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일가 뜨거운 ‘한남동 땅 사랑’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1.11.2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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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에서 삼성가와 LG가의 땅 매입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최근 1년여 동안 한남·이태원동에서 건물들을 대규모로 매입했고,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도 최근에 한남동에서 건물을 매입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LG가도 삼성만큼은 못하지만 최근 한남동 일대에 새롭게 둥지를 틀고 있다. 구본무 회장이 한남동으로 이사한 때를 전후해 구자훈 LIG그룹 회장 등 LG가 인사들이 속속 하얏트호텔 아래로 모여들고 있다.

▲ 재벌 총수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한남동과 이태원동 모습.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성북구 성북동, 종로구 평창동은 전통적인 부촌으로 꼽힌다. 재벌 총수나 정·관계 인사들이 일찍부터 둥지를 틀면서 ‘그들만의 타운’을 형성해왔다. 하지만 최근 위세가 많이 꺾였다. 청담동이나 도곡동, 대치동 등이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면서 재벌 2·3세들의 ‘강남행’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한남동만은 예외였다. 재계의 ‘대표 선수’ 격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등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하얏트호텔 아래에 위치한 한남2동의 경우 재계 인사들의 유입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부동산 관계자는 “재벌 총수들이 몰려 있는 한남2동의 경우 이동이 거의 없다. 매물이 있어도 곧바로 주인이 나타나기 때문에 여전히 부유층으로부터 관심이 많다”라고 귀띔했다.

‘재벌닷컴’은 최근 30대 그룹 총수 일가 3백91명의 주소 변경 내역을 조사해 발표했다. 지난 2005년부터 올 3월까지 지난 5년간 주소를 옮긴 재계 인사는 모두 71명(18.2%). 전통 부촌인 성북동이나 평창동에서 신흥 부촌인 청담동, 도곡동, 압구정동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특히 성북동의 경우 전체 80명 중에서 11명이나 줄어들었다. 그러나 한남동은 65명에서 67명으로 오히려 2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그룹은 이병철 창업주 때부터 장충동과 한남동 일대에 살았다. 2세들 역시 자연스럽게 한남동 일대에 모여 살고 있다. 하얏트호텔과 리움미술관 사이의 길목은 ‘삼성 이씨의 집성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미술관장뿐 아니라 자녀들까지도 인근에 살고 있거나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이회장은 지난 2005년 한남동에서 지금의 이태원동 자택으로 이사를 했다. 이 건물은 면적만 2천1백33㎡(6백45평)에 달한다. 주변에는 신춘호 농심 회장과 신동익 농심 부회장, 신동원 농심 대표, 신동윤 율촌화학 회장 등 농심 일가와 정몽진 KCC 회장,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 등 현대 일가, 허동섭 한일시멘트 회장, 이세웅 신일학원 이사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등의 자택이 있다. 이회장은 이들 인사의 자택 주변에 있는 건물들을 틈틈이 매입해온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밝혀졌다.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자택. ⓒ시사저널 유장훈

이명희 회장 등과 함께 ‘삼성 타운’ 형성

이회장은 자택 주변인 이태원동 10×-××번지와 13×-××번지, 승지원 건너편인 20×-××번지와 13×-××번지, 태국 대사관저 주변 건물인 이태원동 10×-×번지 부지와 건물을 2010년 2월부터 최근까지 사들였다. 행정 구역은 이태원이지만, 현지에서는 한남동으로 통칭되고 있다. 최근 1년여 동안 이회장이 구입한 건물은 3천3백㎡(약 1천평)에 이른다. 주변에 거주하는 총수 자택의 다섯 배가 넘는 건물을 계속해서 사들인 것이다. 특히 태국 대사관저 주변 건물은 조카인 이재관 새한그룹 부회장의 자택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주목되고 있다. 이부회장은 지난해 8월 자살한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사장의 형이다. 이부회장은 지난 2000년 주력 계열사인 ㈜새한의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2백47억원 규모의 사재를 회사에 헌납했다. 이태원 자택 역시 사재 출연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회장은 지난 2010년 9월 새한미디어 소유의 이 건물을 매입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장남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도 삼성타운 부근에 막대한 규모의 부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회장의 자택 주변에는 현재 이중근 부영 회장과 김준기 동부 회장의 집이 있다. 이회장과 자녀들은 이들 주변에 6천47㎡(1천8백29평)의 건물과 부지를 보유하고 있다. 두 총수의 집을 둘러싸는 모양새이다. 현지에서는 이명희 회장의 집을 ‘99호’로, 정유경 부사장의 집을 ‘83호’로 불렀다. 특히 정유경 부사장의 경우 지난 2007년 전후로 꾸준히 인근의 땅을 매입하면서 현재는 어머니보다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정용진 부회장 역시 최근 서판교 지역에 신접살림을 꾸렸지만, 한남동 건물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정부사장은 지난 2008년 10월 이중근 부영 회장과 조망권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도 신세계 타운과 리움미술관 사이인 한남동 74×-×번지 건물을 매입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원래 이 건물은 전필립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이 매입해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10년 11월 홍석현 회장이 건물을 매입하면서 주소까지 옮겼다. 이곳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살고 있는 이태원동 자택도 전회장의 아버지인 전락원 전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의 소유였다가 매각되었다. 이런 추세는 향후 계속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미 인근의 제일모직과 리움미술관을 잇는 대로는 현지에서, 삼성이 운영하는 꼼데가르송 플래그십숍을 본뜬 ‘꼼데가르송 길’로 불리고 있다. 그만큼 한남동이나 이태원동 인근에서 삼성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 한남동에 위치한 구본무 LG 회장의 집. ⓒ시사저널 임준선

구본무 회장 장남도 한남동 건물 새로 매입

삼성만큼은 못하지만 LG가도 최근 한남동 일대에 새롭게 둥지를 틀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지난 2005년 중순까지 유엔빌리지에 있는 한남1동의 단독주택에 살다가 한남2동으로 이사했다. 구회장은 2002년 LG전자로부터 이 부지를 매입해 이후 1천6백80㎡(5백8평) 규모의 자택을 새로 지었다. 이 건물은 한남동 부촌의 중간에 있다. 구회장 주변에는 박성용 전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자택과 허영인 SPC그룹 회장,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 입창욱 대상그룹 회장의 집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보유한 건물 또한 여러 채가 구회장의 집 주변에 있다. 구회장의 이동을 전후로 범(汎)LG가 인사들이 속속 하얏트호텔 아래로 둥지를 틀고 있다. 구자훈 LIG그룹 회장은 지난 2005년 인근 73×-××번지를 매입한 뒤, 두 딸인 현정씨와 윤정씨에게 증여했다. 최근 윤정씨가 이곳으로 주소를 옮겼다. 구자원 LG화재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본상 LIG넥스원 대표도 지난 2006년 4월 이태원동 10×-×번지 건물을 매입했다. 올 7월에는 구본무 회장의 장남인 광모씨가 ‘인근 74×-××번지를 매입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그 밖에도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자녀인 본성씨와 미현씨, 지은씨도 현재 한남동 74×-××번지 건물의 지분을 나란히 보유하고 있다. 결국은 구회장을 중심으로 한남동에 새로운 LG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한남동에서는 ‘1인 시위’밖에 볼 수 없는 까닭 

주요 그룹의 총수들이 한 곳에 몰려서일까. 한남동 일대에는 1인 시위도 잦은 편이다. 회사 노조원이나 협력업체 직원들이 수시로 이곳을 찾아 시위를 벌이곤 한다. 지난 11월16일 기자가 한남동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새로 옮긴 이태원동 이건희 회장의 자택 앞에서는 1인 시위가 한창이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피해를 입은 지역 인근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이회장 자택의 정문과 후문에서 각각 피켓을 목에 걸고 시위를 벌였다. 간간히 주변에 있는 경비원과 승강이를 벌이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국응복 태안군 유류피해대책위연합회 회장은 “태안 기름 유출 사태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삼성은 아직까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회장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남동에서 벌어지는 1인 시위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구본무 LG 회장과 윤석금 웅진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집에도 수시로 1인 시위대가 출몰했다. 1인 시위의 경우 신고가 필요 없는 데다, 직접 총수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시위자들이 몰리고 있다. 한 대기업의 노조 관계자는 “대기업 총수들의 자택 인근은 방어 집회가 신청되어 있어 대형 집회가 불가능하다. 1인 시위는 별도로 신고하지 않고도 시위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라고 귀띔했다.

때문에 총수 자택 주변이나 골목 입구에서는 회사측 관계자와 시위자 간 충돌을 빚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곤 한다. 실제로 기아차 노조는 최근 정몽구 회장 자택이 있는 한남동 유엔빌리지 입구로 진입하다가 충돌을 빚었다. 자택에 진입하려는 노조원과 이를 막는 경비 요원 간에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때문에 모 기업의 경우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자택 앞을 지킨다는 얘기도 들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에게는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니지 않느냐. 1인 시위대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일부 충돌은 불가피하다”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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