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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아랍의 봄’은 꿈이런가

또다시 시위대와 군부 충돌로 유혈 사태 벌어져…재야 세력 분열해 총선 거부 등 혼란 가중

조홍래│편집위원 ㅣ 승인 2011.11.27(Sun) 12: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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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명의 군중이 11월22일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군부의 조속한 권력 이양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가 보안군과 충돌했다. 연 4일째 계속된 이 충돌로 33명이 피살되고 수천 명이 체포되었다. 지난 2월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타도한 이집트 혁명 이후 최대 군중이 모인 이 시위로 민주화 봉기는 어느새 군부 타도를 부르짖는 제2의 혁명으로 변질되었다. 사태가 악화되자 군 최고회의(SCAF)는 정당 및 시민단체와 긴급 회동하고 늦어도 내년 6월 말 이전까지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고 권력을 이양한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군부는 또한 새 헌법 제정과 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한 민간 과도 내각을 새로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동안 군부의 거짓 약속에 속아온 대다수 정당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 국민들도 군의 약속을 믿지 않는 분위기이다.

이에 따라 무바라크 정권을 붕괴시킨 이집트 혁명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 군과 국민이 사생결단을 하는 새로운 혁명의 폭풍 속에 휘말렸다. 다수의 정당이 11월28일로 예정된 총선을 거부하는 바람에 선거가 치러질지도 의문이다. 총선에서 다수 의석 획득을 예상하고 있는 최대 정당 무슬림형제단은 선거 참여와 시위 자제를 주문해 군부에 협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무슬림형제단이 군부와 내통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재야 세력이 분열하기 시작했다.

   
지난 11월21일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국기를 흔들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

“집권 연장 노린 군부가 혼란 부추겼다” 비판도

이집트의 모든 화근은 군부의 집권 요망에서 나온다. 군사 정부는 비상 시국회의를 개최한 후 발표한 성명에서 구국 내각을 새로 구성하고 최대한 빨리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시위대는 군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이집트 인권 기구의 사무총장 호산 바흐가트는 새 내각 역시 군의 섭정을 받을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누가 군의 제안을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군이 민선 내각에 전권을 즉시 넘겨주지 않는 한 타협은 없다고 단언했다.

타흐리르 광장을 메운 시위대는 군의 유혈 진압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조만간 ‘100만명 시위’를 벌일 태세여서 사상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집트 군부는 9개월 전 무바라크 정권이 퇴진하는 과정에서 시위대 편을 들어 국민으로부터 칭송과 신뢰를 받았다. 그러나 무바라크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가 이끄는 군 최고회의는 혁명의 혼란기를 이용해 군의 집권 연장을 시도함으로써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군은 11월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먼저 선출한 후 정국이 안정되는 대로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밝혔으나 대통령 선거 시기를 이런저런 핑계로 지연시키면서 2013년까지 사실상의 군정 연장을 시도했다. 국민의 분노에 놀란 군이 황급히 내년 6월 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한다는 타협안을 내놓았으나 시위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작된 시위는 지중해 해안 도시 알렉산드리아와 수에즈 등 주요 도시로 확산되었다. 지방 도시에서도 군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군의 잔혹한 진압에 분노한 시위대는 모든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면서 군이 즉각, 그리고 완전히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9개월 전 무바라크를 붕괴시킨 18일간의 민주화 봉기의 진원지가 되었던 타흐리르 광장은 군을 규탄하는 함성으로 뒤덮였다. 시위대의 투석과 보안군의 최루탄 발사로 광장은 유혈이 낭자한 무법천지로 변했다. 도처에서 총성이 울리고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군부는 암암리에 혼란을 부추겨 집권 연장의 구실을 축적하고 있는 눈치이다. 브루킹스연구소 도하 센터의 이집트 전문가 샤디 하미드 씨는 군부는 내심 군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부가 심지어 총선 연기 요구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군부가 초안한 헌법은 군의 권한을 강화하고 군에 대한 민간 정부의 통제를 완전히 배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군이 헌법을 다시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나 불신은 여전하다.

카이로 거리에서 만난 시위대는 군부가 국민을 속이고 장기 집권을 계획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규탄했다. 시위대의 입에서는 ‘사기’ 또는 ‘배신’이라는 격앙된 말들이 터져나왔다. 불신의 초점은 군 최고회의를 구성하는 장성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 30년간 무바라크 정권에서 영화를 누린 기득권 세력이다. 따라서 권력의 단맛에 취한 이들이 시위대의 요구대로 순순히 권력에서 물러나지 않으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부상한 시위대들은 경찰이 제공한 구급차를 거부하고 들것에 실려 이슬람 사원으로 이송되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면 체포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군과 경찰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제2 혁명’ 성공하는 데 경제도 큰 걸림돌

   
지난 10월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 군사최고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리온 파네타 미국 국방장관을 만나고 있다. ⓒ EPA연합
아랍 위성방송을 통해 경찰이 사망했거나 의식을 잃은 시위자들을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다가 쓰레기 더미에 버리는 광경을 본 국민들은 분노로 치를 떨었다. 많은 이집트 국민은 군부가 ‘국가 속의 국가(a state within a state)’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한다. 이 점을 감안하면 이집트의 제2 혁명이 성공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설사 두 번째 혁명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로 허덕이는 이집트 경제가 이를 견뎌낼지 미지수이다. 주로 관광에 의존하는 이집트 경제는 1년 가까이 접어든 정국 혼란으로 회복 불능 상태에 빠져 있다. 국제 인권 기구인 앰네스티인터내셔널의 대변인은 시위대에 대한 군부의 진압 수법이 무바라크 정권을 능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랍의 봄’을 유발했던 이집트 혁명이 거의 무위로 귀착될 조짐을 보이자 중동 민주화 혁명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우선 미국이 가장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 무바라크 정권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다가 그의 퇴진을 마지못해 환영했던 미국은 이집트에 진정한 민주 정부가 수립되기를 기대했으나 그 기대는 흔들리고 있다. 미국 국무부의 빅토리아 널랜드 여성 대변인은 작금의 사태에 대해 “개탄한다”라고 논평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정보위원장을 역임한 그레엄 필러는 이집트 사태로 아랍 혁명 전체가 예측할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순조로운 선거를 통해 민선 정부를 구성한 튀니지를 제외하고는 어느 한 나라도 민주 정부로의 이행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지원했던 다른 아랍 국가들, 예컨대 바레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도 장래를 장담할 수 없다. 딜레마에 빠지기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친(親)이스라엘 정부들이 차례로 혼란에 빠지면 이스라엘은 존립 기반을 위협받게 된다. 리비아와 시리아의 정권 붕괴가 어느 의미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이익이 될 수는 있으나 거기에도 복잡한 요인이 가로놓여 있다.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붕괴를 주도했던 유럽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가닥 희망은 민주화 진통을 겪고 있는 아랍이 터키 모델로 가는 것이지만 그 가능성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터키는 이슬람과 세속주의를 이상적으로 혼합해 중동의 새 종주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랍 사태를 지켜보는 이란의 심기도 편치 않다. 그 불똥이 언제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흙탕으로 변한 아랍 혁명의 혼란 속에서 웃는 나라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이다. 두 나라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텃밭이었던 중동에서 교두보를 마련할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지금 ‘아랍의 봄’은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는 극도의 혼란 속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시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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