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앞둔 국회 “법안 내고 보자”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1.11.1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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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막바지 의원들의 의정 활동 실태 / 지난 10월 한 달만 3백개 넘는 등 ‘생색내기’ 발의 급증

▲ 개정 법률안을 의결하고 있는 국회 법사위. ⓒ연합뉴스

18대 국회의 의정 활동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공식적인 임기는 내년 5월29일까지이지만, 사실상 다가올 내년 4월 총선을 고려하면 올해가 거의 마지막 의정 활동 기간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일까. 새 법률안을 발의하려는 의원들의 움직임이 급증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연말이 될수록 국회의원들의 입법 발의가 줄을 잇고 있다. 언뜻 보면 임기를 다할 때까지 의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시사저널>은 국회 의안 정보 시스템을 이용해 18대 국회가 개원한 2008년 6월부터 최근까지 월별 법안 발의 건수를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지난 10월 한 달간 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만 무려 총 3백1개에 달했다. 평일 하루당 약 14.3개꼴이다. 18대 국회 들어 의원 발의가 월평균 2백50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임을 알 수 있다(21쪽 그래프 참조). 특히 통상적으로 국회 개원 초기 법안 발의가 집중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18대 국회 첫해인 2008년을 제외하고 2009년부터 최근까지 법안 발의 수만 따지면 월평균 2백24개 정도가 된다. 이 숫자로 비교해보면 지금의 법안 발의 러시는 더욱 눈에 띈다. 이런 흐름은 11월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11월9일 현재까지 총 84건의 법안이 새로 발의되었다. 지난 2년간 연말에 법안 발의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두 달간 법안 발의가 봇물을 이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8대 국회의 임기 종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각 의원들의 법안 발의가 봇물 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발의한 법안의 숫자가 의원들의 의정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또 의정 활동 기간 어떤 법을 발의했는가는 유권자의 표를 끌어오기 위한 발판이 된다. 이 때문에 의원들은 지역구나 관련 이익 단체의 정서나 이해관계에 맞는 법률안을 임기 막바지까지 끊임없이 발의한다는 것이다.

법안 발의 숫자가 의정 능력 평가 기준 되기도

최근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지역구 민심을 겨냥한 법안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유선호 민주당 의원은 지역구인 전남 영광에서 열리는 F1 대회의 재원 마련 및 세제 지원 방안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충남 논산이 지역구인 이인제 자유선진당 의원은 2014년 말까지 홍삼에 대해 부가세를 면제하자는 법안을, 전북 정읍이 지역구인 유성엽 민주당 의원은 한우와 토종닭 등을 ‘토종 가축’으로 지정하고 관리·육성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전남 나주가 지역구인 최인기 민주당 의원은 향후 5년간 약 2천8백억원을 들여 갯벌 양식 어업을 지원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세제 혜택을 담은 법안도 눈길을 끈다.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통해 특정 지역이나 계층·분야 등에 감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윤영 한나라당 의원은 개발 제한 구역 토지 소유자에게 양도소득세를 감면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송훈석 민주당 의원은 동·서·남해안 및 내륙권 첨단 과학 기술 단지 및 투자 진흥 지구에 입주하는 기업에 법인세·소득세 및 관세를 감면하는 혜택을 부여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해걸 한나라당 의원은 일부 농지 매매에 양도소득세를 감면하는 법안을, 오제세 민주당 의원은 농협·수협 등 협동조합원의 이자·배당 소득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연장하는 법안 등을 제안했다. 조세특례제한법은 수많은 법률안 중 가장 많은 개정안이 발의되는 법안이기도 하다. 민감한 세금 부분에서 직접적인 혜택을 주는 것인 만큼, 의원으로서의 영향력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원들이 자신의 임기 내에 통과할 가능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입법에 나서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임기 말 발의되는 법안들은 상임위를 거쳐 국회 의결까지 나아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발의하는 것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이른바 ‘생색내기’ 법안을 내놓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서 계류하다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될 가능성이 큰 법안을 ‘보여주기’ 식으로 발의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법안이 ‘생색내기’용인지 감시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임기 말에 발의하는 법안들이 모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새로 국회가 구성된 후 각 의원들이 가장 먼저 참고하는 것은 지난 상임위에서 계류하다 만료된 법안이기 때문에 지금은 통과 가능성이 없는 법안이라 하더라도 차기 국회에서 의제 설정의 기능을 가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임기 말에 집중되는 법안들이 대개 실효성 여부와 다소 거리가 먼 안들이라는 점이다.

개별 법안이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있는지 검토하는 작업 또한 그리 녹록지는 않다. 이는 전문성을 지닌 인물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검증해야 할 일이다. 법률소비자연맹의 홍금애 기획실장은 “시민단체의 한정된 여력으로는 법안을 일일이 다 모니터링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의 이선미 간사도 “각 법안을 모두 검토하지는 못한다.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법안을 따로 선정해 질적 평가를 시도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시성 발의라 해도 확인·감시 쉽지 않아

지금 발의되는 법안에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그때까지 처리되지 못한 법안은 임기 만료를 이유로 폐기된다. 그중 다음 국회에서도 이슈가 될 만한 가치를 지닌 법안은 어떤 것이며, 전체 민의와 거리가 먼 ‘생색내기’ 법안은 또 어떤 것이 있을지 골라낼 필요성에는 모두 한목소리를 내지만, 한 해 동안 3천여 개의 법안이 쏟아지는 지금으로서는 이를 다 감시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치 구조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해 서복경 교수는 “정당 문화가 발달한 곳에서는 법안이 발의되기 전 의원총회나 각종 위원회를 통해 치밀한 논의를 거친다. 한국의 정당에는 이런 논의의 장이 상대적으로 미흡해서, 사회적으로 관심이 쏠리는 법안이 아니라면 각 의원이 개별적으로 발의를 추진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생색내기’ 법안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법안 발의 과정에서부터 좀 더 민주적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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