 직책도 맡고 있다. 후계자인 김정은의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후계자 선택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시대가 본격 도래할 경우 일정 정도의 ‘권력 지분’을 가질 것으로 보여지는 대목이다.

외척인 김옥의 아버지 김효는 북한 노동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1980년대 중반에 노동당 재경경리부 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딸 김옥이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인 2009년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국회의원) 선거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노동당 부부장급이 대의원에 선출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재경경리부는 노동당의 돈줄을 쥐고 있는 곳이다. 김옥은 자신과 아버지의 영향력을 밑바탕으로 해서 친·인척들을 중용해 ‘외척 세력’ 구축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전직 안기부 북한조사실 단장 출신인 송봉선 고려대 북한학과 겸임교수는 “내가 보기에 김옥은 김정일과 마지막을 함께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이 사망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야 하기 때문에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에 그칠 것이다. 그동안 김정은과 대립각을 세운 것도 없기 때문에 향후 권력 다툼 소지는 적다”라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과 형인 김정철도 지난해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부인은 함북 청진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그의 아버지는 청진시 대학 교원, 어머니는 청진시 수남구역 제1인민병원 산부인과 과장이라고 알려졌다. 이를 토대로 보면 김정은의 처가는 ‘평범한 가정’이다. 외척들이 권력에 끼어들 확률은 낮다. 그러나 ‘김정은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정보는 정확하게 확인된 것이 아니어서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송봉선 교수는 “김정일은 권력욕이 강하다. 아마 죽을 때까지 김정은에게 모든 권력을 다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권문세가가 김정은의 처가가 되면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정략적으로 평범한 가정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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